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인맥이어야 한다
인맥을 얼기설기 만들려고 했었다. 좋은 식당, 줄 서는 식당 주인들과 인맥을 맺어 상생하고 싶었다. 연줄에 연줄을 대어서라도 소문난 식당의 주인들과 명함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많이 부족했고 그래서 상대는 나를 존중하지 않았고 어쩌다 다은 인맥도 금세 끊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냥 나 스스로의 값을 올리자,라고 방향을 바꿨다. 상대가 나를 인맥으로 삼게끔 하자, 마음을 바꿨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걸지 않음으로 실천에 옮겼다. 제일 먼저 한 일이 내 명함을 버리는 일이었다. 명함을 아예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어쩌다 명함이 한두장 있어도 일부러 주지 않았다. 상대도 나를 인맥으로 삼지 말라는 뜻이었다. 내가 명함을 주었으니 당신도 주고, 우리 그렇게 서로 인맥의 씨앗을 만들자는 세상의 흔한 관습을 외면했다.
함께여서 그 무게로 얻는 파이가 크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세상은 협업의 힘으로 돌아간다. 독고다이로 이룰 수 있는 성과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인맥에도 계급이 있다. 색깔이 진할수록 얻는 파이가 더 크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그래서 거기에 끼이려고 노력들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걸 버렸다. 큰 파이를 원하지 않으면 사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아는 식당을 가지 않으니 한 달이면 20곳쯤의 주인과 만날 일이 생긴다. 하지만, 나는 줄 서는 식당의 주인을 내 인맥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는다. 애초에 줄을 서야 하는 식당을 찾아가지 않는다. 내 비즈니스를 위하여 인맥으로 삼을 일이 없기에 줄 서는 식당은 관심 밖이다. 그냥 끌리는 그날의 식당을 선택해서 외식을 한다. 내 공부를 위한 재료로 삼는다.
지극히 협소적이고 폐쇄적이다. 하지만, 인맥으로 삼지 않는 한 달 스무곳의 식당주인들에게서 내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건 얻는다. 말해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내공이기에 거뜬하다. 더 정밀한 사연은 굳이 내가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와 내가 인맥 비즈니스를 할 게 아니라서다.
인맥장사로 판(강의 프로그램)을 벌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당신 스스로가 브랜드가 되라는 말을 하고 싶다.
큰 꿈을 가져야 중간이라도 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작은 꿈이어야 이룰 수 있다는 쪽이다. 꿈이 크면 그걸 달성하기 위해 인생을 너무 허비하느라 지치기도 하거니와, 작은 꿈을 이뤄도 만족을 하지 못한다는 철학을 가졌다. 그래서 오래전 꿈은 이뤘다. 그 덕에 인맥을 챙기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인맥이란 결국 더 넓거나 큰 비즈니스를 위해 필요하다. 인맥에도 계급이 있기 때문에, 인맥이 쌓일수록 더 알짜 인맥을 가지려는 욕심이 생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줄 서는 식당, 어느 도시에서 명성을 떨구는 식당에 찾아가서 명함을 건네고 악수를 청한다. 다행히 그만한 어깨겨룸의 인생 훈장(책 몇권)이 있으니 상대도 마다하진 않는다. 그렇게 한두번의 악수와 서너번의 안부가 쌓이면서 인맥 비즈니스의 토대를 갖는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걸 뭐라하진 않는다. 내가 거기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내 비즈니스는 오로지 나에서 나로 끝난다. 물론, 내 비즈니스에도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나를 통해 일정한 성공을 일군 내 편 들이다. 이미 내 생각과 판단, 실천으로 삶이 달라진 내 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식이다.
나는 명함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하기야 명함에 전화번호가 없기에 명함은 있으나마나다. 먹고 살려고 인맥을 쌓아야 할 때가 나도 있었고, 해마다 명함을 업그레이드 했었다. 허세도 심었고, 고백도 심은 그런 명함을 철마다 바꿔 만들어 뿌릴 때가 있었다. 그게 대략 40대 초반까지였을 것이다. 그 후로도 명함을 책이 출간될 때마다 만들기는 했어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근래 10년간 나에게 명함을 받은 사람은 채 열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인맥을 쌓는데 반드시 필요한 명함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쩌다보니 25년째 식당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고, 그 수가 수백은 넘는다. 수백의 8할쯤이 인생이 나아졌다. 크기의 차이는 있지만 나를 만났을 때의 가난에서는 거의 벗어났다.
하지만, 이 또한 지극히 당연스러운 결과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한다 했다. 고생하던 시절의 모습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하루 50도 팔지 못해서 빈곤하던 식당을 나에게 보여주었기에 도왔으니, 내가 그 식당의 내막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고마움의 유통기한은 의외로 짧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짧으면 1년, 길어야 3~4년이었다. 방향을 몰라서 헤매던 식당일 때는 방향을 알려준 것 자체가 9할의 요인이라고 고마워 하지만 유통기한이 끝나갈수록 자신의 운과 노력이 9할이고, 내 도움은 1할의 단초라고 생각이 바뀐다. 스스로의 힘이 아닌, 누구 때문에 먹고살만해졌다는 소리를 살면서 하고 싶은 어른은 없을 것이다. 내(본인) 힘으로 바뀐 결과라고 인정하려면 나(맛창)를 부정해야 한다. 내 도움(컨설팅)을 돈 주고 나눈 거래라고 치부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물론 맞는 말이다. 돈을 줬기에 일을 해줬다. 거래는 사실이다. 나 역시도 거래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일군 실적이지만 내 것이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는다. 요란하게 소문내어 내 비즈니스에 이용하지 않는다. 물어보면 그제서야 “맞아요. 내가 손을 댄 식당”이라고 할 뿐이다. 게다가 굳이 따져보면, 자신의 지우고 싶은 과거를 알고 있는 나를 부정하는 확률은 사실 3할 정도다. 그보다 많은 사람들과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식당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적이 많은 편이다. 그만큼 많은 인생을 바꿔놓았다는 소리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