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서 옷을 사기 시작했다

살을 빼니 입을 옷이 많아졌다

by 타짜의 클리닉

30대의 내 옷가게는 홈플러스였다.

거기서도 매대에 누워있는 만 원짜리 기획상품류였다. 그땐 그런 옷만 사야 할 형편이었다. 100평짜리 횟집을 처남에게 빼앗긴 후유증은 무려 10년이 걸렸다. 가장 활기찼어야 할 30대의 10년이 통째로 빈곤과 싸워야만 했다. 그렇게 나와 아내는 홈플러스에서만 옷을 사 입었다. 사는 형편이 나아지면서 마트에서는 더 이상 옷을 사지 않았다. 아울렛에서 10배가 넘는 옷들만 골랐고, 아내가 눈으로 고른 옷이면 거절을 해도 다 사줬다. 눈이 골랐다는 건, 그만큼 맘에 들었다는 뜻이란걸 알아서였다.



나는 집과 노트북이 일터였기에

매일 출근을 하지 않는다. 어쩌다 생긴 일거리에만 외출을 하니 계절마다 한두 장의 옷이면 충분했다. 매일 외출이 아니기에 돌려 입어도 나를 만나는 사람은 단벌 같은 옷,이라는 걸 모른다. 그래서 옷 값은 거의 들지 않았다.



면허증을 받자마자 쿠팡에서 옷을 샀다.

2~3만원대로도 입을 옷이 그렇게 많다는 걸 근래 알았다. 50대의 남자가 쿠팡에서 옷을 사는 건, 형편이 그래서거나 성격이 소탈한 탓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두가지 이유가 아니다. 늦은 나이에 면허증을 땄으니 매일 운전을 할 생각이고, 운전을 위한 외출이라서 그저 여러벌의 옷이 필요할 거 같았다. 그렇게 요즘 쿠팡에서 옷을 고르는 재미에 빠졌고, 5만원만 되어도 장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분명히 스무살 신검때 잰 키는 175.4cm였다.

50이 넘어서 건강검진 때 잰 키는 172.3cm였다. 그리고 체중은 무려 90kg이었다. 더 희한한 것은 주변 사람들은 내 키를 제법 크다고 봐주었고, 몸도 90이나 나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주었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는 여전히 이유를 모르겠다.



그 이유도 모르지만,

10년째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하지만 전혀 빠지지 않는 내 체중의 비밀도 모르겠다. 헬스장을 다닌지는 이미 10년이다. 그것도 거의 매일 나갔다. 런닝머신도 1시간 넘게 탔고, 그 효과가 없어서 야외에서 10km도 2년 넘게 걸어봤고, 스탭퍼도 만개씩 해봤지만 체중은 찔끔이거나 오히려 가랑비처럼 조금씩 늘었다. 운동을 했다는 안도감에 먹는 걸로 보충한 벌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속 상했다. 그러다 3개월전 계단 운동을 시작했다. 7년전 수백만원짜리 식단제품을 사먹었을 때 하고 힘들어 포기했던 계단 운동을 다시 시작해봤다.



지금까지 한 운동 중에 나에겐 계단이

최고라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처음 50층은 하늘이 노래질 정도로 죽을맛이었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은 30층을 5번 오른다. 그리고 슬림해진 몸과 누웠을 때 만져지는 갈비뼈 맛에 콧노래를 부른다. 고무줄 바지만 입어서 몰랐던 허리도, 겨울이라 허리띠가 필요한 바지를 꺼내입으면서 허리띠의 끝을 2cm를 잘라내었다. 몸매가 변해가는 걸 느끼다보니 계단운동은 하루도 빼먹기가 싫어졌다. 어제도 거제와 통영 400km의 운전을 하고 집에 오자마자 아내는 집청소를 나는 몸청소로 계단을 탔다.


54년을 살면서 운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했다.

운전이 무서웠고, 운전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았기에 10년 무사고 아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며칠전 면허를 땄다. 학원 등록 25일만의 일이었고, 면허증을 받은 건 11월 1일, 운전대를 잡은 건 11월 7일, 그날부터 6일 만에 1,000km를 운전해버렸다. 주차된 차 옆을 지나는 게 제일 힘들다. 차간 폭이 제일 어렵다. 스치는 순간 사고라서다. 앞만 보고 나란히 달리는 고속도로가 제일 쉽고, 결정장애가 거의 없는 편인데, 무신호등 좌회전이 제일 어렵다는 걸 알았다. 10년간 20만km를 운전한 아내가 있어줬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고, 결정적일 때의 한마디면 해결이 되었다. 멘토가 곁에 있다는 든든함이 새삼 반가웠다.



식당을 하는 사람들이 열공중이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숫자는 1,000명에 서너명이다. 공부를 하는 사람만 한다. 게다가 공부의 맛(매출상승)을 본 사람들은 여러 곳의 공부를 한다. 적어도 서너명의 선생이 있을 정도다. 공부의 깊이가 깊어지니, 공부를 일절 하지 않는 식당주인과 간극은 말할 수 없이 벌어진다. 빈익빈부익부가 생기는 원인이다. 공부 없이도 식당을 잘? 하던 시절에도 8할이 망했다. 이제 공부하는 주인들이 많아졌지만 전체 자영업자 수에는 여전히 극소수일 뿐이다. 그런데 극소수인 그들이 손님을 다 빼앗아 간다. 앞으로는 9할이 망하게 될 것이다. 8할이 문을 닫는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3년이었다면, 이제 앞으로는 9할이 망하는 데는 첫 계약기간인 2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공부하는 식당들이 손님을 다 빼앗아 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식당을 이용해줄 수요자는 점점 줄어든다.

그에 반해 식당을 하겠다는 공급자는 점점 늘어난다. 2차 베이비부머가 은퇴하는 작금의 속도는 더 빠르다. 딱히 그들이 만만히 할 거 같은게 여전히 음식점이라서 식당의 숫자는 절대 줄지 않는다. 문제는 살아남음이다. 혹은, 성공한 자의 곁에서 액자사진이 되어줄 건가의 문제다. 음식점은 상생이라는 게 어렵다. 치우침으로 손님을 빼앗아간다. 대기를 2시간이나 하는 식당 근처에 같은 메뉴를 팔아봤자다. 기다림을 감수하는 사람이 메뉴가 같다고 줄을 이탈하는 확률은 5%도 되지 않는다.



좋은 장사선생은 많다.

훌륭한 오너쉐프선생도 많다. 문제는 찾아가야 배울 수 있고, 수백만원의 비용을 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바쁘다는 핑계로 위안을 한다. 그런 돈을 쓸 형편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음,으로 명분을 삼는다. 괜찮다. 배우지 않아도 된다. 대신에 당신의 식당은 거리의 액자노릇이나 할 테고,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으로 늙어갈테니 말이다. 책을 읽고 백날 감동을 받으면 뭐하는가? 그 저자에게 전화를 걸지도 않는데 말이다. 성업식당을 만든 걸 알고 감탄을 하면 뭣하는가? 주인에게 연락처를 물어 카톡으로 만나자는 청도 하지 않는데 말이다.



시간은 다들 없다. 다 바쁘다.

다 먹고사는게 만만치 않다. 그래서 배워야 한다. 좋은 길을 안내해 줄 사람을 곁에 둬야 한다. 10년 무사고 20만km를 운전한 아내가 있기에 운전초보가 빵 소리 한번도 듣지 않고 1,000km를 운전했듯이 당신의 장사운전에도 좋은 멘토를 찾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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