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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Jan 01. 2020

강두원 사촌


    "사촌이에요."

    "어머, 정말요?"

    어머어? 정말요오? 알고 있었잖아. 다 알고 연락한 거잖아. 일권은 좀 맥이 빠졌다. 형식적인 인사말, 어차피 실리지도 않을 근황 질문(엊그제 계약한 대졸 신입 선수가 시즌 전에 무슨 대단한 근황이 있겠나). 잘 지냅니다. 아픈 데 없고요. 웨이트 매일 하고요. 모레 팀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기대가 큽... 채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물론 아주 진부하고 재미없는 대답이었다는 건 일권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래도) 두원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강두원 선수와는 어떤 관계?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랐나? 언제부터 야구를 좋아했나? (저요?) 아니, 강두원 선수. 원래는 투수였잖아? (저 투순데요?) 아니, 강두원 선수. 체구가 큰데 아주 유연하다, 엄마 닮았나? 아빠 닮았나? (둘 다 안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 강두원 선수가? (아니, 저요.)

    "아, 네에."

    형식적인 질문 몇 가지가 이어졌다. 사진도 몇 컷 찍었다. 카메라 보세요. 이번엔 하늘 한 번 볼까요? 너무 들었다, 45도 정도 비스듬히. 주먹을 불끈! 그렇지, 그렇지. 아, 좋아요! 자, 스윙 한 번 해 볼까요? (저 투순데요?) 아 맞다. 강두원 선수인 줄 알고. 까르르......


    '저도요. 저도 제가 두원인 줄 알았어요.'

 

    "끝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어요?"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팀의 목표가 곧 저의 목표입니다. 팀이 우승하는 것 외에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매 경기, 매 순간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개인 타이틀이요? 그런 건 나중에, 아주 나중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때 다시, 기회가 된다면 말씀드릴게요."


    '두원이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기사는 그런 제목으로 나갔다. 45도 정도 비스듬히 하늘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쥔 사진과 함께. 두원의 홈런 세리머니였다. '나 투순데......' 그래도 그 기사 덕분에 꽤 유명해졌다. 강두원 사촌. 동료, 선후배, 야구 관계자, 팬들도 일권을 그렇게 불렀다. 일권을 타자로 아는 사람도 꽤 많았다. 실은 타자든 투수든 그냥 강두원 사촌이라고만 아는 사람이 대분분이었다. 일권은 이런 상황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두원은 눈에 띄는 아이였다. 우선 체격부터가 또래의 아이들보다 두 배는 컸다. 그냥 살이 찐 게 아니라 골격이 달랐다. 어른들은 '서구적인 체형'이라고 했다. 일권과 두원은 친형제처럼 컸다.


    어느 날 일권의 고모가 두원을 데리고 일권의 집으로 왔다. 저녁때였다. 고모는 아주 오랜만에, 두원은 그날 처음 보았다. 일권의 아버지는 와서 밥 먹으라고 했다. 일권의 어머니는 두 사람의 밥과 수저를 식탁에 놓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고모는 몇 숟갈 뜨자마자 끅끅 거리며 통 먹지를 못했다. 일권의 아버지는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오직 두원만이 푹푹 잘도 먹었다. 그날부터 일권과 두원은 한 집에 살았다. 고모와 두원은 서재에 짐을 풀었다. 짐이라고 해 봐야 28인치 캐리어 하나가 전부였다. 아버지가 그 방을 쓰라고 했지만, 두원은 늘 일권과 함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일권과 두원이 한방을 썼다. 두원은 일권보다 키도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나이도 같았지만, 일권을 형이라고 불렀다. 일권의 아버지가 큰외삼촌이라 그런 건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불렀다. 일권도 싫지는 않아서 내버려 두었다.

    "'두원'은 '두리(둘이) 하나(one)'라는 뜻이래. 아빠가 지었대."

    일권은,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묻지 않았다. 어린아이였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두원은 일권을 잘 따랐고, 일권은 진짜 형처럼 두원을 잘 챙겼다. 둘은 정말 하나였다. 어딜 가든 같이 다니고, 무얼 하든 같이 했다. 야구도 그랬다.


