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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누려본 선택의 행복

어떤 인테리어

by 서윤재

30년이 넘은 주택을 매수한 후 축하보다는 위로를 더 많이 받았었다. 어떻게 그런 집을 그 돈을 주고 살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런 집이 어떤 집이냐면, 30년 전에 건축된 집을 전혀 수리하지 않아 30년 전의 옛 모습이 그대로 간직된 오래된 집이었다. 그 집에 들어서면 나는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샤시는 주택이 건설되었을 때부터 있었을 검정색 단창의 알루미늄 샤시였고, 거실과 주방 사이에는 가벽에 나무로 된 미닫이 문이 있는데, 문의 상단에는 반투명 무늬의 유리창이 있었다. 주방과 거실을 분리하는 용도인데, 좁은 집이 더 좁게 보였고, 반투명 유리의 미닫이 문 덕분에 집 안에는 햇볕이 들지 않았다. 벽지는 다 찢어진 채 곰팡이가 모든 벽면 전체에 생겨있었는데, 단열이 잘 안되고, 결로가 있어 곰팡이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이 10년도 넘었을 작은 붙박이 세탁기에는 먼지가 한가득했고, 나무로 된 방문은 부식되고 썩어있었다. 방문의 손잡이도 부식되어 살려낼 수 없었다. 어렸을 적에 가정용 전력이 110V에서 220V로 전환되었는데, 그 집에는 110V 콘센트가 여러곳에 남아있었다. 그 집에 있는 것 중 어느 하나도 살려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집안 내부의 모든 금속부분은 녹슬어 있었고, 모든 나무부분은 썩어있었다. 게다가 이 집은 1층이라서 햇볕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매도인이 그 집에 다음으로 이사올 사람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고 버리다시피 팔고 나간 집을 평생 혼자 살기로 마음먹고 매수했기 때문에 전체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다.



어릴 적부터 집은 언제나 임시로 사는 곳이었다. 어차피 이사를 갈 테니 방을 예쁘게 꾸밀 필요가 없었다. 방을 예쁘게 꾸미는 소품은 이사갈 때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이불도 엄마가 사주는 대로 썼기 때문에 내 방 그 어느 것도 내가 골라본 적이 없었다. 항상 세입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인테리어라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일 중 하나였고,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은 먹고 자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늘 집주인이 해주는대로, 아니면 원래부터 집에 있었던 대로 살아왔지, 집 안에 있는 것을 직접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었다. 아니, 어차피 이사나갈 집에 굳이 돈 쓰면서 할 필요가 없었다. 집꾸미기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내가 처음으로 전체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다.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서는 예산에 대해 고려해야 하는데, 그런 주택을 그 돈을 주고 매수한 후 굉장히 빠듯한 예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너무도 오래된 구축 주택의 리모델링이라는 큰 산을 잘 넘을 수 있는 비결은 처음부터 돈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벽지 도배도 경험해본 적이 없고, 혼자 살아본 적도 없어서 집의 사소한 부분이라도 수리를 해본 적이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알게 된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내가 다 해낼 수 없다는 것이고, 나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소질이 없다. 그렇다면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서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 괜히 내가 조금이라도 손을 대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 때문에 아무리 예산이 빠듯해서 돈을 쥐어 짜도 나오지 않을 상황이더라도 밥을 굶으면 굶었지 인테리어에는 돈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는데, 내가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미장, 도배, 배선, 싱크, 철거 등 그 어느 한 부분이라도 가격 비교를 해서 직접 기술자를 불러서 했다가는 그에 대한 무지의 대가를 크게 치를 뻔했다. 왜냐하면, 내가 구입한 주택은 일반 주택이 아니라 지은지 30년이 넘은데다가 한번도 수리하지 않은 작고 썩은 집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도배할 때 보니 벽도 기울어져있고, 벽이 움푹 패여있었고, 곰팡이도 한가득인데다가 누수도 있어서 이 집의 인테리어 난이도는 최상중의 최상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매사에 소질없는 사람으로써 나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돈쓰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지라, 그 동네에서 오래 영업하면서 그 동네의 그런 노후한 주택과 비슷한 케이스를 많이 다뤄봤을 법한 인테리어 업체를 찾아내서 전체 인테리어 과정을 맡겼다.



