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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 뒤에 남은 것들

어떤 시험

by 서윤재

자라온 환경에서는 주변에 전문직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친척들 중에서도 없었고, 동네 이웃 중에서도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전무했다. 내 주변에서는 회사다니면서 월급받는 사람이 제일 잘 살았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내 장래희망은 회사다니는 월급쟁이었다. 오랫동안 월급쟁이로 선택받지 못해서 구직기간이 길어졌는데, 첫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했을 때, 외숙모는 엄마에게 내가 계약직이냐고 몰래 물어보셨다. 여자의 직업은 계약직인 것이 당연한 어른들 속에서 자랐고, 나도 그 생각에 거부감이 크게 들지는 않았었다.



그렇게 사회인이 되어 월급을 받고 다니는데, 월급을 받아도 직업의 불안정성과 실력에 대한 불안함은 직업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취업만 하면 돈을 모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직장이 생겨도 또 다시 직업에 대한 고민의 시작이었다. 학벌이 좋은 편이 아니고, 기술직도 아니고, 일을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나마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 내가 가진 전부라서 직업에 대한 고민은 늘 무거웠다. 답이 나오질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전문직을 가진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되었다. 부러웠다.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직업적인 안정성이 나보다는 나아보였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안정성보다는 전문성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회에서 기능적으로 유용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전문직은 사회적으로 유용해보였다. 10년 이상 직장생활을 했지만, 직업에 대해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 나는 나라서 내가 한 일이 조금이라도 특별하길 바랬지만, 내가 하는 일은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일이었다. 퇴사를 하면 내 자리는 쉽게 채워졌다. 이제 마흔살인데, 앞으로 회사생활이 5년 정도 남았을까, 10년정도 남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노후대비는 커녕 현재 다른 소득이 없으니 최대한 오래 일을 해야 하는데, 회사에서 오래 일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30대에는 조기은퇴를 꿈꾸었는데, 40대가 되니 퇴사는 나의 의지와 상관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30대에는 퇴사를 할 가능성이 높았다면, 40대에는 퇴사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생계를 위해 최대한 오래 일해야만 하는데, 돈을 버는 회사에서의 시간이 너무 괴롭지 않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가지는 수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를 충족해줄 수 있는 것은 전문직 자격증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직 자격증은 절대 가질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하면 자격증이 생기는 이 단순한 원리를 한번 해보자는 결심이 들었다. 언제나 선망하고 부러워 했던 전문직을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20대에는 전문직에 대해 알지 못해서 도전조차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었다. 주변에 지인 중 한명이라도 전문직이었다면, 집안 어른 중에 전문직이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릴적부터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진로를 생각해볼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한 것아 아쉬웠다. 그리고 뒤늦게라도 시험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한번쯤은 공부해보고 싶었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뒤늦게 달래고 싶었다.



그래서 불혹을 앞둔 나이에 전문직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다. 자격증에 대한 기초적인 배경지식도 없었고, 공부습관도 없었는데, 더 늦으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것 같아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그냥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도전했던 전문직 자격증 시험은 1차가 객관식이었는데, 평균 60점, 과락 40점을 넘기면 되는 시험이었다. 객관식이면 좀 해볼만한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학창시절에도 공부를 잘 했던 적이 없다. 제대로 공부를 해 본 적도 없었다. 사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었고, 주변에 언니나 오빠가 있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내 학벌이 이정도인 것 같아서 아쉬웠다. 주변에서 대학입시를 치루는 사람을 한명이라도 봤더라면, 내가 대치동이나 강남에서 살았더라면 나도 면학분위기에 휩쓸려 공부를 더 잘할 수 있게 되지는 않았을까. 그럼 더 좋은 학벌을 얻게 되지는 않았을까. 어렸을 때 갖지 못했던 기회에 대해 성인이 되고나서 여러번 곱씹어보고는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잘 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과 나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이길래 왜 저들은 갑이고, 왜 나는 을일까 생각했었다. 왜 나는 저들보다 연봉을 더 높게 받을 수 없을까. 같은 시간, 아니 어쩌면 내가 더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왜 내 연봉은 저들보다 훨씬 낮을까. 내 업무강도가 훨씬 센 것 같은데, 연봉은 그들이 더 많이 받는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하다보면 끝이 없었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의문점들을 한번에 해결하기 위해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었다. 전문직 자격증이 있으면 내 학벌이 높지 못한 것, 업무적 전문성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는 것. 이런 고민들을 한번에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문직 자격증이 유일한 돌파구처럼 느껴졌다.



