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르바이트
프리랜서로 일할 때였는데, 프리랜서였지만 회사에 상주하는 형태여서 매일 9시 출근, 6시 퇴근을 했었다. 일은 별로 없었고, 나는 딴생각을 많이 했었다. 친구도 없었고, 칼퇴는 칼같이 하고, 주말에 약속도 없던 나는 주말마다 집에 콕 들어앉아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는 했다. 나는 왜 이럴까, 언제까지 이럴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세상 하나마나하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자기비하 대회가 열린다면 1등을 할 자신이 있었다. 당시 나를 답답하게 했던 것 중 하나는 돈이었다. 돈 때문에 매일같이 한숨을 쉬니 지인 중 한명이 주말에 집안에서 쓸데없이 자기비하하며 부정적인 생각이나 할거면 차라리 나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라고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식당 아르바이트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식당은 당시 근무하던 건물 지하에 있던 복합쇼핑몰의 식당이었다. 매일 오다가다 보는 가게였는데, 음식 가격이 비싸서 점심메뉴로 이 돈 주고 저 메뉴는 못먹겠다고 생각하던 가게였다. 손님으로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가게였는데, 알바가 구해지지 않아서 여기저기 지원서를 내다보니 거기까지 지원하게 되었다. 1순위였던 편의점이나 카페는 모두 떨어져서 30대 중반의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건 안되나보다 싶어 포기하려던 찰나 내가 근무하던 건물의 지하 복합쇼핑몰의 한 식당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예쁜 알바생도 아니고,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닌데, 출근하라고 해서 놀랐었다. 30대 중반에 알바경력이 전무한 나는 아르바이트가 쉽게 구해지지 않아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 그런데 내 고용형태는 어딘가 억울한 면모가 있었다.
주말 오후부터 밤까지 6시간을 일하는데 중간에 식사시간도 없고, 쉬는시간도 없고, 말 그대로 발바닥에 땀이나도록 계속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다른 알바생들은 힘든 업무시간을 피해 오전에만 근무하고 퇴근했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오전근무만 하고 퇴근하면, 분리수거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고 오고, 주방청소를 하는 것은 오후에 출근하는 내 몫이었다. 거대한 양의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가장 비위가 상하고 힘들었는데, 그 식당 특유의 음식물쓰레기 냄새는 5년이 지난 지금도 떠올릴 수 있을만큼 강렬했다. 음식물쓰레기의 양도 엄청 많아서 두번에 나눠서 버리고는 했는데, 이건 아르바이트생들이 제일 기피하던 일이었다. 시급은 낮은데 일이 너무 힘드니까, 당시 30대 중반인 나에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던 것 같다.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대학생들이나 20대는 굳이 힘든 일을 적은 돈을 받고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고, 나는 직장에 다니니까 주말밖에 일을 못하는 데, 힘든 일이어도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기꺼이 했던 것이었다. 일이 진짜 말도 못하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감사했다. 일했던 식당은 30명의 알바생이 있었는데, 내가 30대 중반이었고, 그 다음으로 나이 어린 사람이었던 정규직 매장매니저가 27세였고, 그 다음으로는 모두 19세~21세였다. 이런 매장에 30대 중반의 알바경력이 전무한 나를 뽑아준 것 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은 매우 고되어 일을 할 때에는 온갖 잡생각이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었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 중 첫번째는 알바생들 관리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는 알바생들에게 서비스마인드를 기대해서도 안되겠지만 그래도 고객에게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컴플레인을 받을 때는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일했던 식당은 알바생이 평일, 주말, 주간, 야간 다 포함해서 알바생이 30명은 되었기 때문에 알바생 교육은 둘째치고서라도 알바생이 펑크가 나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아보였다.
