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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규헌

by 에이포

하루 날을 잡고 펑펑 울자.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세상은 가을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캠퍼스 안쪽에 있는 테니스장에서 대학 친구랑 마주 보고 공을 주고 받으면서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렇잖아, 요즘은 다들 잘 안우는 분위기긴 하지.(툭) 그런가?(툭) 그렇다니까. 요즘은 슬픈 영화도 잘 안보잖아.(툭)뭐,그냥 영화도 요즘은 잘 안보니까.(툭)어디서 울지?(툭)(툭)(툭) 자취방에서 울면 되잖아. 슬픈 영화라도 보면서. (툭 투두둑) 미안,놓쳤네...나는 슬픈 영화는 봐도 울지는 못하겠더라고.(툭)왜?별로 안슬퍼서?(툭)(툭)안 슬픈 건 아니고, 슬픈데 그냥 뭐(툭)영화잖아.(툭)

(툭)아무래도 자취방에서는 안될 것 같아.(툭) 그건 또 왜?(툭) ...옆집사는 할머니가 소리에 예민하시더라(툭)(툭 투두둑)

...그럼 뭐,조용한 곳이나 한 번 찾아봐. (툭)그래야지.(툭)(툭)(툭)이제 집 갈까?(투두둑)그럴까? 비도 내린다. 가자.

툭.툭툭.투둑.툭두둑.툭두둑.투드둑.쏴아

세상이 가을이 되고 나서 참으로 오랜만에 내리는 비였다. 그러고보니 비 내리는 날이란 것도 있었지. 지하철역까지 뛰어가는 친구와 인사를 하고 우산도 없이, 오랜만에 피부에 흐르는 빗물과 빗물에 찬 운동화 바닥과 젖은 양말의, 그리울 정도로 끔찍했던 감촉을 만끽하며 자취방까지 뛰어갔다.

집에 도착해서 온몸을 씻고 나와 옷을 갈아 입고 나니, 방 안은 빗물이 마른 것처럼 시원했다. 잠깐 창문으로 보니 아까보다 더 심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씻고 나온 잠깐 사이에 빗물과 빗소리로 가득 찬 세상의 모습은,조금 섬뜩한 풍경이었다. 저 밖에서는 혼자 아무리 울어도 눈물 자국도 안남을 것 같았다.


혼자 울기 좋은 장소

라면 물이 끓는 사이에 인터넷에 검색해봤다.아무거나 검색하면 다 나오는 게 요즘 세상이라지만 정말로 나와서 와. 조금 당황스러웠다.


혼자 펑펑 울기 좋은 곳 있을까요...?

혼자 울기 좋은 장소 추천 top5 나의 울음터.


등등. 찬찬히 읽어보니 하나같이 울고 싶은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이었다. 아마도 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쓴 글은 비슷비슷하다. 우선, 문체나 문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자체는 무덤덤하다. 그래서 감상적이지도 않고 한 두개의 문장만 놓고 보면 차분하고 정돈된 글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계속 읽다보면, 무덤덤한 문장들이 번잡하게 글 안에 들어 앉아있는 게 보여서, 글이 마치, 자취하는 대학생이 오랜만에 찾아 올 부모님에게 잔소리듣는 게 싫어서 이것저것 대충 치운 방처럼, 보기에는 정돈된 것 같은데 어딘가 허술해서 혹시나, 이불을 들춰보거나 옷장을 열어보면 역시나, 널부러져 있던 물건들이 무더기로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하나같이 그런 글이었다 .


하긴 매일 방정리하면서 살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냐만은.

그것도 요즘 같은 세상에.


내 생각보다도, 나보다도 울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심야버스를 타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혹은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고 나서 잠시 또 수능을 얼마 남기지 않고 ,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잠깐 쉬고 싶을 때 아니면 저녁으로 먹을 라면을 끓이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 울고 싶다는 마음으로, 혹은 생각으로 대충 치운 방 같은 글을 남기고 읽으면서 각자 조금씩 속으로 눈물을 채우면서 언제쯤 울 수 있을까. 하고 살고 있었다.

