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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ftable May 02. 2024

청춘의 방황은 무의미하지 않다

퀴즈쇼 - 김영하

“인생의 큰 시험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어.”


우리가 준비되었든, 준비되지 않았든, 운명을 우릴 시험한다. 갓 성인이 되어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때부터, 청춘이라는 탈을 쓰고 세상이 젊은이들을 협박하고 희롱하기 일쑤다. 지나가보니 희극이지 싶으면서도, 청춘은 불행 속에서 행복을 연기하는 사람들인 것만 같다.


주인공 이민수는, 그와 함께 살던 큰 이모의 죽음으로 갑작스레 세상에 내던져지게 된다. 그녀가 남겨놓은 빚으로 인해 집을 빼앗기는 것을 시작으로 그는 하룻밤 사이에 궁지에 내몰린다. 그가 세상과 맞서 싸우기 위해 한 걸음 나아가려고 해도, 선택이란 것이 아직 낯선 그는 그저 차악을 고르는 일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물론 유희는 있었다. 채팅 사이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퀴즈방을 시작으로, 주인공은 여러 영화 같은 일들과 마주한다. TV 퀴즈쇼에도 출연하고,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모종의 이유로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하며, 딱 봐도 수상한 어둠의 퀴즈쇼에서 막대한 돈을 벌기도 한다.


살해당할 위기까지 직면하고 나서야, 그는 어둠의 퀴즈쇼에서 도망친다. 많은 내용을 중략하긴 했지만 결국 중요한 건, 500페이지에 달하는 주인공의 역경과 고난, 누군가의 죽음, 그리고 이상야릇한 꿍꿍이들이 있고 난 후에, 주인공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잘 곳도 당장 밥을 먹을 돈도 없는 그 사내로.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게 되었다.


주인공의 행동들과 이토록 긴 여정이 바보 같고 허무하다고 느껴질 법도 한데,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을 날렸지만,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식견을 익혔고, 함께 나아갈 동반자가 생겼다. 여전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 기괴할 정도로 다양한 고난들로부터 주인공의 마음은 조금은 단단히 굳어졌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청춘의 방황은 헛되지 않는다고, 적어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책이 나에게 위로를 해주는 듯했다. 그 무의미해 보이는 돌고 돔이, 절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가슴속에 새겨두고 싶다. 가진 것도 뭣도 없는 젊음이지만,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성장하니까. 그리고 그 길목을 걷는 이가 나뿐만은 아니니까.


“잘될 거야. 다 잘될 거야.” 
별것 아닌 말인데도 그 순간은 지원의 그 말이 참 고마웠다. 


퀴즈쇼 -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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