전체 인테리어를 하면서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집 안의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에는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매도인이 이사를 나간 집에는 사용하지 않고 녹슨 블라인드와 천장에 매달놓은 썩어버린 나무수납장, 사용하지 않은지 10년은 더 되어보이는 빌트인 세탁기 등 의 물건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철거하는데는 돈을 내야 했다. 나는 주택의 매매 과정에서 매도인에게 쌓인 악감정이 많았기 때문에 공인중개사에게 철거비를 받아달라 요구했고, 매도인은 그 동안 나에게 보여준 모습처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매도인은 경솔하게 선매도 후 이사갈 집을 매수하려던 사람이었는데, 덕분에 잔금일자가 계속 변경되어 정말 애먹었다. 주택 매수 과정에서 나에게 적지 않은 경제적 피해와 정신적 피해를 끼친 매도인은 다른 상황에서는 대체로 선량한 사람이었겠지만, 주택 매수자인 나에게는 최악이었다. 결국 폐기비용을 내가 부담했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다가 철거까지 신경쓰기에는 경험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그냥 돈으로 해결했었다. 사실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30년 된 썩은 세면대를 떼어내는데, 누수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철거를 시작하기 전 그 집에 몇 번 방문했을 때 화장실의 타일이 마른 것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누수가 원래부터 있었다는 인테리어 사장님을 믿기는 했다. 인테리어 사장님은 이 누수는 매매 전부터 있었던 누수이기 때문에 매도인이 하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고, 매도인은 철거하다가 그렇게 된 것을 왜 자신한테 따지냐고 했다. 인테리어 사장님은 부동산 중개인에게도 문제있는 물건을 중개했으니 매도인에게 책임을 지게 하라고 했고, 나중에는 배째라는 매도인과 어쩌라는 부동산 중개인과 원래부터 누수가 있던 집이었다는 인테리어 사장님이 서로 싸웠다. 인간관계가 두렵고, 갈등상황을 보기만 해도 괴로워서 숨어버리고만 싶은 나는 그 상황 자체에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밤잠을 설치다가 결국 큰 결단을 내렸다. 누수에 대한 책임비용을 내가 떠안기로 했다. 철거 과정 중에 발생한 누수로 인해 인테리어 일정을 지연시킬 수가 없었다.



사실 이것은 시작이었다. 30년 전 그 주택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사용하던 온수분배기는 제 기능을 잃어버려서 또 50만원을 주고 분배기 교체를 해야 했다. 난방배선을 다시 깔아야 해서 난방공사는 새로 하는데 30년전부터 사용하던 낡고 녹슬어서 제 기능을 하지도 못하는 분배기는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결로가 생기는 집이어서 방수공사도 하고, 워낙 추운 집이어서 벽에 단열공사도 해야했다. 전체 인테리어를 하면서 날마다 새로운 문제가 발견되었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돈 밖에 없었다. 왜 자꾸 돈이 추가되는지에 대해 화를 낼 겨를도 없었다. 누가 봐도 문제였고, 누가 봐도 고쳐야되서 나는 내 동의를 구하는 인테리어 사장님의 질문에 언제나 '네, 해주세요.' 라고 밖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집 내부를 전부 철거하고 기초공사를 끝내고 나니 그때부터 내가 생각했던 인테리어가 시작되었다. 바로 벽지와 바닥재를 고르고, 타일을 고르는 것이었다. 모든 결정에 내 돈이 나가기는 했는데,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즐거웠다. 집에서 살릴 수 있는 곳이 남아있었다면, 돈을 아끼기 위해 그 부분은 놔둔 채 수리해야 할 부분만 수리했을텐데, 내가 매수한 집은 그 집의 아주 작은 부분도 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샤시, 방문, 문 손잡이, 수전, 싱크대, 샤워기, 휴지걸이, 변기, 걸레받이, 전등 스위치까지도 등 집안에 모든 부속물까지 내가 고를 수 있었다. 이 때가 정말 재밌었다. 인터넷으로 레퍼런스를 찾아서 이렇게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거나 인테리어 사장님이 몇가지 선택권을 주시면 그 중에서 내 마음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만 골랐다. 모든 수전과 방문의 손잡이는 통일감 있게 무광 실버로 했고, 싱크대도 내 키에 맞춰서 제작했다. 전체 리모델링이었기 때문에 집 안에 들어갈 모든 것을 골라야 했는데, 이 때 만큼은 재벌이 부럽지 않았다. 나의 신체에 싱크대를 맞추는 것, 그리고 나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 정말 너무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이 때 알았다.



