안녕하세요, 글나랩 대표 김효주입니다. <02 우울증, 당신을 찾아온 이름>의 마지막에 우울증이 ‘피할 수 없는 단계에 진입했다면 즐겨보시라’고 조언드렸는데요. 왜 ‘즐겨보라’고 말씀드렸을까요?
'우울증'하면 침울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우울감을 다루는 콘텐츠에도 혼자 방 안에 앉아있는 한 사람을 표현한 사진을 많이 사용하죠. 그러나 겉으로 멀쩡하거나 심지어 과도하게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숨겨진 진짜 우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울감과 공황장애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학교 관리자분들과 같은 학년 선생님들은 쾌활하고 씩씩해서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며 좀만 더 버티라고 하시더군요. 혹시 여러분이나 또는 주변에도 이런 이중적인 모습의 우울이 숨어있지는 않나요? 신체 통증이나 과도한 짜증 또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을 숨긴 채 웃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글나랩] 우울 해독 보고서 세 번째 페이지에서는 우울증의 가장 혼란스러운 얼굴, 즉 가면성 우울증의 숨겨진 신호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우울증 중기에 접어들었을 때, 저 역시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많은 우울의 얼굴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괜찮은 선생님이고 싶고, 착실한 딸이고 싶고, 지인들 틈에서는 밝고 활기찬 사람이고 싶었기에 오히려 힘든 상황을 잘 넘어가 보려고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모임을 만들곤 했었죠. 당시 저의 이야기들을 통해 '숨겨진 우울'의 단서를 확인해볼까요?
2014년 8월 중순. 1년 전부터 준비해 온 가족여행 날짜가 다가왔다. 그런데 두 달 전 발가락이 부러져 목발을 짚고 다니다가 겨우 깁스를 풀었기에 패키지로 신청해 둔 여행일정을 소화하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와 동생과 함께 하는 첫 여행을 포기할 수 없어 끝까지 고민하다 같이 가기로 했다. 하지만 공항에서부터 여행은 삐걱대기 시작했다. 향수를 하나 사고 싶어 면세점에서 이런저런 제품들을 보고 있었다. 샤넬에서 새로 나온 제품이 너무 맘에 들었다. 그걸 사고 싶다고 하자 엄마는 비싼 걸 사서 뭘 하냐며 핀잔을 주셨다. 갑자기 화가 벌컥 나면서 엄마와 함께 있는 게 너무 싫어졌다. 지금 내가 어떤 발로 어떤 맘을 먹고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건데, 어차피 내 돈으로 내가 사는데 왜 말리고 핀잔을 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대로 가게를 나와버렸다. 아직 근육이 다 돌아오지 않은 종아리가 아파 화장실에 앉아 울다가 다시 면세점에 가서 그 향수를 쳐다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버릴까 했으나 그래도 가족여행이니까 가보자고 마음먹고 비행기를 찾아 이동했다. 동생과 엄마는 나를 찾아다니다가 비행시간이 다 되어 비행기를 타는 곳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찾았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다음 날, 푸껫에서 날이 밝기 시작했다. 걱정이 시작됐다. 특별히 여행 2일 차에는 시장 구경,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그걸 생각하니 다리가 갑자기 막 아픈 것 같고, 너무 나가기 싫어졌다. 그대로 계속 뒤척이다 억지로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갔다. 날씨가 무척 좋았고, 호텔도 너무나 예뻤다. 그러나 내 마음은 오히려 짜증으로 가득 차기만 했다. 엄마와 동생은 호텔과 날씨에 감사하며 즐거워했지만, 그 모습을 보기가 너무 화가 났다. 아름답게 장식된 뷔페식당에서 골라온 것들을 먹으면서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느라 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다 튀어나온 말!
"엄마는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 나는 여기가 너무 싫어!"
사실 그냥 '오늘은 내가 피곤하니 쉬고 싶어요.'라고 말하려던 거였다. 근데 왜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엄마와 동생은 일정을 따라 호텔을 떠났고, 나는 숙소에 남기로 했다. 끼니때가 되어 호텔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으로 '볶음국수'를, 저녁으로 '똠얌꿍'도 시켜 먹었다. 그리고 휴식시간에는 호텔 안 풀에서 놀기도 하고, 근처에 있던 바닷가를 산책했다. 그리고 입이 궁금해서 유명한 감자칩 '레이스'를 사 먹으러 세븐일레븐에도 다녀왔다. 엄마와 동생은 과일은 잔뜩 사서 들어왔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같이 나눠먹고 다음 날에는 같이 여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행 내내 크게 즐겁지는 않았다. 멋진 것을 보고 맛난 것을 먹어도 엄마와 동생이 즐거워하면 자꾸만 심술이 났다. 여행 내내 가족들은 환자를 모시고 다녀야 해서 무척 피곤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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