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소문 너무 신경 쓰지 마요 - 진술 편향

직장 생활, 학교생활, 동호회 생활 등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고민이 있지요. 바로 자신에 대한 소문입니다. 나에 대한 소문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듣는다는 것 자체가 썩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더욱이 그 소문 내용이 맞는 경우도 별로 없습니다. 나에 대한 소문이 사실과 달라서 억울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죠. 도대체 이런 소문은 누가 퍼트리는 걸까요? 그 소문의 진원지를 알아내서 당장 쫓아가 따지고 싶은 심정입니다.


도대체 왜 그런 식으로 말하고 다닌 거냐고 말이죠.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사에서 저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별로였습니다. 별 내용이 아니더라도 나에 대한 소문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신경 쓰였습니다. 거의 온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지요. 누군가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심리적인 불편감을 떨쳐 버리기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앞에서는 웃으며 얘기해도 뒤에 가서는 딴소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부 내보이진 말자라고 경계하게 되더군요. 한때는 소문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가끔씩 저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 ‘누가 그런 얘기를 하고 다녔을까?’ 하고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단서의 단서를 캐내어 범인을 쫓는 독기 품은 탐정처럼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소문의 진원지는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원지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제 자신이 더욱 답답하고 처량하게 느껴졌거든요. ‘이렇게 해서 뭐 하나?’ 하는 공허감도 밀려왔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제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좋은 심리학 이론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바로 ’ 진술 편향(Statement bias)‘이라는 이론이었는데요. 진술 편향이란 사람들이 누군가의 질문을 결국에는 무의식적으로 평서문으로 기억해 저장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동료인 최 대리가 김 대리에게 묻습니다.


최 대리 : “김 대리, 이번에 들어온 신입 사원 말이야. 우리 김 전무님과 복도에서 긴밀히 얘기 나누는 모습 봤어?”

김 대리 : “아니, 왜?”

최 대리 : “혹시 그 신입 사원 우리 회사 높은 분과 뭔가 관련되어 있는 거 아니야?”

김 대리 : “…”


이 얘기를 들은 김 대리인 당신은 ‘그런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뇌는 그 신입 사원에 대한 질문을 그대로 저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신입 사원은 윗사람과 관련되어 있다’라는 평서문의 형태로 기억 속에 저장합니다. 왜 원래의 의문문 형태로 저장하지 않고 평서문 형태로 바꿔 저장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는 당신이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뇌가 물음표(?)를 빼고 대충 저장하는 것이죠.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매우 게으른 신체 기관이거든요. 뇌가 이 말은 정확히 의문문, 이 말은 정확히 평서문, 이 말은 정확도가 낮은말, 이 말은 정확도가 높은 말, 이렇게 따로따로 세세하게 구분해서 저장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당신이 다른 누군가와 대화할 때 자신도 모르게 이런 얘기를 하게 되지요. “아, 그 신입 사원 말이야? 그 친구 백이 좀 있는 것 같던데?” 이 말은 들은 또 다른 상대방은 ‘아, 그 신입 사원은 윗분들과 관련이 있다는 게 맞는구나.’ 하고 이해합니다. 이 말이 한 번 더 옮겨가면 ‘그 신입 사원은 백이 있다.’로 사내에서 기정사실(旣定事實)화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문이 탄생하는 것이죠. 어때요? 이제 좀 소문의 발생 원리가 이해되셨나요? 최초의 열대성 저기압이 주위의 수증기를 긁어모아 조금씩 커다란 태풍으로 발달하는 것처럼 당신에 대한 소문 역시 누군가 던진 당신에 관한 질문 한두 개가 당신이 등장하는 대화를 끌어 모아 당신에 대한 그릇된 소문으로 발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단순히 소문이 아닌 경우도 있겠죠. 그중에는 소문이 아니라 사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에 대한 소문이 처음부터 어떤 악의를 가지고 많은 사람이 실제로 ‘그렇다’고 믿어서 생겨나진 않았을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에 대한 소문이 한두 사람의 단순한 질문에서 발생한 오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원리를 깨닫고 난 뒤에는 저에 대한 소문을 들어도 예전처럼 마음이 심하게 동요하진 않습니다. 전에는 소문으로 인해 몹시 신경 쓰이고 누가 그런 얘기를 처음 시작했는지 소문의 진원지를 밝히고 싶었죠. 하지만 지금은 훨씬 나아졌습니다. 진술 편향과 소문의 작동 원리에 대해 나름 생각을 정리한 후에는 소문에 훨씬 의연해질 수 있었습니다. ‘에이, 누가 또 그런 식으로 잡담했나 보네.’ ‘누가 또 괜한 걸 물어봤나 보네.’ 하고 말이죠. 저에 대한 소문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졌습니다. 물론 저에 대한 누군가의 진심 어린 충고에는 신경을 씁니다. 그것은 단순히 소문이 아니라 저를 위한 마음에서 누군가가 제게 보여 주는 진심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 대한 충고는 애정이 담겨 있으며 말하는 사람의 실체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 자체로 가치 있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달리 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합니다. 소문에 대해 고민하고 전전긍긍하는 시간과 마음이 너무 아깝거든요. 너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단지 한두 명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한 오해라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혹시 지금 자신에 대한 소문으로 마음고생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잡담에서 나온 오해일 뿐이니까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어떤 사람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즉, 질문을 받았으면 질문의 형태 그대로 뇌 속에 저장하도록 노력하는 겁니다. 당신의 뇌는 그 질문을 평서문의 형태로 저장하려고 하겠지만 거기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다른 이름으로 저장’ 하지 말고 들은 그대로 ‘저장’ 해야 합니다. 파일의 형태를 ‘. 평서문’이 아니라 ‘ 의문문’으로 그대로 저장해야 합니다. 그것이 애먼 사람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지 않는 당신의 따뜻한 배려입니다.


당신에 대한 소문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지는 당신을 기대합니다.

당신에 대한 사담으로부터 더욱 의연해지는 당신을 기대합니다.

타인에 대한 질문은 질문 그대로 저장하는 배려심 있는 당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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