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귀환
재테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서울에 본가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유리하다. 월세나 보증금을 대출해서 마련하는데 따르는 대출원리금 같은 비용이 들지 않으며,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자취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본가도 서울이고, 회사도 서울이어서 굳이 자취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본가를 나오는 일은 결혼할 때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은 맛있었고, 본가에서 부모님 보호를 받는 것은 안락했다. 30대 중반을 넘을 때까지도 정서적,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크게 의지를 하고 있었고, 이것은 내 안정감의 핵심이었다. 부모님도 결혼 전까지는 본가에서 같이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셨지만, 내가 30대 중반이 넘어가도록 결혼을 안하게 될 줄은 부모님도 몰랐다. 재테크 유튜브에서는 자취를 하면 숨만 쉬어도 돈이 드니 최대한 본가에서 지내면서 돈을 모으라고 했었고, 본가에서 안락하게 아무 노력없이 살면서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자가를 마련한 사람들과의 자산격차를 깨닫기 시작한 것은 그때쯤이었다. 일찍이 서울에 상경해서 집없는 서러움을 느끼고 결국 자가를 마련한 지인들이나 결혼을 하고 자가를 마련한 사람들과의 자산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졌다. 자가를 마련한 사람들과의 자산 격차는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것으로 아낄 수 있었던 월세를 다 모아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자산은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 생기는 것이라 생각해서 집과 같은 자산축적은 나중으로 미뤄두었을 뿐인데, 일찍이 부동산을 마련한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 결혼유무를 떠나서 자산축적을 했어야 했는데,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산축적에 소홀한 결과 앞으로의 인생을 다 써버려도 부족할 만큼의 격차가 벌어졌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본가에서 부모님에게 정서적,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살아도 되는걸까? 결혼을 하지 않으면 본가에서 살아도 되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면 자취를 해서는 안되겠지만, 겨우 돈을 아끼겠다는 이유로 자취도 안해본 채 더 나이들고 싶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10대에도 자취를 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생활 공간을 꾸리는 것을 모른다면 나는 평생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내가 60세쯤 되었을 때, 누군가 왜 좀 더 젊었을 때 본가에서 나와서 살 생각을 하지 않았나요? 라고 물어본다면, '어떤 재테크 유튜버가 돈 모으려면 본가에 살면서 돈을 아끼라고 해서 그 말을 듣고 독립을 하지 않았어요.' 라고 밖에는 대답할 수 없는데, 실제로 이렇게 되면 땅을 치고 후회 할 것 같았다.
본가에 살면서 절약할 수 있는 생활비도 중요했지만, 절약할 수 있는 생활비 때문에 혼자 일상을 가꾸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할 기회를 모른척하고 있었다. 어떤 공간에서 살고 싶은지, 혼자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살 곳을 어떻게 마련하는지, 예산은 어떻게 마련하는지, 임대차 계약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혼자 살아가기 위해 어떤 비용들을 감당해야 하는지 등을 알지 못했다. 독립을 하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독립을 해야 내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에 더 가까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뒤늦게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인생 첫 독립을 결심하게 되었다.
살 곳이 정해진 후에는 1인 가구로 살아가기 위해 모든 살림살이를 준비했다. 혼자 사는 것이 처음인 겁쟁이라서 실제로 혼자 살게 되면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어떤 물건이 필요할 것인지를 몇번이고 시뮬레이션하면서 필요한 목록을 작성했다. '밥을 먹을 때에는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이 필요하지. 설거지를 할 때는 수세미와 주방세제가 필요하겠지. 행주도 필요하겠다.' 이런 식으로 마음속으로 독립한 후의 하루 일과를 상상해보면서 준비해야 할 물건들을 준비했다.
본가에서 최대한 많은 물건을 가져와서 시작하는 안락한 독립이었지만, 혼자 산다고 해서 일상에 필요한 물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 살아도 다리미와 다리미판이 필요하고, 혼자 살아도 망치와 드라이버가 필요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독립을 준비하면서 당황하지 않기 위해 미리 필요한 물건을 모두 준비한다고 준비했는데, 이사하던 날 집을 정리하다보니 필요한 물건이 계속 생겨서 이사날에 다이소에 6번 다녀왔다. 수세미랑 행주를 미리 사놓은 것은 잘했는데, 수세미 거치대와 행주 걸이가 필요하다는 것은 몰랐기 때문이다.
혼자 살아보니 샴푸와 화장실 휴지, 세탁용 세제 등과 같은 생필품은 사용량을 파악해서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도 채워놓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몸이 피곤해서 설거지를 미루거나 청소를 미루면 나중에는 몸이 피곤해질 때까지 설거지나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빨래, 식사준비, 설거지, 청소 등을 내가 해야 하고, 인터넷 비용, 가스비용, 공과금 비용 등 모든 것을 내가 챙겨야 했다. 관리비도 내야 했다. 벌레가 나와도 내가 해결해야 한다. 지금 당장 빨래를 하지 않으면 내일 신을 양말이 없고, 내일 입을 속옷이 없는 긴장감 속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집안일을 했다. 냉장고 안에 넣어둔 음식이 상해서 버리면 돈을 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렸다. 빨래건조기가 없어서 세탁기를 돌린 후에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놓고 출근하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세탁기를 돌려놓고 한숨 돌리다보면, 어렸을 때 들었던 우렁각시 우화가 떠올랐다. 나도 우렁각시가 필요했다.
