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부탁해
누군가는 식당을 차리기 위해서 돈을 모으거나 빌려야 한다. 또 누군가는 식당계약에 대한 걱정과 염려, 또 누군가는 메뉴 선택과 가격에 대한 고민을 할텐데 그런 과정을 다 지났기 때문에 앞섬은 분명하다. 이제 당신은 손님을 늘려 매출만 올리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잘 해줌.이다. 도대체 어떤 게 잘해줌일까? 친절일까? 양일까? 맛일까? 다 틀렸다. 가장 중요한 건 맛있게 먹는 시간이다. 맛은 그럭저럭인데 맛있게 먹게 해야 한다. 분위기도 그냥저냥인데 맛있게 먹게 해야 한다. 그건 바로 서비스 오마카세다. 정해진 거 없이 그때그때 혹은, 순발력으로 대처하는 서비스를 뜻한다. 횟집을 할 때였다. 10명의 단체 손님 중에서 한명이 회를 먹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옆집에 전화를 걸어 고기 1인분만 구우라고 했다. 그걸 들이밀었더니 깜짝 놀랬다. 회를 못먹는 손님이야 당연했고, 나머지 9명이 감동을 했다고 요란을 떨었다. 그걸 옆테이블에서 봤다. 많은 손님이 새끼를 쳐서 회식을 해주었다. 세상에 이런 집은 없다고 엄지를 세웠다. 고기 1인분 서비스를 날린 탓이었다. 내 나이 33살 때의 판단이었다.
한두번 겪은 손님은 눈치챈다. 이것이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는 서비스가 아니라, 준비해둔 공식이라는 것을. 그래서 처음과 달리 나중엔 고마워하지 않는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손님은 맛있게 먹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의 장사소관을 안주로 삼아 낄낄 거릴게 분명하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재료를 가지고 재주껏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같은 재료인데 만들때마다 음식이 달라지듯이, 서비스는 그때그때여야 한다. 단골이 많이 먹는 것과 처음 온 손님이 많이 먹는 건 다르다. 단골을 더 우대해야 한다. 단골에 대한 오마카세 서비스가 더 커야 한다. 처음 온 손님도 잡아야 하지만, 이미 여러번 온 손님을 더 확실히 잡아채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대체로 단골은 잡은 고기라고 안심하고 방치하니 딱하다.
서비스 오마카세는 마음먹기 나름이다. 음식 솜씨가 없어도 그만이다. 음식이 아닌 걸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서비스가 꼭 음식이어야 할 까닭은 없다. 음식이면 더 좋겠지만 아니라도 관계없다. 부모와 같이 온 아이에게 용돈 5천원도 마음이다. 소주 3병 마신 손님에게 산사춘 한병을 준다면 그것도 감동이다. 거래처가 주고 간 몇 개 안되는 기념품을 당신이라서 주는 거라고 귀뜸하면 손님은 이제 충성고객까지 될 태세다.
어제가 유성 5일장이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리어카를 끌고 나왔다. 리어카도 없는 노인은 바닥에 물건을 펼쳐놓았다. 이걸 다 팔아봤자 얼마일까 하는 측은함이 들었지만 그거라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거리에서 흔히 보인다. 그들의 꿈이자 소원이 5일마다의 가게가 아니라, 날마다의 가게다. 지붕이 있어서 비와 눈을 막아주는 가게다. 그걸 이미 이뤘는데 손님이 없다고 한숨 쉬어서야 되겠는가? 메뉴를 오마카세로 팔 재주는 없지만, 오마카세 서비스쯤이야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다. 오늘부터 해보자. 뭐라도 줘보자. 원가가 어떻고 저떻고 따지지 마라. 손님이 늘지 않는 식당이 문제지 원가가 더 들어서 그래 뭐 어떻게 될 거라는 소린가? 장사는 별거 없다. 손님에게 잘해주는 놈이 이긴다. 그런 식당에 손님이 꼬인다. 맛이 탁월해야 꼬이는 게 아니다. 그건 흔한 착각이고 아주 오래된 오해다. 당신이 가는 모든 식당이 정말 끝내주는 맛,이라서 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