    먼저 관심을 보인 쪽도 두각을 나타낸 쪽도 일권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리틀 야구단에 들어갔다. 체구는 작았지만 잘 치고 잘 달렸다. 무엇보다 수비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얼굴만 한 글러브를 자유자재로 다뤘다. 코치는 재능이 있다고 했고, 김재박, 류중일, 유지현 뒤를 이을 국대 유격수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파하하 웃기만 하던 일권의 아버지는 데릭 지터(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유격수)까지 거론되자 침을 꼴깍 삼켰다. 두원은 처음엔 야구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일권이 하니까 따라가서 구경만 했다. 오히려 야구 때문에 일권과 놀 시간이 줄어든 것이 불만이었다. 일권도 두원이 마음에 걸려 아버지에게, 두원도 같이 하면 좋겠다고 졸랐다. 아버지도 마지못해 승낙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아, 두원이 사촌이구나!


    두원은 그냥, 달랐다. 타고났다고 했다. 차원이 다른 체격이었고 차원이 다른 힘이었다. 재능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또래 선수들뿐만 아니라 리틀 야구 선수 전체에서도 그보다 멀리 쳐내고 빠르게 던지는 선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두원은 그걸 아주 쉽게 했다. 두원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리틀 야구 국가대표, 야구 명문 중고등학교, 청소년 대표를 거쳐 고졸 최고 조건으로 명문 프로구단에 입단했다. 두원은 그걸 아주 쉽게 했다. 가만히 있었는데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일권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투수로 전향했다. 잘 치고 잘 달리는 유격수는 흔했다. 아니 대부분의 유격수가 잘 치고 잘 달렸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아주 잘 치거나 아주 잘 달리거나 아주 크지 않으면 눈에 띄기 힘들었다. 일권은 리틀 야구 대표에도 청소년 대표에도 뽑히지 못했다. 달라야 했다. 타고나지 못했다면. 원래 오른손잡이인 일권은 좌완 중에서도 사이드암 투수가 되었다. 매일 천 개씩 공을 던졌다. 그 결과 전국대회 8강에 드는 대학에 진학했고 중위권 프로구단에 입단했다. 그리고 왼팔이 망가졌다.


    4년 먼저 프로구단에 입단한 두원은 데뷔 첫 타석에서 장외 홈런을 날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었다. 구장 역사상 5번째, 신인으로서는 최초였다. 신인상과 타격 3관왕을 석권했다. 구단 최초였다. 1루수 골든글러브를 두원이 아닌 베테랑 선수가 수상하자 큰 논란이 되었다. 올림픽 대표가 되었다. 결승전(그것도 한일전)에서 9회 역전 끝내기 안타를 쳤다.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고 군 면제를 받았다. 이 모든 것이 프로 데뷔 첫해 두원에게 일어난 일이다. 무엇보다 두원은 그걸 아주 쉽게 했다.


    4년 뒤, 두원은 네 번째 올스타전을 치르고 있었다. 일권은 병원에서 TV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일권은 프로 데뷔 첫 해, 첫 출장에서 통증을 느꼈다. 3구를 던졌을 뿐이었다. 4구째, 펜스를 직격하는 적시타를 내주었고 다음 타자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한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8개의 공을 던졌다. 아웃 카운트를 잡지 못했고, 안타 하나, 볼넷 하나를 허용했다. 그나마 2점을 내주었지만 일권의 책임 주자는 아니어서 자책점은 없었다. 일권의 프로 통산 기록이다. 수술 후 재활이 더뎠고, 1년 후 2군 경기에 출전했지만 성적이 나빴다. 통증이 재발했다. 출전 명단보다 부상자 명단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권은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지 못했다. 군대를 다녀왔고, 방출되었다. 

  

    마지막 팀 훈련 날 저녁, 일권은 삼겹살을 마시고 소주를 먹었다. 후식으로 물냉면까지 먹고 잘 잤다. 길고 달았다. 다음 날 베란다에 빨래처럼 걸려 있는 일권을 두원이 걷어 신고했다. 구급차를 타고 가는 내내 힐끔거리던 구급대원이 끝내 물었다. 그 와중에.

    "강두원 선수...죠?"

    두원은 마땅한 표정을 고르다 선택지 가운데 가장 어색한 표정으로 살짝 목례를 했다. 그 와중에. 구급대원은 의식을 잃은 일권을 힐끔 보고 다시 두원을 보았다. 그래요. 알겠어요. 안다고요. 팬서비스는 프로 선수의 중요한 의무이자 역량인 것. 두원은 팬이 원하는 답을 했다. 이번에는 매우 적절한 표정과 함께. 그 와중에. 


    "사촌이에요."


    '두원, 극단적 선택한 사촌 구해' 일권에 대한 두 번째 기사는 그렇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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