두번째는 식당 운영 측면에 관한 것이었다. 일하던 식당은 서울의 유명 쇼핑몰이었고, 일을 하다 보니 그 식당의 임대료가 몇천만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식당의 원가율이 한 35%정도였던 것 같은데, 인건비랑 공과금 등 비용을 빼더라도 남긴 남는것 같았다. 나중에는 재료구매과정까지 볼 수 있었는데, 사이드메뉴는 전부 반조리식품을 사용해서 데우거나 튀기기만 해서 내보냈다. 아니면 재료에 소스만 부어서 나가는 식이었다. 원래도 비싸서 안가던 식당이었는데, 조리과정과 재료의 원가까지 보고 나니 그 음식을 그 돈을 내고 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한동안 그 식당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사람이 라면만 끓여줘도 좋기 때문에, 지금은 갈 수 있다. 데우기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가끔 식재료 값이 떠오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비싼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치킨을 시켜먹을 때, '생닭이 한마리에 얼마인데...' 싶은 순간이 그렇다. 하지만 음식 가격에는 단순한 식재료값 말고도 인건비와 폐기물 처리비 같은 보이지 않는 비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험해 본 음식장사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음식을 조리하는 것은 음식장사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분의 일부였다. 이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었다. 외식을 할 때 음식가격을 보면 원가를 떠올리며 본전생각이 나긴 하는데, 그래도 그 음식에는 누군가의 수고와 시간이 녹아있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돈을 받고 일한다고 해서 일의 고단함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모든 쇼핑몰에는 지하에 거대한 쓰레기장이 있다는 것이다. 쇼핑몰의 직원용 통로를 통해 지하 4층, 5층까지 내려가면 아주 거대한 쓰레기장이 있는데, 너무 거대해서 영화 세트장 같았다. 거대한 쓰레기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여기에서 분리수거 쓰레기, 일반쓰레기, 음식물쓰레기를 배출한다. 식당에서 배출되는 음료수병이나 일반쓰레기의 양은 어마어마하고, 음식물쓰레기의 양도 어마어마한데, 누군가는 이것을 매일같이 배출하고 청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감시간이 되면 모든 식당의 마감 담당 직원들이 매장에서 발생한 쓰레기들을 버리기 위해 지하 쓰레기장에서 모이고는 했는데, 그렇게 지하에서 차례대로 쓰레기를 버리다보면 이 늦은시간까지 일하는 사람이 혼자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위로받기도 했다.
이렇게 토,일 주말에 오후 네시부터 열시까지 여섯시간씩 주말 아르바이트를 세달 반이나 했는데, 결국은 관두었다. 관둔 이유는 21살짜리 다른 알바생이 나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서 그로인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급을 받으면서도 일이 다른 시간대에 비해 특히 힘들고, 애매하게 12시간만 근무해서 주휴수당도 못받고, 다른 알바생에게는 마땅하게 주어지는 휴식시간이나 식사혜택이 없고, 쓰레기를 비우고, 주방바닥과 후드를 청소하는 마감업무까지 주어지는 것은 괜찮았는데, 인간관계가 가장 어려운 나로서는 누군가 나에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알바를 관두었다.
세달반동안 식당에서의 아르바이트가 내게 남긴 것은 한달에 40만원, 50만원 가량 되는 부수입이었는데, 그것은 단순한 수입이 아니라, 몸을 움직인 만큼 돈이 따라온다는 명확하고도 물리적인 감각이었다. 정규수입 외에 아르바이트를 통해 버는 부수입은 부수입만큼의 경제적 여유를 주었다. 월수입이 40,50만원 늘어나는 것은 정말 달콤한 일이었는데, 직장에서의 월급날 외에 통장 잔고를 보며 행복해하는 날이 하루 더 생겼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정말 고된 일이었지만 내가 회사 밖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돈을 벌 수 있다.' 라는 경험으로 바꾸고나서 뚜렷해지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회사일이 힘들 때마다 회사 때려치고 식당에서 설거지라도 하면 굶어죽진 않겠지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실제로 식당에서 설거지를 할 수 있을까 궁금했었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방 뒤편에서 설거지를 많이 했는데, 접시와 그릇이 무거워서 힘들었지만, 초벌설거지를 하고 나서 기계에 넣기 때문에 어깨가 떨어져나갈것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확실히 식당에서 몸을 힘들게 움직이면 인생은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인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고 '그릇이 몇 개 남았구나.', '주문이 몇 개 남아있구나.' 처럼 바로 눈앞에 닥친 현실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당시 내가 잘하던 자기비하와 우울함,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주말 알바를 하는 12시간동안 스마트폰을 볼 수도 없었는데, 이것만으로도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뒤로 회사생활에서 궁지에 몰릴 때마다 회사를 관두고 식당에서 알바나 해볼까 하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게 되었다. 퇴근 후나 주말에 '투잡을 한번 뛰어볼까?' 하는 생각도 더는 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생각들은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인생에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되는데,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고민을 앞으로의 인생에서 제거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아르바이트는 의미가 있었다. 경험은 때때로 나의 가능성을 확장시켜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불필요한 생각을 지워주는 힘도 있다. 직접 해봤기에 이 생각에 대해서는 더는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아마 웬만해서는 다시는 하지 않을 경험이지만, 그 덕분에 회사를 관두고 알바를 하면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