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34살 엄마의 부엌

노포는 로또보다 귀한 유산이다

by 타짜의 클리닉

노포는 맘 먹으면 천하제일이다.

30년 전에 개업했다는 식당을 갔더니, 이미 백년가게로 선정되었습니다. 30년 전에 그 집을 알던 동생이 하는 말 “허름하고 작은 가게였는데 맛이 좋아서 늘 손님이 많았습니다. 그게 벌써 30년 전이네요”

그때는 허름하고 작은 볼품없던 식당이, 지금은 기와를 얹은 한옥 2층집이 되었습니다. 1층에 테이블이 20개가 넘는데 그 1층보다 넓은 별채를 또 지어서 대기실로 쓸 정도였습니다.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막말로 더 장사를 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큼 벌었다는 증명입니다. 바로 그 집에서 엊그제 30년된 순두부찌개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 또한 이 바닥 25년차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실망만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KakaoTalk_20240819_202656120_05.jpg 시골에선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순두부찌개


순두부찌개는 12,000원이었습니다. 30년 노포에서 식사값으로 충분히 치를 수 있는 가격이었습니다. 찬으로 꽁치가 나오더군요. 그리고 서너가지 반찬이 정갈하게 나왔습니다. 꽁치구이를 횟집이 아닌 곳에서 먹는다는 게 재밌었습니다. 2인에 꽁치 한 마리를 먹는 순두부찌개집이었습니다. 정작 중요한 뚝배기를 받고는 실망이었습니다. 3호 정도되는 작은 뚝배기에 순두부만 들었습니다. 꽁치값보다 싼 새우 1마리와 바지락은 3개가 들었습니다. 공기밥을 포함해서 뚝배기 한그릇의 원가를 후하게 줘도 2천원도 한참 되지 못하는 그런 빈약한 순두부찌개에 한숨이 났습니다. 물론, 30년의 솜씨값이 포함되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그렇게 팔아야지요. 그래도 손님은 들어올테고, 저처럼 실망하는 손님이 다시 오지 않아도 식당은 망하지는 않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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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40819_202656120_02.jpg 바지락 겨우 4개


노포는 자산가입니다. 30년을 식당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자식도 키웠습니다. 땅도 샀고, 건물도 올렸습니다. 그러니 자산가가 맞습니다. 자산가는 더 이상 땀흘려 근로수익을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노포의 식당에서 일하는 주인은 없습니다. 주인은 그저 관리만 하고 가게를 지켜줌으로의 역할이어도 수십년 단골은 반갑기만 합니다. 30년 전에는 먹고 살려고, 손님을 늘리려고, 경쟁자보다 더 많은 손님을 채우기 위해서 맛있게, 푸짐하게 내주었습니다. 다행히 운 좋게 살아남아 이제는 노포가, 원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맛과 푸짐함이 없어도 손님들은 30년 세월에서 먹은 한끼의 인증샷 값을 아무렇지 않게 치룹니다. 그놈의 인증샷값을 치루는 손님들 때문에 노포는 더욱 가성비를 포기하는 일이 흔하게 보여집니다. 주던 걸 빼도 손님이 줄지 않고, 한주먹 넣던 건더기를 반주먹으로 덜어도 매출은 유지되니 더 많은 이익을 얻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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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 그렇게 악착을 떠는지 한심하기까지 합니다. 여기 노포가 되어가는 한 식당이 있습니다. 그 식당이 어떻게 변하는지 슬쩍 보여드리겠습니다.