계란도 못 넣고 쫄은 라면을 먹은 그 날 저녁, 나는 검색창의 결과가 상쾌하게 건조한 안구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인공눈물 초특가할인에 대한 광고에 다다를 때까지 검색결과를 타고 글을 읽느라, 평소보다 늦잠을 잤다. 자고 일어났을 때는 첫 강의 시작까지 10분도 안남은 때였고 친구한테는 부재중 전화가 두통이나 와 있었다. 급하게 뛰어나와 가까스로 결석은 면하고 수업은 들었지만, 자리에 앉은 10분만에 눈이 감기기 시작해서, 이럴 때 상쾌하게 안구를 적셔주는 초특가 할인중인 인공눈물이라도 있었으면,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눈을 잠깐 떠보니 다들 가방을 챙기고 강의실을 나서고 있었다.


친구는 친절하게도 첫 수업시간 내내 졸고 있는 내 팔뚝을 세번씩이나 꼬집으면서 깨우려고 했다고 한다.수업이 끝나자마자 학내 카페로 끌고 가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마도 살점이 뜯겨나가기 직전까지 갔을 얼얼한 팔뚝에 차가운 커피를 문지르며 어제의 얘기를 해줬다.


골때리는 이유네. 나도 알아. 근데 읽다보니까 재미들려서 어쩔 수 없더라 아아아, 멍들었겠다. 살짝 꼬집은 것 가지고. 그래서 어디서 울지는 정했어? 어제 그렇게 많이 읽었다며. 모르겠다. 뭐야, 도움될만한 얘기는 없었나보네. 그냥, 당연한 얘기들이지. 생활반경 주변에서 아무도 안올만한 익숙한 장소를 찾아보세요. 그래도 꽤 그럴듯한 얘긴데. 그럴듯하지, 그럴듯한 장소가 잘 없어서 문제지. 그래도,


생각나는 곳이 한 곳 있긴 해.

일주일에 딱 한번, 저녁에는 학교 근처 골목에 있는 호프에서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작고 오래된 곳이라 사람도 많이 오질 않아서 일거리도 거의 없었다. 사장님이 카운터에 서 있다가 누가 들어오면 기본안주를 갖다드리고, 메뉴판보신 다음 주문해주세요. 주문 받고 생맥주도 따라서 서빙하고 계산도 해드리고 기본안주 다시 채워드리고 나가시면 테이블도 치우고 잔도 닦고 맥주통도 갈고 하다보면 할 일이 제법있긴 하지만 그래도,시급을 만원이나 챙겨주셨다.


감사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인데도.

대개 졸업생들, 직장인들, 척봐도 고학번같은 형님들, 아니면 주로 원래 오던 손님들이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계산하거나 주문을 할 때마다 한번씩 나를, 카운터를 지나쳐 사장님께 반갑게 인사를 했다. 사장님, 저 왔어요. 오랜만에 왔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인사를 마친 손님들은 주문을 마치고 테이블로 돌아가서 같이 온 사람들과 화기애애하게 웃고, 이야기하고, 떠들고, 그리고 술을 정말 많이 마셨다.


정말로, 한 손으로 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맥주가 나오는 레버를 잡아당겨서, 손목이 아파올 때까지 많은 양을 한꺼번에 따라서 드리는데도 금새 그 큰 잔을 비우고 다시 채워달라고 한 손으로 건내왔다. 다시 손목을 뉘이고 힘겹게 따른 생맥주에 거품이 부족해서 사장님께 혼이 났다. 그렇게 한잔, 또 한잔, 이번엔... 그냥 한 번에 2리터짜리 두 잔이요? 네, 알겠습니다.

드리는 족족 그대로 각자 잔에 따라 마시고 떠들다가 그새 또 마시고를 반복하는 손님들은 맥주를 저렇게 끊임없이 마셔대도 눈물 한방울 안 넘칠 것 같아서 왠지 좀 부러워졌다.


그러나 날이 샐 때까지 퍼부을 것 같던 그들도 내일 아침에 손주를 어린이집까지 데리고 가야하는 사장님의 완고함을 꺾을 수는 없었다. 떠밀리듯 그들이 지나가고 하루 일당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사장님은 테이블이랑 의자 정리만 하고 문잠그고 가라는 말만 남기고 급하게 가게를 나섰다.