집이 너무 낡고 상태가 엉망이라서 이 집에서 들어가 살기 전에 모두 고쳐서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싶었고, 나는 앞으로 이 집에서 수십년은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내 취향을 전부 반영하고 싶었다. 베이지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벽지와 방 문은 베이지색으로 하고, 싱크대도 베이지색으로 했다. 화장실도 베이지색과 회색을 섞어서 무광 실버수전과 잘 어울리게 했고, 블라인드도 베이지색으로 제작했다. 화장실과 베란다, 세탁실, 현관 입구의 타일 하나까지도 내가 모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나하나 골랐고, 붙박이장과 싱크대의 색도 내가 직접 골랐다. 내 공간에 사용될 무언가를 직접 고르는 것행복한 일이었다.



늘 집주인이나 이전 거주자 등 다른 사람들이 고른 것을 어쩔 수 없이 그냥 사용해왔었는데, 내가 직접 고르게 되니 내 공간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지고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가 매수한 집이 조금만 멀쩡했더라도 내가 이렇게 직접 마감재를 하나하나 고를 일은 없었을 텐데, 집 안의 모든 것이 다 부식되어 단 하나도 살릴 수 없는 집을 샀기 때문에 이렇게 문고리, 타일 하나, 수전까지도 다 고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비용이 정말 많이 들었지만, 내 마음대로 전부 선택해보는 경험이었다. 집안의 모든 부속물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 내가 결정한 대로 반영되는 것을 경험한 것도 처음이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이 가장 저렴한 것을 고른 것을 군말없이 사용해오기만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사하기 전에 인테리어를 기본적으로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처음 주택 내부를 철거할 때 폐기물과 누수문제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인테리어 과정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뿌듯함이 커졌다. 처음 마련한 내 공간에 전체 리모델링을 해보니,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진작에 다 해봤을 경험이었을텐데, 나는 뒤늦게에서야 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미뤄졌던 성장 단계를 한 번에 따라잡는 기분이었다. 그 동안 내 취향에 돈을 쓰는 것은 사치라고 여겨왔기 때문에 취향을 위해 돈을 써본 적이 없었는데, 취향을 드러낼 기회가 주어지니 나도 뚜렷한 취향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기회가 없었을 뿐, 선택권이 주어지면 나는 얼마든지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매수한 주택은 1층이었고,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집이어서 혼자 집에 있으면 우울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조명에 많이 신경을 썼는데, 특히 거실에 조명을 과하게 달았다. 낮에도 어두운 집이었고, 1층이다보니 사생활 보호를 위해 베란다는 블라인드를 쳐놓고 살 예정이었기 때문에 거실을 밝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추가비용을 내고 LED 조명을 추가로 달았었다. 그리고 나는 지독한 집순이이기 때문에 집 안을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인테리어를 알아보다가 눈에 띈 것이 백조 사각싱크대와 거위목 수전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카페에서 많이 쓰는 것이었다.



