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눈 위로 발자국을 내며, 기억을 불러오는

이영훈 '기억하는지' / 브로콜리 너마저 '1/10'

by soft breezes

듣자마자 마음이 녹아내리는 목소리가 있다.

이영훈의 '기억하는지'를 들으면 흰 눈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

소복하게 쌓인 눈 위로 뽀드득 발자국을 내며 천천히 걷고 싶어 진다.

(서로 노래를 바꿔 부른 옥상달빛의 버전도 추천합니다)


천천히 꾹꾹 눌러쓴 편지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음 한 음 급하지 않게,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이영훈 님의 노래를 듣다 보면 배우다 그만둔 기타가 생각난다.

비록 이사하면서 목이 꺾여서 보내주었지만 무려 낙원상가에서 업어 온 내가 고른 기타.

저음이 참 멋있었는데 말이야. 물론 그곳에서 뮤즈님의 연주를 듣고 반해서 가져온 거지만.

꽤나 크고 긴 기타를 배낭 메듯 어깨에 업고 집으로 돌아오던 버스가 생각난다.


한참 동안을 아무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았던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별들로 가득했던 밤
넌 기억하는지
가끔은 그리움에 잠 못 이루기도 하는지
상관없는지
난 아직까지도 눈에 밟히는 듯 선명하기만 하여
그대가 이 길의 끝에서 날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어떤 기억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침묵만이 필요하다.

2012년의 겨울이었다. 놀랍게도, 과거의 블로그​에서 찾아왔다.

처방전 내리듯 찾아 듣는 노래들은 사실, 이 과거의 블로그에서 시작되었다.

하루에 십 분만이라도 기타를 안아주자고 했는데, 요조를 꿈꾸었는데, 지금 그 기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내가 기타를 한창 배울 때 창피하지만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더듬더듬 짚어 보았고,

비가 올 때 빗소리를 들으며 줄을 튕겨 보기도 했다.

추울수록 외로울수록 묵직한 기타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비스듬히 기울여 연주하는 기억은.


실제로 겨울에 발매된 곡들이, 겨울에 잘 어울린다.

실제로 또 다른 2012년의 겨울에 들었던 곡이다.

(나에게 2012년은 어떤 의미였는지…? 벌써 10년도 더 지났다니)


나의 직장은 시의 경계에 있었는데, 하나의 작은 고개를 넘어야만 했다.

놀랍게도 2012년의 겨울에 제설작업이 하나도 되지 않아 버스에서 내려 고갯길을 걸어갔던 적도 있다.

그 해 겨울은 눈이 많이 왔었나 보다.

그날도 퇴근 후에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창밖으로는 눈이 많이 아주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폰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뽀드득뽀드득 아직 누구도 밟지 않은 눈길을 모양내며 걸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날들의 열에 하나만 기억해 줄래
우리가 아파했던 날은 모두 나 혼자 기억할게
혹시 힘든 일이 있다면 모두 잊어줘 다 나의 몫이지만
듣고 싶은 말이 남았다면 네가 했던 말 다 너에게 줄게


이 노래도 기억에 관한 노래구나.

열에 하나만 기억해 달라고 한다.

시간은 너무나 공평한 것 같은데, 기억은 정말이지 너무나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의 기억을 바로잡아 주고 싶지도 않고,

나의 기억 또한 팩트체크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지금 순간의 기억으로, 비록 실제와 다르더라도, 그건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기에.

눈을 맞으며 두 노래를 들었던 기억으로.

해마다 돌아오는 겨울에, 내리는 눈을 맞으며, 기억하기 위해 노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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