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춘형의 100만원

희망을 주었던 큰 돈

by 타짜의 클리닉

삼대냉면 건대점을 2005년인가 오픈하고, 그 뒤로도 삼대냉면 일을 봤다. 내 컨설팅 일이 빈약해서, 그 일도 같이 보면서 밥벌이를 하려고 했었다. 2007년인지 8년인지는 정확히 않지만, 그쯤이다. 부천 역곡에 삼대냉면 사장님과의 추억이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 나는 형이 없는 관계로 한 살 차이도 스스럼없이 형이라고 잘 부른다. 병춘이 형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지만 다니는 직장을 다녔고, 형수도 식당에서 같이 일을 했는데 전직은 교사였다. 아내는 교사였고, 형은 외국계 기업이었으니 사실 거친 자영업 생리에는 맞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형은 무슨 사연인지 퇴직을 한 사유는 설명하지 않았고, 그렇게 그 부부는 역곡에 한칸짜리 12평쯤 되는 작은 냉면집을 오픈했다.



오픈하는 날, 서울살이 별 일이 없던 나는 도와준다고 갔다가 하루 종일 담배 한 대도 못피고 10시간을 정신없이 돕다가 혼이 빠졌던 기억도 있다. 그 뒤로 오지랖으로 오픈 식당을 도운 적은 없다. 내 몸은 30대 중반인 그때도 저질이었기 때문이다. 삼대냉면 역곡점은 장사가 아주 잘되었다. 그 당시 삼대냉면은 구사장님이 아주 꼼꼼하게 자리를 보던 터라, 오픈과 동시에 열에 아홉은 터졌다. 그것도 빵 하고 터졌다.



삼대냉면 역곡점엔 별별 일이 다 있었다. 계약을 하는 도중에 전세입자와 마지막까지 권리금 한푼을 더 깍자고 협의중에 부동산이 자기는 절대 복비를 깍아줄 수 없으니 그리 알라는 말에 기분이 상해서, 점주는 가만 있는데 내가 계약을 파기하자는 엉뚱한 짓도 벌였다. 순순히 계약 당일에도 권리금 얼마를 깍아준 고마운 세입자가 알고보니 십수년간 건물주가 다운계약서를 받은 사실을 세무서에 신고해 다시 계약서를 쓰고, 건물주 할머니는 수억의 세금을 물어 온동네가 시끄러웠다. 그걸 병춘이형이 무마한다고 전세입자에게 권리금을 더 드릴테니 일을 크게 벌이지 말라고도 했었지만, 신고 포상금으로 억대가 넘는 돈이었는데 소용이 없었다.


선생님으로 살아온 형수에게 12평 작은 식당에 버글거리는 손님은 기뻤지만, 그 손님을 쳐내기 위해 작은 식당에 많은 직원과 알바는 난제였다. 식당에서 닳고 닳은 아주머니들을 30대 중반의 주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다. 다행이 형이 강단있게 항시 자리를 지켜 큰 일은 없었지만, 결국 그런 일이 쌓이고 쌓여 그 잘되던 냉면집은 팔고 말았고, 형수는 주부로, 형은 다시 원래의 직종으로 돌아가 지금도 회사를 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



2년전 어쩌다 우연히 카톡이 오갔고, 그 참에 나는 형을 보기로 했다. 그 전에도 말로는 밥한번 먹자고 했었는데, 그날은 부부끼리 꼬옥 보자고 내가 청했다. 용인에 산다고 해서 남양주에서 당시 타던 수입차 SUV를 타고 찾아갔다. 그리고 밥을 먹었고, 가볍게 술도 한잔 했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봉투를 건넸다. 그 안에는 상품권 10장이 들었다. 멋모르고 받은 형수와 오는 길에 형이 전화를 해서 “이건 뭐냐?” 물었고, “형이 그때 나에게 100만원 해준 걸 이제서 갚아요”라고 했다.



그랬다. 형은 작은 냉면집(그러나, 권리금과 철물점을 털고 시설을 새로 하는데 들어간 총액은 1.5억쯤 되었다)을 차려서 4천원쯤의 냉면을 100만원, 150만원을 팔았다. 반대로 나는 컨설팅 벌이가 없었고, 삼대 일 하나가 성사되는데 걸리는 시간도 수개월이라 그 벌이도 난감했었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해도 답이 없었다. 아는 프랜차이즈 본사 대표에게 일자리를 부탁까지 했었다. 하지만, 운전도 못하는 사람을 쓸 수 없어 거절을 당했고, 대전에는 5명의 식구가 입을 벌리고 있을 생각에 그때 오래된 지인도 아닌 병춘형에게 전화를 걸어 100만원을 부탁했다. 그런데 형이 너무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갚지 않아도 된다고 사족을 달았다. 밥을 먹으면서 한 말이 “이소장이 오죽했으면 나에게 그런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까, 그냥 그거였어. 다행이 천만원이 아니라 100만원이니 나야 고마웠지. 하하”



살면서 돈을 빌려달라는 소리를 해본 적이 세 번이다. 그만큼 살만했어가 아니라, 돈을 빌릴 배짱도 능청도 없는 성격 탓이다. 자존심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건 아니다. 가족이 풀칠도 못하는데 그깟 자존심이 무슨 대순가. 세 번의 용기 중에 병춘이형에게 한 100만원도 포함이다. 아내가 친구에게 빌린 돈도 겨우 400만원이었다. 세 번에 한번은 빌리지 못했다. 결국 우리 부부는 살면서 500만원을 빌려본 게 전부다.



그 후로 병춘이 형이 남양주로 놀러오겠다고 했지만, 나는 반년 후 대전으로 이사를 했고 더 이상의 카톡은 서로 없는 상태다. 그래도 가끔 나는 100만원의 무게를 잊지 않는다. 얼마나 절절했던 100만원인지 아는 탓이다. 세상이 힘들 땐 천만원 같은 백만원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창업자가 돈이 어려울 때 그 심정, 너무나다. 그래서 가끔 상대가 진심이라면, 내가 받아야 할 돈은 후불이거나 공짜도 어렵지 않다. 그 결과가 대체로 나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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