인터넷 블로그나 오늘의 집 같은 곳에서 보면 예쁘다 싶은 집에는 백조 사각싱크대와 거위목 수전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거기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50만원을 추가해서 그 싱크대와 그 수전으로 했다. 앞으로 내가 수십년을 살아갈 내 공간이니까 예뻤으면 했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갈 때 쯤 비용은 더 들었지만, 내 요구사항에 따라 추가된 거실의 조명과 사각싱크, 거위목 수전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뼈빠지게 돈 번 보람이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 취향을 가장 많이 반영한 예쁜 집이었다. 먹고 사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취향을 내가 사는 공간에 감히 반영해도 되는 것일까 했는데, 되는 것이었다. 돈만 지불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사가 끝나고 그 집에서 살게 되었다. 엄마가 이사를 많이 도와주셨다. 집에 처음 이사온 날 엄마는 싱크대에서 손을 한번 씻어보더니 수전의 위치가 너무 높아서 물이 많이 튀기 때문에 수전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교양있게 표현해서 이렇게 써봤는데 사실은 '수전 바꿔라. 이거 못쓰겠다.' 였다. 거위목수전은 거위목이란 이름답게 수전의 물 분출구가 너무 높았고, 물이 오만데 튀었다. 그제서야 거위목수전을 사용하면 물이 많이 튄다는 후기가 눈에 들어왔고, 백조사각싱크는 기스가 너무 많이 난다는 후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햇볕이 들지 않아 심혈을 기울여 추가했던 거실은 과하게 추가된 LED 조명 덕분에 너무 밝아서 나는 조명 하나를 끄고 살았다. 내가 인생 처음으로 했던 회심의 인테리어는 어떤 부분에서는 실용성이 떨어지는 과한 인테리어였던 것이다.



어쩌면 너무 낡고 초라한 집을 사서 내부 인테리어라도 잘 해놓고 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비록 좋은 동네의 비싼 주택은 아니더라도 예쁘게 꾸며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그 집에서 혼자 지내면서 우울해질까봐 우울함을 유발하는 모든 싹을 잘라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햇볕이 들지 않는 거실에 과한 조명을 달고, 좁은 집에는 어울리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은 사각싱크대와 거위목수전을 달았다. 일반 가정집에서는 주방 싱크대 위에 있을 법한 수납공간이 너무 키가 큰 거위목 수전에 자리를 빼앗겨서 이 집에는 싱크대 위에 수납공간이 없다. 사실 나는 이 위화감을 알아채지 못했는데, 이사 첫날 엄마는 싱크대에서 손을 한번 씻어보고는 이 주방의 불편함을 한눈에 알아챘다. 이 주방은 예쁘기만 할 뿐 실용성이 낮다는 것을 엄마는 바로 알아챘다. 하지만 되돌리는 비용이 커서 다시 고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살기로 했다.



집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내가 하나하나 고민하면서 골랐던 그 집에서 한동안 행복했다. 전체 인테리어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경험을 해보니 사는 공간에 대한 애정도 컸다. 집 안의 모든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고,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서 그 집에서의 시간이 굉장히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졌었다. 힘들게 고친 집이라 아주 오랫동안 그 집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다른 도시에서의 근무기회가 생겼고, 커리어에 욕심이 났던 나는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집에서 나오기로 결심했는데, 그 집에서 산지 겨우 3개월 되던 때였다.



평생 살겠다고 큰 비용을 들여서 집 전체를 리모델링 한 것이였는데, 고민 끝에 그 집에서 나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고, 그 뒤로는 가장 저렴한 가성비 벽지로 도배된 월세집을 옮겨다니며, 벽지에 라면국물이라도 튀면 벽지에 묻은 얼룩을 락스로 지우면서 살았다. 그렇게 살다보니 예전에 그렇게 내 취향을 가득 담아 인테리어를 해봤던 것이 꿈만 같아서, 앞으로 인생에서 또 다시 집이라는 공간에 내 취향을 가득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다. 집을 꾸미는 선택권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어진대로 산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잘 꾸며놓은 집을 잠깐 살고 나와 다시 가성비로 점철된 월세방을 전전하는데, 그 후로는 예전처럼 인테리어에 돈을 쓰는 것이 도무지 사치스럽게 여겨져서 그 뒤로는 그냥 주어진 대로 살고 있다. 나쁘지 않다. 그런데 주어진대로 살자니 내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 가끔은 쓸쓸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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