총 4개월 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모든 욕망을 접어놓은 채 공부에 매달렸다. 아무래도 전문직 자격증이라 내가 준비했던 시험이 어려운 시험이기도 했지만, 인터넷에서 3개월만 하고 붙었다더라 혹은 직장병행하면서 합격했다더라 이런 합격수기를 읽고 나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합격의 주인공이 내가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 다음부터는 죽어라 공부했다. 스터디카페를 끊어서 퇴근 후와 주말 내내 공부에 매달렸다. 준비기간이 짧다보니 공부가 힘들 새도 없이 범위를 따라가기에 바빴다. 공부를 손에 놓은지 20년은 되어서 공부 습관도 전혀 없는 상태라서 그냥 다른거 아무것도 안하고 공부만 했다. 그냥 눈에 읽히고 죽어라 공부를 해봤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때에도, 대학생 때에도,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던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여전한 그대로의 나일 것 같아서, 그게 싫어서 시험을 준비하는 4개월 동안은 공부만 했다. 직장과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4개월이었다.



자격증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묘한 만족감을 주었는데, 어쩌면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할 수도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이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시험에 합격만 한다면, 지금까지 인생에서 아쉬웠던 연봉이나 업무에 대한 고민들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가득 차있었고, 시험에 합격해서 주변 사람들을 놀래켜 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알고보니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했다더라. 대단하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확실한 성취를 통해 자신감을 갖고 싶었다.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니까,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니까 전문자격증을 취득하여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결국 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간절하게 공부를 했지만, 공부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퇴근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영혼을 탈탈 털리듯이 일하고 와서 그냥 퇴근하고 누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모른척 하면서 그냥 했다. 하고 싶은 것들이나 나를 챙기고 돌보는 것은 시험에 붙고 나서 하자고 미뤄두었다. 공부를 하기 전에는 직장에 다니며 운동도 꾸준히 했었는데, 자격증 공부를 했던 4개월 간은 운동도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을 공부하는데 썼다. 그 시간들이 힘들었지만 한번에 붙는다면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전업수험생들이 부러웠지만, 회사에서 돈을 벌기 때문에 비싼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공부를 하면 뇌가 활성화되서 과거에 뇌에 각인된 부정적인 생각들까지 활성화된다고 한다. 공부를 하다보면 과거에 내가 실수한 것이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과거가 계속 생각이 나서 미치도록 힘들었다. 깨진 인간관계들, 바보같은 실수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서 어떤 날은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머릿속에서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자동재생되어 어쩔 수 없이 과거를 곱씹고 있자니 마음이 지옥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는 것은 현실도피와 맞닿아있어서 회사일로 힘들거나 인간관계로 힘들 때 나는 종종 공부로 도망을 치기도 했다. 오랜 인간관계에서 떨어져 나왔어도,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인 여행을 가지 못해도 공부를 해야하니까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생각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어떤 날의 공부는 과거의 부정적이었던 경험을 계속 떠오르게 해서 힘들게 했지만, 어떤 날의 공부는 팍팍한 현실의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공부를 하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공부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순간들이 여러번 있었다. 공부는 한편으로 희망이고, 기도였다.



시험이 한달 쯤 남았을 때, 나는 내가 시험을 볼 준비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험 범위를 제대로 커버하지 못했고, 공부한 부분도 충분히 공부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전까지는 공부하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부터는 이 정도로 공부해서는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몰려왔다. 내가 뭘 믿고 이 시험을 4개월만에 붙을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일까. 그제서야 객관적으로 내 실력이 눈에 들어왔다.



