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일종의 고백‘
솔직하게 고백해보고자 한다. 요즘의 고민은 바로 이것이다.
‘주변에 관심을 가지자’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도 아니고.
‘자나 깨나 사람 조심 지나간 사람도 다시 보자’ 정도랄까.
길을 걸을 때도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그냥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걷는 편이다. 이런 내 습관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어릴 때부터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큰 리스크를 안고 산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를 마주쳐도 단박에 알아보지 못해 오해를 산다. 대부분 상대방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코앞까지 아는 얼굴을 하며 다가와서야 ‘오,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직장에서 나는 인사왕이다. 누가 누군지 몰라서 그냥 무조건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고 다닌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랜덤으로 마주치는 모든 이들에게 그렇게 할 순 없지 않은가…?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나이가 되자, 꽤 곤란해졌다. 친구 엄마들을 놀이터에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가도, 다음날 학교 앞에서 만나면 알아보지 못했다. 저 멀리 상가에서 누군가 걸어와도, 상대방이 먼저 손을 흔들기 전까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더구나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는 나의 지병을 더욱 악화시켜서, 누군가 마스크를 쓴 얼굴과 안 쓴 얼굴은 두 사람으로 인식했다. 이렇게 불편할 수가. 아이에게는 인사를 잘하고 다니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그렇게 못하는 이 표리부동한 인간아…
그래서 나는 눈썰미 있는 사람이 너무나 부럽다.
몇 번 만에 상대방의 얼굴과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고, 아는 기척을 하더라.
때로는, 심지어 그들은 다 알고 있어도 모른 척도 가능하다.
나의 성향도 이 불편함에 일정 부분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도통 관심이 없고,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주변을 살필 여유 자체가 없다. 사실 ‘누가 누굴 걱정하나‘란 생각에 남들 걱정할 시간에 나부터 챙기자고 생각하기도 했다. 워낙 허술한 인간이기에 내가 나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걱정 끼칠 시간에 내가 내 일이나 잘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만 주변을 살필 수 있다.
그동안의 나는 너무 시야가 좁고, 나만 생각하고, 나는 내가 개인주의자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기적인 인간에 가까웠음을 고백한다.
그동안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아닌 것이 더 많았다.
사실 더 솔직해지자면, 아닌 것을 알아챘어도 그냥 인정하기 싫어했다.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 못 하면, 한 번 더 쳐다보고, 그 사람의 인상착의를 좀 더 기억해 두고, 메모해 두면 될 것이었다. 다정하기. 사랑하기. 그건 내가 항상 동경하던 일이었다. 나를 속이지 말고 순간의 진심으로. 이제 복직이 일주일 정도 남았다. 날이 따뜻하다.
사랑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또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나는 가끔씩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
나를 속이며 순간의 진심 같은 말로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나는 너를
또 어떤 날에는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나를 좀 안아 줬으면
다 사라져 버릴 말이라도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서로 다른 마음은 어디로든 다시 흘러갈 테니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