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에서 얼마나 융통성이 있는 사람일까?

1973년 우루과이에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섰다. 영화 <12년의 밤>은 이때 군사정권에 반대해 자유를 부르짖던 세 남자에 대한 실화 영화이다. 이념과 자유를 주제로 한 영화지만 난 이 영화 속에서 우리가 다니는 회사를 생각했다.


수감자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한 쪽에 수갑이 채워진 채 화장실 칸에 들어간다. 볼 일을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손에 묶인 수갑 때문에 제대로 볼일을 볼 수 없다. 수갑이 벽 위쪽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감자는 간수에게 요청한다. 이대로는 볼 일을 볼 수 없다고, 수갑을 좀 풀어달라고. 그러자 간수는 자신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다며 잘라 말한다. 주인공의 계속된 요청에 간수는 결국 상병에게 그 문제를 보고한다. 상병은 이 문제를 하사에게 보고한다. 하사는 중사에게, 중사는 중위에게, 중위는 대위에게 보고한다. 현장에 대위가 도착했다.

대위가 포로에게 물어본다.


“정말 똥을 싸야겠나?”


포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대위는 소령을 찾아간다. 소령은 화장실 현장을 방문한다. 이미 그곳에는 수많은 병사가 모여 있다. 소령은 현장을 보자마자 소리친다.


“덜떨어진 것들!”


대위는 현장을 박차고 나간다. 하나둘씩 부하들이 그의 뒤를 따른다. 결국 포로 홀로 남는다. 그리고 소리친다.


“아무나 와주면 안 됩니까?”


그가 결국 볼일을 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알 수 있다. 얼마나 황당하고 답답했을까? 한 사람의 볼일 보는 자세를 위해 수십 명의 군인이 동원됐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 모습을 보며 회사를 떠올렸다. 비슷한 경우가 참 많은 듯 했다. 유관부서의 담당자에게 업무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담당자는 권한 밖의 일이라며 상사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물론 그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니 그 정도도 자기 선에서 못해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납득이 가면서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할 때 그러한 모습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다. 상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어떤 일을 진행시켰는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다. 사실 본인도 안다. 이 정도쯤은 자기 선에서 처리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혹시 몰라 상사에게 컨펌(Confirm)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같은 직장인으로서 이해도 가지만 짜증도 났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걸까?’


그렇게 함으로써 당장의 책임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나은 발전은 없다. 스스로의 판단대신 상사의 지시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회사이지만 때론 자신의 판단을 믿어야 할때가 있딘. 권한밖의 일이라도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과감히 해야 할 때가 있다. 설령 일이 잘 못되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나 부정한 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책임을 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조직은 자생력을 키운다.

12년의 밤에서는 이런 장면도 나온다.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아들을 보기위해 어머니가 교도소를 찾아온다. 교도소 문지기는 매뉴얼(Manual)대로 방문자 대장 작성을 요청한다. 어머니는 비를 맞으며 몇 시간에 걸쳐 면회를 기다린다.


문지기 : 부인! 서류를 확인중이랍니다. 안에서 기다리세요,

어머니 : 아뇨. 여기도 괜찮아요.

(한 참후)

문지기 : 죄송하지만 면회가 안 된답니다.

어머니 : 여기 없어요?

문지기 : 저는 모릅니다.

어머니 : 어디 있는데요?

문지기 : 저는 모릅니다.

어머니 : 그럼 아는 게 뭐예요?

문지기 : 말씀드린 거요.

어머니 : 뭘 알려줬는데요?

문지기 : 저는 모른다니까요.


이 대화를 보며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을까 상상이 갔다. 얼마나 답답하고 환장할 노릇이었을까? 문지기는 안 된다는 말과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가끔 따질 일이 있어 고객센터로 전화할 때가 있다. 담당자는 모르겠다고만 한다. 일의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바쁘다. 가끔씩 이런 류(類)에 있는 사람들을 회사에서도 만난다.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 방법보다는 일이 진행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바쁘다. 난 그것이 왜 안 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럼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듣고 싶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그것이 자기 사업이었다면, 자기가 꼭 해야 하는 일이었더라도 그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나는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일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이었을까? 안 되는 일을 되게끔 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사람이었을까? 후자의 경우였다면 좋았겠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급급했을 때가 있었다. 새롭게 일을 진행시키기엔 피곤하고 귀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안 된다고 했던 일인데 다른 사람이 해냈던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땐 나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다음부터는 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하는 대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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