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이 내 인생을 더 빈곤하게 만들 때가 있다
식당을 차렸다. 권리금을 많이 주지 못했고, 월세가 높은 자리도 아니다. 먹고살려고 차린 식당이라 의기소침했고 음식에 재주가 많지 않아서 사람들이 주로 찾을 거 같은 메뉴를 파는 그런 식당을 차렸다. 역시나 차리고 보니 손님은 적었고, 하루하루 걱정이 커져갔다. 식당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았지만 그걸 깨달았다고 현실을 되물릴 수도 없었다. 이걱정 저걱정에 하루씩 마음이 말라갈 무렵이었다.
그날은 내게 운수 좋은 날 같았다. 내 식당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벤츠 손님이 들어온 것이었다. 부자 손님이 어쩐 일로 우리 같은 식당에 들어왔을까? 별일이다 싶었다. 혼자 온 벤츠손님은 그러나 천사였다. 손님도 없는 식당인데도 주문을 해주었고, 서민들이나 먹는 음식인데 잘 먹어주었다. 그리고 계산을 하면서 내 고향은 어딘지, 언제 식당을 오픈했는지 살갑게 물어주었다. 괜히 마음이 울컥했고, 고마웠다. 벤츠를 탄 손님이 내 식당을, 내 음식을 잘 먹어준 것이 너무 감사했다.
그 뒤로도 벤츠손님은 1주일이 멀다하고 찾아왔다. 가끔은 아우디를 탄 손님과 또 어떤 날은 캐딜락이라는 차를 탄 손님과도 와주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모두 외제차를 타는 손님들인데도 내 식당을 찾아와주니 황송했다. 다른 외제차 손님들 역시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고 용기를 주었다. 메뉴에 대한 조언도 해주었고, 반찬 구성에도 다른 집 예를 들면서 살갑게 챙겨주었다. 그렇게 6개월 아니 이제 1년이 넘어서도 내 식당을 찾아와주는 고마운 단골이 되었다. 그러자 나 또한 그 손님들을 기다리게 되었고, 문을 열면 정말 반가웠다. 그동안의 빈 고생을 보상받는 그런 느낌이랄까? 어느덧 벤츠, 아우디, 캐딜락 손님들은 저마다 나를 동생, 후배라 부르면서 그들만이 아는 세상 돌아가는 일도 들려주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식당을 차리길 참 잘한 거 같았다. 식당이 아니었다면 그런 부자들과 내가 어찌 인연을 맺을 수 있었을까.
우리같은 부자들은 사람이 많은 식당에서 밥 먹는 게 귀찮다. 시끌벅적한 공간에서 같이 겸상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별로다. 한가한 곳이 좋다. 그런 식당을 발견하는 재미도 재미다. 한가할 거 같은 식당에 들어가서 주인이 내가 타고 온 차를 보게 하는 광경도 재밌고, 부자인 내 말 몇마디에 용기를 얻는 모습도 흥미롭다. 음식맛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만일 음식이 맛있었다면 식당이 한가할 까닭이 없을테니 말이다. 어차피 굶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음식이 아니고, 어쩌다 가끔 옛날 추억을 떠올리며 먹는 음식이니 맛이나, 종류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나는 한가한 곳을 찾았으면 됐고, 그 식당의 주인에게 내가 귀한 손님이 되었으면 충분하다. 조언을 핑계로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메뉴판에 추가하게 만들었을 때 나는 이제 그 식당을 컨트롤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조금 더 인간적으로 다가가면 이제 나에겐 나만을 위한 식당 하나가 생긴거나 다름없다. 그러기 위해서 아우디, 캐딜락을 타는 녀석들도 가끔 뭉치면 내 계획은 거의 적중한다. 그런데 요새 걱정이다. 그 식당의 주인이 가게를 접을까 고민중이란다. 1년이 지났건만 늘지 않는 손님 때문에 식당을 유지하는 것이 난감한 모양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또 그만한 식당을 찾아내야 하는 게 걱정이다. 내 말 한마디가 쏙쏙 먹히는 그런 식당을 찾아서 시간을 공들여야 하는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걱정이다.