맥주와 안주에서 떨어져 나온 소스가 발라져있는 테이블을 행주로 닦고 있었다. 행주로 끊기지 않고 계속 원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테이블을 닦다보면 힘들이지 않고 금새 일이 끝난다. 그렇게 테이블을 닦다보면 마지막으로 가장 긴 테이블을 닦을 때쯤엔, 팔에서 손으로 원을 그리는 방향으로 금방이라도 뭔가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오늘 낮에 이미,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부터 매번 혼자 남아 가게를 정리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섭섭하고 울적한 감각을 빌려서 눈물을 쏟아 내기로 마음 먹은 참이었다.

슬슬 울어야겠다. 의자를 빼고 앉아서 물기가 서려있는 테이블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올까? 나오려는 것 같은데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카운터를 비집고 들어와 사장님께 인사도 하고,맥주를 마시던 내내 환하게 웃고 있던 아까 그 손님이었다. 들어왔을 때부터 붉은 빛을 띈 얼굴로 숨을 헐떡이고 있던 그분은 내 표정을 보고도 한바탕 쏟아내려고 할 참이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 스스로도 불안해보였다. 집에 가는 길에 황급히 뛰어왔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는 테이블을 짚고 고개를 숙인 채로 가게 안을 둘러보면서 말을 꺼냈다.

죄송한데,여기 치울 때 손바닥만한 하얀 쇼핑백 못봤어요? 아,네. 하얀 쇼핑백이요? 하얀 쇼핑백은 못봤던 것 같은데. 아..그럼 혹시 손바닥보다 작은 하얀색 케이스 같은 거 바닥에 떨어져 있지 않았어요? 음...없었던 것 같아요. 네? 그럴 리가 없는데. 겉에 금색으로 된 영어 써져있고 네? 진짜 없었어요? 네 손님. 아무래도 없었던 것 같아요. 없었던 것 같은거에요, 없었던 거에요? 어... 저는


못봤어요 정말로. 아닐텐데, 정리할 떄 제대로 보신 거 맞아요? 네 정말로 못봤는데 손님, 오늘은 이미 마감시간이라 정리하고 문닫은 다음 저도 가봐야 하거든요. 혹시 가방이나 이런데 다시 한번 찾아보신 다음에 없으면 다음 날 오후12시 지나서 저희 가게에 전화주시면...

제가 안그래도 이미 가방은 말이에요. 네? 존나게 뒤져보고 없으니까 온 거에요. 네?만약에 제가 내일 전화해서 찾아 봤는데 없을 수도 있잖아요. 학생. 나 그러면 어떡하라고 씨발. 제발 다시 한 번만 찾아봐요. 화장실 변기나 쓰레기봉투 안에 있을 수도 있잖아. 나도 같이 찾을게요 학생, 내가 같이 찾아주면 오늘 일한 시급에다 두배로 얹어줄게, 학생.네?

손님, 죄송합니다.

제발요 학생. 나 진짜 작년부터 여자친구한테 아무것도 못 해줬다고. 그거 반지 그거, 좆만한 거 하나 사주겠다고 주말에도 일하러 나가고 그랬단 말이야. 잃어버리면 나 진짜 어떡하라고. 씨발.

죄송합니다, 손님.

이럴 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나는, 사장님한테 배운 것도 들은 것도 없고 도저히 모르겠어서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자동응답기처럼 나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화를 내고 쌍욕을 뱉으면서 화장실도 둘러보고 휴지통도 하나씩 뒤져보더니 그는, 끝에 가서는 내가 앉아서 울려고 했던 그 자리에 엎드려 온갖 울음소리를 내면서 흥건하게 울다가, 내가 건내는 휴대용 티슈를 울고 있는 자리 옆에 한 무더기 쌓아 놓고 나서야, 정말로 코끼리같이 큰 소리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결국 맥주를 그렇게 마셨던 그가 목이 말라서 물 한 컵만 가져다 주실 수 있냐고 부탁할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가게를 나서면서 차비를 쥐어주고 연신 죄송하다며 가게를 터덜터덜

나서던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뭐라고 위로라도 건낼까하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죄송하다는 말 밖에는 생각나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죄송합니다.

