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위기가 경쟁력이 된다
9장. 가맥으로 심야식당 흉내
가맥은 전주의 구멍가게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통상의 구멍가게 앞에는 파라솔이 하나쯤 있고, 동네 단골들은 의레 거기서 술병을 까고 새우깡을 뜯었다. 그러나 과자만 먹기엔 아쉬우니 동네 단골들은 주인에게 이것저것을 해줄 수 있느냐 물었을 것이다. 구멍가게 아내의 솜씨에 따라 주력 안주가 생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식당도, 술집도 아닌 이상한 분위기에서 먹는 그 맛에 몰렸고, 손님이 늘면서 구멍가게 매출도 덩달아 올라 유행처럼 번졌다고 생각한다.
가맥의 장점은 무엇보다 분위기다. 생각해보자. 구멍가게에서 구워 먹는 오징어를, 구멍가게에서 끓여주는 라면을, 구멍가게에서 볶아준 제육볶음을 생각해보자. 식당이 아닌데 거기서 먹는 가벼운 술한잔은 어떤 맛일까? 편의점 앞 파라솔이 좋은 이유도 노천이라서다.
게다가 식당이 아니라서 맛에서 관대하다. 기대에 못 미쳐도 식당이 아니니 봐?준다. 오히려 맛을 기대하지 않기에, 조금만 솜씨를 부려도 맛있다고 난리다. 제육볶음에 스팸을 넣어서 볶는다든지, 김치찌개에 손님이 고른 깡통을 넣어 끓여주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자기가 애정하는 맛집이라면서 구멍가게를 소개하는 건 심심찮은 일이다.
테이블 5개짜리는 아늑하다. 주인과 손님이 친구가 되기 좋은 크기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외상도 가능할 거 같은 크기다. 어차피 저녁에만 문 열면 된다. 술을 가볍게 마시는 곳으로 가맥은 음식 솜씨가 없어도 만들 수 있는 노가리나 반건조오징어 같은 구이면 된다. 번데기나 골뱅이도 캔을 뜯어 주부라면 할 수 있는 양념을 가미해 끓이면 된다. 소시지도 구워서 고기를 넣어 볶은 고추장에 찍어 먹게 해도 그만이다. 라면도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다 넣어 끓여도 상관없다. 라면 전문점이 아니니, 주인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어 술국이라고 이름 붙여도 손님은 그저 웃을 것이다.
심야식당처럼 주문대로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심야식당 흉내 정도야 얼마든지다. 거기에 포인트로 “팔지 않는 안주는 가져와도 되고, 배달시켜도 된다” 족발을 팔지 않아도 족발이 상에 올라간다. 회를 뜰 줄 몰라도 손님이 시키면 횟집이 된다. 가맥이니 술만 팔면 된다. 대신 소주는 예외다. 소주를 뺀 술은 다양할수록 좋다. 세계맥주 전문점처럼 구성해도 된다. 캔맥주는 되도록 피해야 한다. 캔맥주는 마트에서 구매한 경험이 풍부하다. 편의점에서도 쉽다. 세상의 다른 맥주를 팔 때는 병이 그나마 경쟁력이다.
구멍가게처럼 꾸미는 것이 관건이다. 아기자기하게,가 아니다. 뒤죽박죽인 상점이다. 미아리 시장 앞에서 진짜로 이런 가맥집을 만들었다. 8평이라 실내에 테이블은 3개가 전부였지만, 야장에 테이블을 10개를 펴고 저녁마다 손님을 채웠다. 그 작은 가맥집 하나 때문에 다른 가게들도 노가리를 필두로 술집으로 변신을 했다. 상호는 ‘어른들을 위한 미아리 가게맥주’ 였었다. 아주 근사한 결과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