지나치게 과장해서 쓴 글입니다. 저런 맘을 먹은 벤츠손님이 실제 얼마나 될까요. 과장은 되었지만, 현실에서도 의도치 않게 빈자인 식당이 부자손님에게 놀아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것도 한 달에 서너번 찾아오는 근처 단골일 때는 무서운 가스라이팅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한가해서 찾아오는 손님인데 내 식당이 좋아서라고 착각하고, 혼자여도 대접을 받아서 오는 손님인데 내 음식에 끌려서라고 착각할 때가 바로 가스라이팅인 셈입니다. 냉정하셔야 합니다. 과연 벤츠손님은 다른 손님을 많이 소개를 해 주는지, 그 비싼 벤츠를 탄 손님이 올 때마다 먹은 음식 가격은 얼마쯤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벤츠, 아우디, 캐딜락 세명의 손님이 먹은 액수는 얼마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식당은 자선사업이 아닙니다. 특정한 누구를 위해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팔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식당은 소수의 몇몇이 열광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래전 천안의 고기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전국서 찾아오는 맛집인데 매출이 늘지 않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고 저를 찾았습니다. 가보니 이상한 삼겹살을 팔고 있었습니다. 삼겹살에 소스를 다양하게 입혀 팔았는데, 더 오래전 유행했던 와인숙성 삼겹살을 카피한듯 했습니다. 나를 만나자 주인은 이 특별한 삼겹살이 좋다고 서울은 물론, 부산에서도 오고 대전, 광주에서도 찾는 단골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쏘아부쳤습니다. “근데 왜 매출은 이 모양이냐? 그 소수를 위한 식당을 하려고 80평 가게를 차린 거냐? 그렇게 단골이 많은데 나를 왜 부르셨냐?”
벤츠손님이건 아우디손님이건 좋습니다. 내 식당이 정말 마음에 든다면 혼자 오지 말아야 합니다. 여럿과 함께 오거나 올 때마다 새 손님들과 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단골의 파이를 넓혀 주어야 합니다. 그게 진짜 내 식당이 맘에 들어 진심으로 도와주는 겁니다. 정말 그 부자손님이 빈자의 위치에 있는 내 식당을 위한다면 바쁜 시간에 혼자서 4인상을 차고앉아 오래 먹지 말아야 합니다. 그 시간을 피해 와주어야 합니다. 부자인 손님이라서 가끔은 손님이 없는 내 장사를 위해 대량의 포장주문도 해주고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오직 말뿐인 벤츠손님은 언제나 말로만 나를 위로합니다. 마음으로만 나를 응원합니다. 나에겐 지금 라면 한그릇이 간절한데, 참고 기다리면 양장피에 팔보채를 먹을 날이 꼭 올 거라고 말로만 위로합니다.
혼자서만 오는 단골은 위험합니다. 그 무리들로만 오는 단골들도 위험합니다. 그들과는 친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식당이라는 건 공간과 시간에서 매출이 발생합니다. 그걸 확장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얻은 30평을 넓힐 수도 없고, 나만 하루 30시간을 장사할 수도 없습니다. 정해진 테이블 수에서, 정해진 영업시간에 최대한 매출을 늘리려면 회전률이 좋거나, 테이블 단가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바쁜 12시에 벤츠와 아우디가 앉아서 만원짜리 2개를 시켜 1시를 채워 나간다면, 가장 바쁠 7시에 벤츠 혼자 와서 단골이라고 삼겹살 1인분을 부끄러움도 없이 시킨다면 그 손님은 과감히 손을 놓아야 합니다. 식당은 돈을 벌려고 차린 겁니다. 벤츠친구, 아우디형을 만나려고 차린 게 아닙니다. 올 때마다 손님을 소개해주고, 맛있다고 많이 시켜주는 손님이어야 합니다.
벤츠손님은 교수님, 박사님입니다. 아우디손님은 셀럽입니다. 캐딜락손님은 연예인입니다. 그렇게 규정하고 이 글을 다시 읽으셔도 결과는 같습니다. 식당주인과 손님이 돈으로 거래할 건, 주문의 크기뿐 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주문의 크기가 달라지지 않거나, 냉정하게 따져보니 한 달에 기여도가 10만원도 안되는 단골?은 단골!이 아닙니다. 부자의 말뿐인 위로는 가스라이팅입니다. 말로 응원하는 건 아무나 합니다. 정말 라면 한 그릇이 간절할 정도로 배가 고플 때는 일자리가 아니라 5천원짜리 한 장입니다. 의지도 결국 돈에서 나옵니다. 희망도 사실 지갑의 두께가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