다음 날 아침도 역시 아픈 눈으로 일어났다. 널부러져 있던 옷들을 정리하는데 주머니에서 어제 받은 오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 방바닥에 낙엽처럼 떨어졌다.

세상은 어느덧 가을의 끝에 있었다.

수업이 다 끝나고 사람들이 캠퍼스를 빠져나가는 저녁쯤에 테니스장에서 공을 던지고 받으면서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 손님, 결국 어떻게 됐어?(툭)글쎄다. (툭)꼭 찾았으면 좋겠다. (툭) 그런데 진짜 많이 울더라. (툭) 많이 울만하지. 너같으면 안 울거야? (툭) (툭) (툭) (툭) (툭) 원래 테이블에서 술냄새가 나야 하잖아. 술집이니까. 그런데 그 분이 가고 나니깐 눈물 냄새가 나더라고. (툭 투두둑) 눈물 냄새가 어떤데? (툭)말로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툭) 그래도 해봐.(툭) (툭)(툭) 비냄새보다는 좀 짠데 바다 냄새보단 싱거워.(툭) 음,오묘하네.(툭) 그럼, 다음에 알바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툭 투두둑)아니.


이제 거기서는 못 울 것 같아.

세상은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기 전에, 대수능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매번 들르는 편의점 진열대 앞에는 초콜릿과 달콤한 과자들이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고, 학교 근처의 커피숍에서는 늦은 시간인데도 체육복을 입은 고등학생 무리가 우르르 나오곤 했다. 의외로 대부분은 웃음을 머금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에 나는, 집 근처 산책로에서 적당한 공원을 찾았다. 골목 끝에 있는 우리집에서 좀 더 깊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정말 외진 곳이었다. 있는 거라고는 운동기구 몇 개와 허름해서 앉아 있기도 불안한 평상 하나뿐이었다. 어느 날 밤, 정처 없는 산책을 하다가 운 좋게 발견한 이 곳은 더할 나위없이 만족스러운 구석자리 같은 장소였다. 이런 곳에 누가 오긴 올까?

그것도 요즘 같은 세상인데.

울기로 한 날, 세상은 수능D-1이었다. 비 한 점 오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축축했던 날이었다. 친구는 몸살에 걸려 학교에 오지 않았다. 전화해서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녀석은 전혀 괜찮지 않은 목소리로 괜찮아. 내일까지 쉬면 멀쩡해지겠지. 하고 대답했다. 약 챙겨먹고, 힘내라고 말해주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죽어가는 목소리로 와중에 웃으면서 말했다.

나으면 또 캐치볼 해야지. 얼른 낫고 나중에 학교에서 봐. 툭.

별 다른 준비물은 없었다.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몰라서, 두꺼운 옷 안에 여름옷을 겹쳐 있고 주머니에 손을 꽂고 조용히, 나섰다. 수능에 접어드는 세상에는 눈오는 겨울보다 더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눈물을 흘려도 금방 마를 것 같은 날이었다.

공원에 도착해 잠깐 멍하니 서서 울려고 노력해봤는데 평상에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무로 된 평상바닥을 보면서 술집에서 만난 손님을 떠올렸다. 그 사람, 정말 안됐지.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됐는데, 잠시 우울에 빠졌고, 우울해진만큼 밤이 깊어지고 어두워졌다, 점점 날씨도 차가워지기 시작해서 이제 진짜 눈물만, 나오면 되는데.

누군가 털썩 평상에 앉았다. 고등학생쯤 돼보이는 아이였다. 이 근처의 학생들이 다 입고 다니는 교복을 입은 그 아이는 가로등 불빛에 등에 기댄 묵직한 가방을 드러내놓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등을 맞대고 십수분, 말없이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아이는 친구랑 전화로 수다도 떨지 않았고 심지어 휴대폰도 아예 보지 않았다. 남자 친구나 친구들을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막연하게 언제쯤 가려나를 기다리면서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더군다나 이런 곳이라면 ,귀신일수도.

말도 안돼.

