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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목이 아니다

그 시절은 이제 끝났다

by 타짜의 클리닉 Mar 22. 2025

13. 고약한 입지와 사악한 입지     

단일 메뉴를 파는 식당을 골라서 간다. 메뉴가 많으면 아무리 리뷰가 많아도 패쓰다. 거기에 영업시간이 짧으면 무조건 확정이다. 당장은 가지 않아도 언젠가는 가고 만다. 그만큼 영업시간이 짧다는 건, 궁금증도 크고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경험 탓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궁금한 식당이 바로 입지의 사악함이다. 고약한 정도도 궁금한데 심지어 사악하다고 판단이 될 땐 메뉴가 열 개가 넘건, 주차장이 없건 간에 기어코 가본다. 가장 흥미로운 식당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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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간 식당도 사악했다. 논산에서 농사를 짓는 마을로 깊이 들어가야 했다. 신작로가 깔리기는 했지만 외길이었다. 아차,하면 논두렁으로 떨어지게 생겼다. 운전을 하면서 “아무리 근사해도 여기는 오늘로 끝”이라고 할 정도로 길이 아슬아슬했다. 결국 밥 먹고 나오는 길에 사단이 났다. 맞은편 차를 위해 비켜줬는데 상대 운전자가 초보였는지 자기는 못 간다고 했고, 역시 초보인 나도 더 비켜주다간 밭으로 빠질 찰라였다. 아내가 내려 상대 차를 운전해서 통과를 시켜주고서야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밥한끼 먹자고 덤비다가 차가 병원에 가게 생길만큼 나에겐 최악의 사악한 입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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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갔던 세종 운봉산자락의 식당은 산길에 있었다. 등산객이 아니면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그런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가보니 이미 넓은 주차장(입지가 나쁠수록 주차장은 널찍하다)엔 차가 가득했다. 그 식당은 산중턱에서 바라보는 운치가 기가 막혔는데, 어제 간 논산은 그저 논뷰, 밭뷰가 전부인 곳이니 딱히 볼건 없었다. 땅끝이 아니라, 마을 끝에 붙은 식당이라는 것 외에는.     



명동에도 빈 점포들이 즐비하다. 강남도 그렇고 종로도 그렇다. 대한민국 5대 상권이라 불리는 곳에 1층에도 공실이 넘친다. 반대로 산속에도 식당이 있고, 강을 건너야 가는 섬에도 식당이 있다. 식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님도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다. 때로는 그런 곳에서도 줄을 서야 할 정도다. 예약을 받아두지도 않아서 2시간을 기다려야 먹는 사악한 입지의 식당은 이제 특별하지도 않다. TV 맛집 프로그램에 열에 한 둘은 거의 그런 곳이니 말이다.     



십년 넘게 한가지만 파는 식당을 만들었다. 하루 4시간 문 여는 식당도 만들어봤다. 주 5일 문 여는 식당은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입지가 사악한 식당은 차려준 적이 없다. 고약하다 정도는 있지만, 사악한 곳은 없다. 상대를 생각하면 그런 곳에 차리라고 할 독함은 없다. 나도 겁나고 무서운데 시간이 해결해줄 거니 차리라고 할 순 없었다. 차가 지나지 않는 막다른 길, 죽은 도로는 아무리 가든이어도, 주차장이 넓어도, 월세가 싸도, 계약하라고 한 적은 없다. 그저 남(창업자) 보기에 고약한데 그건 몰라서 하는 판단일 때는 밀어 부쳤다. 이런 자리가 나중에 명당(너절한 경쟁자도 없는)이 될 거라고 판단을 내렸다.     



사악한 위치임에도 가게를 차린다면 그건 확신하지만 내 집이라서다. 살기도 하는 집이라 노느니 염불이라는 마음으로 차린 가게들이 9할,이다. 아내의 음식솜씨는 상관 없다. 어차피 이런 곳까지 손님이 와봐야 얼마나 오겠냐는 마음일테니,다. 하지만, 그런 곳일수록 손님이 늘어나니 당사자도 당황스러울 것이다. 서울 도시는 공실이 늘어난다는데, 서울 사람들이 내 집까지 와서 밥을 먹는다는게 신기할 것이다.   


   

세상은 바뀌었다.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접근성이 좋은 특급호텔에서 인증샷도 자랑?스럽지만, 사악한 곳까지 찾아가서 찍은 인증샷도 뿌듯!한 세상이다. 어쩌면 더 귀하게 쳐줄 지도 모른다. 장사는 목이다,라는 책도 있었다. 이제 그 책은 종말을 고할 때다. 장사가 목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십수년전에 간파했다. 그 덕에 수십의 인생을 역전 시켰고, 나 또한 과하게 잘 먹고 살 수 있었다. 한데 아직도 여전히 입지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다.     



하지만 사악한 입지를 도전하지는 말자. 은퇴하고 벌어둔 돈으로 먹고 살아도 탈이 없을 때나가 아니라면 말년에 사악한 친구를 만나게 될테니 말이다. 그저 고약한 정도면 된다. 보기에 따라 고약한 그 정도는 도전해도 된다. 나 하기에 따라서 오게끔 할만한 그런 자리라면 해볼만한 승부다. 물론, 고약한 자리에서 매력을 발산하려면 철저한 식당공부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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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좋으면 경쟁자가 많고, 나쁠수록 혼자 1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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