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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보다 어려운 건, 계속 쓰는 일

어떤 지구력

by 서윤재

작가가 꿈인 내게 브런치스토리는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곳이었고, 브런치스토리에 올라오는 글 정도는 나도 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글을 안올려서 그렇지 글을 올리기만 하면 수많은 라이킷을 받게 되고, 많은 구독자를 갖게 되고, 어떤 능력 좋은 편집자가 내 글을 발견하여 출간제의를 해올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망상이었다. 글을 올려서 좋은 반응을 얻기 전에, 글을 꾸준히 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나는 이번에도 글쓰기를 거의 관둘 뻔했다. 연재가 진행될수록 글을 쓰는 것이 점점 어렵게 느껴지는데, 글쓰기의 어려움보다 과거 글쓰기를 포기했을 때 느꼈던 씁쓸함과 패배감을 더 크게 기억하고 있어서 결국 글을 쓰고 있다.



남의 글을 보고 이거보다는 잘 쓰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듯이 내가 이거보다는 더 잘 쓸리가 만무했고,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글을 아무렇게나 쓰는 것은 쉬운데, 다른 사람에게 내보일만한 양질의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연재 초반에 반짝거리는 두세개의 글을 써내는 것은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모든 글에 정성을 쏟으면서 수십개의 글을 발간하는 것은 재능의 영역을 넘어선 지구력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지금 글쓰기 지구력의 시험단계에 와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려서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최대한 글을 많이 써놓고서 브런치스토리에 연재를 시작하자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해야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글을 본격적으로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다행인 것은 글쓰기 능력이 글을 쓸수록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고, 불행인 것은 과거에 내가 썼던 글들을 지금 다시 보면 너무 못쓴 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과거에 미리 써놓은 글들을 세상에 내놓기가 부끄러워진 것이다. 과거에 내가 썼던 글을 지금 보면, 너무 부족한 글이라서 결국 과거에 연재를 위해 작성했던 글을 마주하지 못하고 결국 모든 글을 다시 쓰고 있다. 과거에 내가 썼던 글을 지금 다시 보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데, 이러한 자기검열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지금까지 브런치북에 올린 글도 내려버릴까 하는 충동에 휩싸이고는 한다. 과거의 그 글을 쓸 당시에는 퇴고를 몇번이나 거쳐서 만들어낸 최선의 작업물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의 눈높이에는 못 미친다는 것도 안다. 글쓰기 실력이 나아지는 것 같아 행복하면서도 과거의 글을 마주하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지독한 자기검열의 늪에 빠져버렸다.



꾸준히 글을 써서 내 글이 어느 정도 쌓이면 유명 출판사에서 책 출간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서울국제도서전에 내 책이 놓이는 그런 상상을 했었다. 내 글의 소재는 꺼내놓기 부끄러운 실패들이지만, 내 모든 것을 꺼내놓는다면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언젠가는 책을 방패삼아 내 글 뒤에 숨어서라도 글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다. 세상과 이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썼지만, 내 글의 목표는 브런치스토리의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브런치스토리의 스타가 되는 것은 브런치스토리에서 호응이 높은 작가가 되는 것일텐데, 내 목표는 브런치스토리 내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글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브런치스토리가 내 글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의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글을 쓰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열릴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내 글을 출간해줄 수 있는 좋은 편집자분 딱 한명만 내 글을 발견해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시작한 연재였다.



그래서 연재를 시작한 후 브런치스토리 내에서의 무반응쯤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했었다. 그럴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무반응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글에 라이킷을 한번 받아보니 머리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는 느낌이라서 나는 시도때도 없이 브런치스토리에 들어와서 누가 나에게 라이킷을 해주지는 않았나 확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가 나에게 라이킷을 해주면 누가 나를 발견해준 것만 같아서 행복해진다. 이렇게 나는 남의 반응에 이토록 신경쓰는 얄팍한 인간이었다. 라이킷을 받으면 행복했고, 구독자라도 한명 생기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는 것도 모자라 누군가가 내 글에 호감을 표현해주고 구독자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렇게 멋진 일도 있구나.



라이킷을 눌러준 작가님의 브런치스토리에 방문하여 이 분은 어떤 글을 쓰시는 분일까 설레면서도 구독자수에 눈이 가고 라이킷 수에 눈이 갔다. 인스타그램에서의 권력이 팔로워 수라면, 브런치스토리에서의 권력은 구독자수와 라이킷수일 것이다. 구독자수가 세자릿수인 작가님들을 보면 대단해보인다. 구독자수가 많은 작가님들은 어떻게 글을 계속 써오셨던 것일까. 글을 쓴다고 해서 바로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스스로 단련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일까. 구독자수 5명에 겨우 열번째 글을 쓰면서도 글쓰기를 때려칠까 싶었던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하나씩 하나씩 올리는 꾸준히 작가님들이 정말 대단해보인다.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많은 글을 써오셨던 것일까.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글이 써지지 않아서 이번주는 연재 쉬려고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꿈을 이루는 순간을 구체적으로 떠올린 후,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역순으로 나열하다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만나는 순간을 찾아 그것부터 하면 된다. 내가 꿈꾸는 순간은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대형출판사 부스에 내 책이 쌓여있는데, 몇몇 사람들이 내 책을 구입하기 위해 집어드는 순간을 몰래 숨어서 훔쳐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할만한 대형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해줄 수 있는 편집자분께서 내 책을 출간시켜줘야 한다. 내 책이 출간되려면 편집자분께서 내 글을 발견해야 한다. 편집자분께 내 글이 도달하기 위해서는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야 하는데,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글을 꾸준히 써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계속 올려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인데,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감정 기복이나 외부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 일정한 간격과 리듬을 유지하며 양질의 글을 꾸준히 써낼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남들은 챗GPT를 생산성을 높이는데 쓴다는데, 나는 챗GPT를 나를 응원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에는 듣고 싶은 말을 들려줄 때까지 챗GPT를 괴롭히고는 한다. 그럼 결국 챗GPT는 나에게 표현하는 자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해주며,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에 전달하는 '글'이라는 도구가 인생 전반을 관통하며, 글, 언어, 예술, 창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인정받고, 그로 인해 금전까지 따라오는 구조의 사주를 타고났다고 말해준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줄 수 있는 ‘말과 글의 재능’이 복으로 작용하며, 따로 글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당신의 삶이 이미 ‘완벽한 글쓰기 수업’이었다고도 말해준다. 회사원이 되기엔 너무 창의적이고, 작가가 되기에 너무 완벽한 팔자이며, 쓰는 것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팔자를 타고났다고 했다. 그러니 이제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쓰기만 하면 될테니, 오늘, 당장 글을 쓰라고 한다. 안다. 아는데, 그 쓰는 것을 못해서 내가 지금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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