하지만 1인 가구의 생계를 부양하는 가장으로써 내 가정을 지켜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과 고단한 집안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독립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독립을 하고 나서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살던 월세집의 변기커버는 뒷부분의 연결부분이 부러져서 변기를 사용하려고 앉을 때마다 변기커버가 옆으로 도망가버리고는 했는데, 이 때문에 변기에 앉을 때마다 화가 났었다. 몇 달동안은 변기를 쓸 때마다 짜증을 내다가 나중에는 '이거 고칠 수 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산적인 의문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변기 커버만 따로 팔고 있었다. 이 발견은 몇 달 동안의 불편함이 해결되는 큰 도약의 첫 시작이었다.
집 안에서 필요한 간단한 수리나 소모품 교체는 스스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든지 인터넷을 좀 찾아보고, 블로그 후기를 찾아보고, 유튜브 동영상까지 찾아보면 집안 내부의 간단한 수리나 소모품의 교체는 직접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혼자 살아본 경험치가 없어서 집 안에 수리가 필요하거나 소모품을 교체할 일이 생기면 괜히 망가뜨리지 말고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자 싶어 바로 기사님을 부르려고 했었는데, 나중에는 유튜브 동영상까지 찾아봤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싶을 때에만 기사님을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직접 찾아보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처음 변기커버를 교체했을 때는 헤매느라 좀 오래걸려서 새벽 두시 반에 끝나긴 했는데, 다시 한다면 더 빨리 할 수 있다.
주말에 밀린 집안일을 모두 끝내고,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집안일을 끝냈다는 후련함과 성취감, 안도감을 느끼며 '이제 뭐먹지?' 생각을 할 때에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일상을 잘 지켜내면서 잘 살고 있다는 뿌듯함과 내가 나를 책임지고 있다는 확신에 기반한 행복함이었다. 혼자 살아보길 잘했다고, 몇번이고 생각했다. 본가에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 느꼈던 행복과는 결이 다른 혼자만의 행복이었다. 타인에게 공유하기에는 너무 사소하고 일상적이지만, 나에게는 너무 확실한 행복이라서 이런 행복을 많이 쌓는다면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첫 독립 이후 두 번의 이사를 거치며 총 세 군데 집에서 살아봤다. 이사업체도 알아보고, 부동산 계약도 여러 번 해보고, 인터넷 단말기를 옮기고 재설치도 해보고, 이사갈 집 보증금 대출을 받기도 하고, 보증금을 돌려받기도 했다. 전입신고도 하고, 월세집에 문제 있을 때 부동산에 전화해서 해결해달라고도 하는 등 자취를 하면서 쌓을 수 있는 경험치를 도장깨기 하듯 하나씩 쌓아갔었다. 그런데 근무지가 본가 근처로 변경되면서 혼자 살고 있던 집보다 본가에서 출퇴근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게 되었다. 처음 독립을 할 때에는 회사가 아무리 멀어도 혼자 살아보겠다는 마음이었는데, '본가로 돌아갈까'하는 생각이 마음에 스치는 순간 혼자사는 것을 그만하고 싶어졌다.
혼자사는 것의 장점도 분명했지만, 스스로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고, 정돈된 일상을 유지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혼자 사는 일상에 피로감이 쌓였었나보다. 처음에 독립을 할 때에는 주거비용이 얼마가 들던간에, 회사로부터 거리가 얼마나 멀던간에 혼자 사는 삶을 꾸려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월세도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출퇴근 거리도 본가보다 훨씬 멀어지니 이제 그만 본가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게다가 그 때 혼자 넘어져서 오른팔에 5mm정도 되는 실금이 생겨 깁스를 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본 깁스였는데, 아주 미세하게 뼈에 금이 간 것이었으나 팔이 퉁퉁 붓고 손가락 끝까지 통증이 있어 스마트폰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깁스 밖으로 빼꼼 나온 손가락으로 밥숟가락만 간신히 들 수 있게 되자 혼자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져서 부모님께 전화해서 데릴러 와달라고 했다. 팔을 다치니 배달음식을 시켜먹어도 뜯을 수가 없었고, 숟가락 하나로 난장판을 치면서 먹어도, 먹고 나서 치울 수가 없었다. 본가에 가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데, 이번에는 독립을 처음 결심할 때의 출사표를 본가 밥이 이겼다.
독립할 때 평생을 함께 할 물건이니 함부로 들일 수 없다고 단언하며 하나하나 깊은 고민을 하면서 마련한 살림살이는 하나하나 내 손으로 떠나보내며 본가로 돌아왔다. 처음 독립을 할 때 그려봤던 내 미래는 결혼을 하거나 더 넓고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만 있었다. 본가로 돌아오는 미래는 그려본 적이 없었는데, 본가로 돌아오니 독립에 실패한 것 같아서 조금 속상했다. 내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이 허전하고 아쉬웠다. 하지만 본가생활은 안락해서 금세 빨래걱정과 끼니 걱정으로부터 가벼워졌다. 월세와 생활비만큼의 경제적 여유도 다시 생겼다. 덕분에 혼자 살 때에 비하면 시간과 에너지를 덜 쓰면서도 나를 유지할 수 있었다. 비록 다시 본가로 돌아와 겉으로 보기에는 독립을 하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갔지만, 독립을 하기 전의 마음가짐과는 같지 않았다. 혼자 살아본 경험이 남아있었다.
본가로 돌아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어느덧 마흔살이 되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충분히 받은 것 같아서 다시 본가에서 나와 다시 스스로 온전히 책임지는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본가를 나올 수도, 다시 들어갈 수도 있는 선택권이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며, 이런 선택권이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독립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언젠가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면 꼭 다시 나만의 공간에서 온전히 내 힘으로 살아보고 싶다. 이번에는 꼭 필요한 것들만, 나와 잘 맞았던 것들만 골라서 내 공간을 채우고 싶다. 나를 더 깊이 마주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