20년전 돈이 없어 동네 뒷길에 9평짜리 작은 식당을 차렸습니다. 테이블 5개를 욱여넣고, 두 살 된 아이를 둘러매고 오토바이로 배달도 해주었습니다. 열심히 성실히 식당을 한 덕분에 조금씩 손님이 늘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고생해서 건너편 큰 길가에 40평짜리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9평 식당을 생각하면 그저 하루가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주방에서 조리하던 음식과 홀에서 조리하는 음식으로 구분해서 팔던 메뉴를 하나로 통일했습니다. 아무래도 한그릇 조리음식보다 홀에서 조리하는 음식이 푸짐하게 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9평 때를 생각하면 40평에 오신 손님들이 그렇게 귀할 수 없었기에 더 푸짐하게 드실 상차림으로 보답했습니다. 그렇게 40평에서 4~5천의 매출이 고마웠습니다. 부부가 일하는 식당이라서 그 정도의 매출이면 부부연봉이 억대가 훌쩍 넘었기에 손님이 늘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좌식이던 식당을 입식으로 고치면서 테이블을 줄였습니다. 14개였던 좌식을 11개로 줄이면서 손님이 편하게 드실 수 있게 투자를 했습니다. 테이블을 줄였지만 매출은 더 늘었습니다. 6~7천의 매출로 손님들도 보상해주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가 오자 테이블을 그 참에 더 줄였습니다. 테이블 간격이 넓을수록 손님의 만족이 높아진다는걸 알았기에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계절마다 투자를 했습니다. 봄에는 작은 마당(2평쯤인)에 돈을 들여 대기실을 손보고, 여름에는 그릇을 바꾸고, 가을에는 의자를 바꾸고, 겨울에는 손님들이 그냥 먹을 수 있는 서비스거리를 준비했습니다. 해마다 그런식으로 번 돈을 낭비?했습니다. 9평이던 그 때를 생각하고 대를 이어갈 작정으로 임대한 가게지만 그렇게 손님을 위해 투자했습니다.



재료값이 올라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인상해야 했지만 최소한으로 올렸고, 더 올리라는 말에도 “이렇게 받아도 남는 게 너무 많다”며 손사래를 저었습니다. 남는 게 많다는 뜻은 9평일 때를 생각하면, 40평 4~5천을 팔 때와 비교해서 한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노포가 되어가는 식당치고 음식 가격이 일절 부담이 없습니다. 심지어 싸게 팔아 히트였던 냉동으로 포장하던 음식도 포기했습니다. 바로 드실 수 있게끔으로만 포장했습니다. 가격이 비싸서 덜 팔려도 냉동보다는 냉장으로 해먹을 포장으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접시에 담아서 내주던 반찬도 항아리를 놔두고 듬뿍 먹게끔 바꾼 건 이미 오래전 실천이었습니다. 마음껏 먹게끔, 맛있게 만들어 항아리째 비어도 웃었습니다. 그걸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코로나에 동네 식당이었음에도 매출이 더 늘었고 어느덧 20년이 지난 지금 그 40평 식당의 매출은 1.2억을 찍는 중입니다.



KakaoTalk_20240823_155545759.jpg 돈 받고 팔던 새우탕을, 노포의 보답으로 그냥 반찬으로 준다.



이런게 노포의 힘입니다. 가난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손이 더 커져야 합니다. 30년전 4천원에 팔던 순두부찌개로도 남았습니다. 그때는 음식을 팔아서 남은 돈으로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식당이 아니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던 식당을 일부러 안할 까닭이 없으니 하는 겁니다. 이제는 음식에서 번 돈으로 먹고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마음의 여유가 있습니다. 순두부찌개를 싸게 팔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지금처럼 12,000원을 받아도 됩니다. 대신 뚝배기 하나를 팔아서 8~9천원을 남기지 말라 이겁니다. 자산을 가진 노포니까 50%만 남기면 됩니다. 재료비를 50%를 써서 “노포라더니 이렇게 통 크게 줄 줄이야”라는 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노포라서 극강의 푸짐함을 준다는 사실의 소문이 꼬리를 물면 매출은 아마 더 오를 겁니다. 매출이 더 올라서 덜 별려고 했던 목표가 어쩔 수 없이 수정되어야 할지 모릅니다. 14개였던 40평에서 5~6천 매출이, 9개로 줄이면서 1.2억을 파는 것처럼 말이죠. 노포는 그래서 무서운 겁니다. 옆에서 아무리 가성비로 덤벼도 노포가 이런 자산가의 투자법을 칼로 휘두른다면 경쟁자들은 나를 위한 조각그림이 되어줄 뿐일테니까요.


경기도의 어느 붕어찜 마을에서 50년전 개업한 원조 중의 원조 식당을 만났습니다. 그 식당에게 자산가의 투자법이 되는 메뉴판을 만들어드렸습니다. 일고의 고민도 없이 따라주셔서 기대가 큽니다. 보란 듯 번듯하게 새 건물을 지어 올리는데 돈을 쓰고, 그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 재료비에서 악착을 떠는 노포들이 흔한데 참 어려운 결정을 너무 쉽게 하셔서 제가 오히려 놀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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