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열등감이 있기 마련입니다. 키가 작다는 열등감, 가난하다고 생각해서 느끼는 열등감, 능력이 처지는 것 같아서 느끼는 열등감, 운동 신경이 부족해서 느끼는 열등감. 이처럼 우리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열등감의 종류는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열등감이란 혼자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누군가 비교할 대상이 있기에 느끼는 상대적 감정입니다. 비교 대상이 없다면 열등감을 느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비한 열등감이 제게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오래된 열등감이 바로 제 발가락입니다. 제 발가락을 보면 한눈에 뭔가 특이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제 신발 사이즈는 보통 290mm~300mm로 매우 큰 편에 속합니다. 그래서 구두를 사더라도 기성품은 거의 살 수가 없습니다. 구두 매장에 가서 우선 원하는 디자인을 고른 후 주문 제작을 의뢰합니다. 그런 다음 약 1~2주 후에 신발을 찾아가는 식이지요. 운동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화는 그 순서가 반대입니다. 운동화 매장에서는 디자인을 먼저 고르면 안 됩니다. 먼저 300mm 사이즈가 있는지 물어봅니다. 있다면 그 사이즈 안에서 디자인을 골라야 합니다. 선택의 폭이 일반인들에 비해 매우 좁은 것이지요. 어찌 되었건 신발 매장에 있는 직원들이든 주변 사람들이든 처음 제 발 사이즈를 들으면 모두 깜짝 놀라곤 합니다.
“네? 300mm요? 진짜요?”
“네. 300mm요.”
보통 이렇게 놀라서 되묻는 상대방의 질문과 의연한 저의 답변이 이어지곤 합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제 발 사이즈에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양쪽 발이 다 큰 것은 아니고 실은 왼쪽 발만 그렇습니다. 제 왼쪽 발가락 중에서 두 개가 보통 사람들의 발가락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깁니다. 짝짝이라고 해도 꽤 심각한 짝짝이지요. 어린 시절부터 저는 이런 짝짝이 발이 무척 싫었습니다. 이런 못생긴 발이 너무 창피했습니다. 이런 발가락을 주신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고요. 맨발로 있어야 하는 상황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사람들에게 제 못생기고 이상한 발가락을 보여 주기가 싫었으니까요.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가서 함께 어울릴 때가 정말 고역(苦役)이었습니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갈 때도 신발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 걱정스러웠습니다. 목욕탕에서 사람들이 제 발가락을 보는 것도 무척 신경 쓰였지요. 여름에 샌들을 마음껏 신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 여름에 샌들을 신어 본 기억이 거의 없거든요. 저는 올해로 마흔 살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비해서는 못생긴 제 발가락에 대한 창피함이 그나마 덜해진 것을 느낍니다. 요즘엔 가끔씩 샌들을 신고 지하철도 타고 하니까 말이죠. 물론 타인의 시선들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왼쪽 발가락에 신경은 쓰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비해서는 보다 당당해진 저를 느낍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인간은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기질적 불완전성이 있다는 말이지요. 여기서 열등감이 발생하고요. 인간은 그 열등감에 대한 보상으로 우월감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하였지요. 우리는 우월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안에 가지고 있는 그 열등감을 극복해야 합니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열등감을 인정부터 해야 하고요. 제게는 발가락에 대한 열등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또래들에 비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열등감, 타고난 똑똑한 머리는 아니라는 열등감. 이 모든 것들이 제 안에서 오랫동안 저와 함께 해 왔습니다. 지금도 그 열등감들은 제 안에 남아 있지만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열등감 자체를 인정하고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릴 적엔 이러한 열등감을 마주 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열등감을 인정하고 나니 열등감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열등감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어요. 열등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었기 때문이죠. 내 안의 열등감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정말 못난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죠. 아마도 그런 느낌이 싫어서 열등감을 인정하지 않았었나 봅니다. 하지만 열등감을 인정하면서부터 내 안의 감정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감정과 열등감이 보이니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죠. 그 열등감의 정체는 무엇인지, 어디서 온 것인지, 앞으로 그 열등감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주의 깊게 고민하며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열등감이란 것 역시 나 자신의 일부였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무조건 부정하고 떼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리게 되었죠. 제 스스로 한 단계 성숙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그리고 지금은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다들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요. 세상 사람들 중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열등감을 인정하는 사람과 인정하지 않는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는 저마다 열등감이 있지만 그 열등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우월감을 추구하며 살아가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혹시 어떠한 열등감을 지니고 있나요? 당신은 자신의 열등감을 인정하고 있나요? 열등감은 기쁨과 슬픔처럼 자연스러운 우리 감정의 한 형태입니다. 열등감이 없다는 건 감정 자체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감정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열등감,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 안에 숨어 있는 열등감이 무엇인지 오늘 하루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지금껏 오랜 시간 함께해 왔지만 애써 바라보지 않으려 했던 열등감이 무엇이 있는지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현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노력을 더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노력하며 당신은 열등감을 극복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우월감을 향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