12시가 넘어서, 그만큼 싸늘해진 바람 탓에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고 옷을 껴입은 탓에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얼른 집에 돌아가야겠다. 다음에 날이 좀 풀렸을 때,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찾아와서 울자.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아직 살 날은 많이 남아있으니까. 보도블럭의 모양새에 시선을 고정하고 평상을 돌아서 집으로 후딱 뛰어가려던 찰나에


엉엉엉허엉. 갑자기 그 아이가 서럽고 크게 울기 시작해서 나는 와아.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놀라 자빠질 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신없는 뜀박질이 차분해지는 동안, 나는 그 수십분동안 묵묵하게, 천천히 꾸준하게 열심히 자신의 몫만큼 울고 있었을 그 아이를, 놀라서 뒷걸음질 치던 찰나에 봤던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눈물 하나 흘리지 않아 놓고 피곤했는지 금새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깼을 때 세상은 한창 수능을 지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친구는 금방 괜찮아져서 금요일에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이번엔 내가 앓아누웠다. 친구는 전화를 해서 자기한테 옮은 것 같다고 했지만, 평상에서 꼼짝않고 앉아 있던 게 틀림없는 원인이었을 것이다. 약을 먹고 한참을 자다가 일어났을 때는 세상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가 강원도에는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세상이 이미 겨울로 접어들었구나. 싶어서 친구이게 전화를 해봤더니 뭐야. 이미 알고 있었단다.

오늘도 학교에서 롱패딩 입고 목도리 두른 사람만 몇십 명 보이더라. 그래? 여기는 눈도 안 내리고 있잖아. 글쎄, 누구는 장갑도 끼고 다니던데. 요즘은 하도 추우니까.

맞다. 몸은 좀 어때. 괜찮지. 나도 내일이면 낫지 않을까? 그럼, 내일 괜찮으면 학교에서 캐치볼할래? 내일은 주말인데, 괜찮아? 뭐, 오랜만이니까. 그럼 내일 낮에 만나자. 그래.

전날 잠을 너무 많이 자서 그런지 잠을 덜잤는데도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씻고, 배가 고파서 정말 오랜만에 허겁지겁 아침을 먹었다. 낮까지는 시간이 좀 많이 남아 있었다. 패딩을 입고 장갑을 끼고 나와보니 세상은 겨울이었지만 추위가 싹가셨는지 뉴스에서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눈도 내리지 않고 춥지도 않았다. 그냥 가끔씩 바람만 불었다.

밥 먹다 해열제라도 삼켰나. 그럴 정도로 땀을 뻘뻘흘리면서 테니스장에 도착하니 친구는 벌써 도착해있었다. 녀석은 패딩을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안녕. 그리고 친구가 무엇을 하고 있었냐하면은, 한 손에는 테니스 라켓을 쥐고 공을 위로 던진 다음 쳐서 네트 반대편으로 넘기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아마도 공을 한번에 벽에다 맞추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날씨 봤지?(휙) 응. 아직 겨울은 아닌 것 같더라.(탁) 라켓은 어디서 난거야? 아이거?(휙)(탁)이거 내 거야. 우리집에서 가져 온 거.(휙) 니 거라고? (탁)원래 테니스 쳤었어? 응,맞다. 이거 공좀 올려줄래?(툭) 어,그래.(휙) (탁) (휙) (탁) (휙) (탁) 근데 말이야 (휙)왜 그동안 캐치볼만 한거야? (탁) 아 그냥 (휙) (탁) 캐치볼이 더 재밌잖아. 공 주고 받는게? 왜?(휙) 공주고 받는 건 그거고(탁) (휙) 둘이서 이런저런 시시한 얘기하는게 재밌는 거지.

탁.

테니스 치다보면 숨차서 말도 안나와. 대화 못해. 근데 진짜 땀 많이 나네. 외투 좀 저기다 벗어 놓고 음료수 사러 가자.응? 뭐야. 왜 그래. 왜 갑자기 그러는 거야.


잠깐만, 너 지금 울고 있는 거구나. 맞지, 하려던 거 하고 있는 거지. 하하. 야 진짜 펑펑 울고 있네. 있어봐. 휴지 줄까? 그래. 편하게 울고 있어. 잠깐만, 휴지가 어딨더라.근데 그렇게 울고 나니까 응? 어때?


따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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