전문직 자격증 시험이 이렇게 쉽게 붙을 시험이 아닌데 나는 다를 것이라고 믿고 전문직 자격증 취득에 대한 환상을 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의 목표는 시험 전날까지 머릿속에 하나라도 더 넣어서 시험을 보러가자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어차피 떨어질 것 같아서 그만 준비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는데, 시험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시험을 꼭 보러가자며 나를 달랬다. 시험이 끝나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말고, 내려놓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이 과정을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시험일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는 포기하지 않고 시험을 보러 갔다. 시험시간은 정말 너무 촉박했고, 모르는 문제가 많았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문제를 제대로 풀 수가 없었고, 못 푼 문제는 객관식이라 한 번호로 찍었다. 시험은 나에게 너무 어려워서 시험을 치는 내내 좌절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답을 찾아내려고 했다. 어떤 부분은 2번으로 다 찍었는데, 그 부분의 답은 모두 3번이어서 3번으로 찍을 걸 하는 후회를 많이 했다. '3번으로 찍을 걸. 그럼 과락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하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시험이었기에 결과는 예상했지만, 막상 시험을 치르고 나서 한동안 무기력했다.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한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무기력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었다. 자격이 없는 무기력을 겪는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 시험 후기를 찾아보니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리고 학벌도 좋은 대학생들도 휴학을 하고 몇년씩 준비하는 시험이었고, 그 학생들도 한문제로 떨어졌네 두문제 차이로 떨어졌네 하는 글을 보니 내가 도대체 뭘 믿고 직장병행을 하면서 그 시험에 단기로 도전을 했을까 싶었다. 기초 배경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4개월만에 직장을 병행하면서 절대 붙을 수 없는 시험이었다. 시험 점수가 아슬아슬하게 부족해서 떨어진 것도 아니었고, 그냥 확실하게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험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2번이 아니라 3번으로 밀었다면? 어쩌면? 어쩌면 합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들었다. 고시와 공무원 시험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시험에 떨어진 수험생들이 시험을 다시 보면 합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는데, 나도 그랬다. 어쩌면, 공부기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나도 붙지 않았을까? 내가 다른 번호로 찍던가 내가 시험에 많이 나왔던 부분을 좀 더 공부했더라면 어쩌면 4개월만에 합격한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동안 이 생각이 날 괴롭혔다. 준비를 더 해서 내년에 다시 본다면 붙지 않을까? 그래도 이번에 공부를 좀 했으니까 몇 달 쉬고 다시 공부를 하면 내년에는 붙을 수 있지 않을까? 시험이 끝났어도 내 마음은 한동안 답안지를 붙들고 있었다.



겨우 4개월 공부했던 시험에서 떨어지고 나서 정말 힘들어했었는데, 그때 주변 지인이 '공인중개사 시험도 직장병행해서 1차를 4개월만에 붙는 것은 불가능하다. 네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우습게도 나는 이 말에 큰 위로을 얻었다. 이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는데, 나는 공인중개사 시험 1차를 4개월 만에 붙을 자신이 없다. 그래서 '아, 그렇지.' 하고 수긍했다. 나중에 시험을 다시 볼 지는 아직 모르겠다. 시험을 다시 준비한다면 다시 처음부터 전 범위를 봐야 할텐데 지금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는 이 시험을 포기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다시 준비하게 될 것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이 전문직 자격증의 공부가 내 안에 무엇을 남겼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불합격했으니 공부를 했던 4개월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그 시간들은 불합격 앞에 사라진 무쓸모의 시간이었을까. 그것도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 이 경험을 아직 내 안에서 결론내리기에는 이른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이 경험이 내 안에서 분명히 어떻게 작용할 것이라 믿는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생각해 볼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한데, 퇴근 후와 주말에 이 정도 까지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어쩌면 장편소설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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