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지 않은 생기 있는 단어를.
남자가 여자에게 길을 설명한다. 새로 생긴 파스타집에서 만날 참이다. 설명이 끝났다. 남자는 자신이 설명한 대로 역에서 파스타집까지 가는 길을 상상해 본다. 완벽하다. 박수까지는 아니지만 어깨를 으쓱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랬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10분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무엇을 먹을까, 어떤 조합이 최선일까 이리저리 맞춰보다가 메뉴는 여자에게 맡기기로 한다. 경험을 떠올려보아도 그 편이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나저나 여자가 오지 않는다. 10분이 지났다. 전화가 왔다. 여자는 전혀 다른 블록에서 헤매고 있다. 어떻게 당신이 설명한 거기가 거기냐며, 어쩜 그렇게 설명을 못하냐며 욕을 먹는다.
남자가 여자에게 설명을 듣는다. 요새 인기 있다는 무슨 무슨 길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자의 설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남자는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10분 전에 약속 장소(라고 생각하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20분이 지났다. 여자가 오지 않는다. 전화가 왔다. 입구가 여러 개라니... 왜 거기 있는 것이냐며, 이 길을 못 찾기가 더 어려운 일일 것이라며, 운전병은 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며 욕을 먹는다.
이 이야기의 시사점은 무엇일까? 남자는 당최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어떻게 해도 욕을 먹게 되어 있다?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썼지만 사실 필자의 이야기가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필자가 의도한 바는 '의도와 다르게 듣는 이(=읽는 이)가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매번 다르게 이해할 수가 있느냐,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저기... 화내지 말고...) 이거 꼭 내가 변명을 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 버렸는데, 결코 그런 의도가 아니다. 나는 틀림없이 글쓰기(=말하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왜 의도와 다르게 이해할까? 사람은 누구나 일부러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주제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의 차이, 각자가 느끼는 중요도의 차이, 표현 방식의 차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 가치관의 차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 습관의 차이, 이런저런 차이, 크고 작은 차이, 차이의 차이...... 결국, 다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달과 같구나' 할 때의 달이 누군가에게는 지금껏 본 가장 아름답고 선한 존재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는 그냥 큰 것, 부은 것, 부기(부은 상태. 그래서), 조롱하는 것? 싸우자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나'와 '남'이 같을 수는 없다. 글자부터가 다르다. 내 맘 같지 않다고 서운해할 것도 없다. 내 맘이 아니니 내 맘 같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 생각은 어때요?)
'말을 똑바로 해야지.'
바로 이거다(고마워요). 의도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제대로 쓰는 게 중요하다. '아'와 '어'는 분명히 다르다. '아'라고 하고 싶으면 '아'라고 쓰고 '어'라고 하고 싶으면 '어'라고 쓰자. 개떡 같이 쓰고 찰떡 같이 알아듣기를 바라지 말고 처음부터 찰떡 같이 쓰자. 그런데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의도대로 된 것). 쉽지 않으니 문제이지(역시 의도한 반응). 사실 자신의 의도를 100% 완벽하게 전달하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쓴 글조차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남의 글은 오죽하겠는가. 다만, 최소한 짜장면이라는데 짬뽕을 떠올리거나, 오른쪽이라는데 왼쪽으로 가거나, 바다로 가자는데 산으로 가지는 말아야 한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정도'는 한 가지만 바꾸면 훨씬 좋아진다.
바로 단어다. 내 의도에 맞는 '적확한' 단어를 쓰면 오해는 확실히 줄어든다. 삶에 대해 말하고 싶은지 생명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생에 대한 것인지 생애에 대한 것인지, 생활의 발견? 생계의 고달픔? 일상의 다반사? 인생은 미완성? 도대체(대체, 대관절, 도무지, 당최, 통)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헷갈리지(혼동되지, 어리둥절하지, 갈팡질팡하지, 헛갈리지, 섞갈리지) 않도록 적확한 단어를, 정확한 단어를, 틀림없는 단어를, 확실한, 분명한, 명확한, 명쾌한, 빤한! 단어를 잘 '골라' 써야 한다. 무언가 지금, 애매하거나 모호한가? 묘한가? 이상한가? 기이한가? 오묘한가? 괴상한가? 절묘한가? 신기한가? 교묘한가? 야릇한가? 복잡한가? 기묘한가? 그리고, 고르다니?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고른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의도대로 되고 있다!)?
사전이 있다, 우리에겐. 따로 시간을 내어 단어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야 하는 것이었다면 아예 단어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어 공부를 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술을 한 잔 더 하기를 권한다. 글쓰기에 더 도움이 될지 모른다(잊지 않기를 바라는데, 나는 아주 게으른 사람이고 나 같은 사람도 쉽고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늘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사전을 활용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사전에서, 자신의 의도에 꼭 맞는 단어를 찾아 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1) 자신이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2) 어색하게 들리는 부분의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본다.
3) 의도한 뜻과 비교해 본다.
4) '유의어'를 확인해 보고 알맞은 단어를 고른다.
이 중 특히 중요한 과정이 '소리 내어 읽기'와 '유의어 확인하기'이다. 소리 내어 읽기는 여러모로 유용하다(그래서 다음에 따로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소리 내어 읽어보면 굳이 문법, 문맥이나 상황, 의도 등을 따져 보지 않아도 어색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바로 그곳을 고치면 된다.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보면 그 단어의 정의, 용례(이것만 해도 매우 유용한데)뿐만 아니라 '유의어'가 함께 나온다. 유의어를 죽 살펴보고 자신이 의도한 뜻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를 골라 쓰면 된다. 의도와 이해의 차이를 줄이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글을 쓸 때 유의어를 찾아보면 좋은 점이 또 있다. 상투적인 표현을 줄일 수 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당신이 떠났다는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볼을 꼬집어 본다. 그리운 사람,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미어질 듯,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만간 밥이나 한 번......'
자신의 글이 개성도 재미도 없다면, 이와 같은 흔한 표현 때문일 확률이 높다. 그런 흔하디 흔한 표현들 몇 개만 바꿔도 글 전체의 빛깔이 달라질 수 있다. 문을 '밀지 두드릴지(퇴고: 推敲)'를 (글을 쓸 때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지만) 몇 날 며칠씩 고민만 할 필요가, 이제는 없다. 사전을 찾아보고, 알맞은 단어를 골라 쓰면 된다. 자신의 의도에 꼭 맞으면서, 시들지 않은 생기 있는 단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