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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Nov 15. 2019

해피 벌룬스 데이


    아이는 일곱 번째 생일 선물로 탱탱볼을 사 달라고 했다. 탱탱한 볼 사이 오동통한 입술에서 '탱탱볼'이 탱 하고 튀어나올 때, 진호는 팡 하고 웃음이 터졌다. 행여나 제 꿈을 비웃는다 생각할까 얼른 입을 막고 꾸욱 삼켰지만, 며칠 동안 시도 때도 없이 탱탱볼이 탱 하고 튀어나왔다. 그 '탱'은 전조가 없었고 아무 연관 없는 상황에서 튀어나와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길게 웃음이 그어지고 귀밑에 침이 고였다. 느닷없는 탱탱볼은 귤처럼 싱그러웠다.




    그날의 대화가 떠오른 건, 머릿속에서 탱탱볼 수십 개가 어지럽게 튀어 다니던 때였다. 갑자기 자동차 두 대가 달려와 끼익 하고 멈췄다. 탱탱볼들이 일시에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자동차 두 대만이 남았다. 전조등이 눈부시다. 경유차의 걸걸한 소리와 휘발유차의 낮고 묵직한 소리가 섞여 그럴듯한 화음을 이룬다.   

    "너는 무슨 차가 있으면 좋겠어?"

    집으로 가는 길에 사거리에서 친구가 물었다. 차가 많은데 점멸등만 있어 사람과 차가 어지럽게 뒤엉키는 곳이다. 무슨 차가 있으면 좋겠냐고? 우리 집엔 티코가 있는데......

    "코란도. 진짜 멋져."

    어린 진호는 아버지가 코란도를 볼 때마다 '히야아, 참말로 므찌다. 그쟈?' 하던 걸 떠올렸다. 그러면서 있는 힘을 다해(사실은 티코의 힘이었지만 왠지 아버지가 힘을 쓰는 듯 보였다) 뒤를 쫓았었다.   

    "난 그랜저."

    이런 세상 물정도 모르는 놈. 진호는 친구 녀석이 답답했다.

    "야, 그랜저가 세금이 얼만데에. 기름도 엄청 많이 먹어어."

    엄마는 버스 타고 다니면 되지 차가 무슨 필요냐며, 기름값, 세금, 보험비가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느그 아부지가 얼마나 허세가 심한지를 기회(진호와 둘이 있을 때)가 될 때마다 이야기했다. '느그 아부지처럼 살면 안 된다. 알았제?' 그러면서도 엄마는 은색 티코를 눈이 부시게도 닦아 놓으셨다. 꼭 쿠킹 포일로 만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엄마가 티코를 닦을 때면 '저러다 차가 허옇게 되어 버리면 어쩌나, 아부지가 가만히 안 계실 텐데' 걱정이 되기도 했다. '느그 아부지처럼 살면 안 된다.'를 돌림노래처럼 부르시며 쿠킹 포일 같은 티코를 닦고 또 닦으셨다. 그런데 뭐, 그랜저? 그랜저라고? 으이구, 그러니 어린애 소리를 듣지.

    "팔 거야. 팔아서 소나타 사고 남는 돈은 저축할 거야."

    "응?"

    얘네 집엔 르망이 있었다. 소시지 반찬도 맨날 싸 오고, 가끔 참치 캔을 그냥 싸 올 때도 있었다.

    "차가 그냥 생긴다면 젤로 좋은 차여야지. 그걸 팔면 되니까."

    충격이었다. 이런 생각을 할 줄 알아야 참치 캔을 그냥 싸 올 수 있는 거구나. 진호는 진짜 살 것도 아닌데 유지비를 따져 가며 굴릴 수 있는 차를 고른 자신이 부끄러웠다. 때마침 티코가 지나갔다.

    "근데에, 티코는 꼭 코란도 아들 같지 않냐? 네모난 게."

    그러네, 하며 웃어준 친구가 참 고마웠다.




    ㅡ 정우 생일에 저런 헬륨 풍선 하나 사 주면 좋겠어.

    아내가 인스타그램 사진 하나를 보냈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커다란 풍선을 들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 있는 오솔길이었다. 풍선은 거의 여자 아이만큼 컸다. 자세히 보니 투명한 풍선 안에 색색의 작은 풍선 일고여덟 개가 들어 있었다. '#맑은수목원 #HAPPY_BALLOONS_DAY #가을아_가지마' 같은 해시태그가 달려 있었다. 좋아요 473개.

    ㅡ 선물도 탱탱볼이라는데...... 이거 하나 사 주고 싶어. 탱탱볼이라니 ㅋㅋ 진짜 웃기지 않아? 누굴 닮아 저러나.

    ㅡ 그러게. 귀여운 놈.ㅎ

    누굴 닮아 저럴까. 살짝 뜨끔했지만, 어쨌든 분명한 건 매우 귀엽다는 사실이라고 진호는 생각했다.

    ㅡ 풍선 주제에 엄청 비싸, 근데.

    ㅡ 비싸 보이네, 응.

    ㅡ 2,200원.

    ㅡ 풍선이? (싼데?)

    ㅡ 아니 탱탱볼. 풍선은 45,000원.

    와 이런 도둑놈들,이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내가 김이 새는 걸 바라지는 않았다. 그래도 흔쾌히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진호는 적절한 대답을 고르느라 시간이 걸렸다.

    ㅡ 그래도 엄청 이쁘고 사진도 잘 나올 거야. 무엇보다 정우가 좋아할 거고.

    아내는 최근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ㅡ 한 2주 정도 간대.

    사진이 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다.

    ㅡ 비가 어마어마하네...

    다행히 아내가 '그러네' 했다. 진호는 날씨 덕분에 비교적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11월에 내리는 비 치고는 맹렬했다. 여름에 미처 끝내지 못한 숙제를 뒤늦게 하는 듯 아주 열심이었다.




    집이 팔리지 않았다. 보는 사람들은 꾸준히 있었지만 보고 나면 비슷한 제안을 해 왔다. 이천만 깎읍시다. 경기도 이천도 아니고 이천 원도 아니고 이천만 원을 깎자고? 물론 시세보다 비싸게 내놓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 집을 수리하는 데 얼마나 공(과 돈)을 들였는지 부동산 중계인도 잘 알고 있어서 선뜻 그러자고 못했다. '이천은 좀 심하다아, 그죠?' 하며 슬 떠보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그렇게 공들인 집을 2년도 안 되어 내놓은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아래층이 결정적이었다. 낮과 밤, 새벽 가릴 것 없이 사흘돌이 인터폰, 현관에 쪽지, 우편함에 편지, 심지어 아내에게 문자로까지...... 살지를 못하게 굴었다. 아이가 뛴다 해서 적금을 깨 매트 시공을 했더니, 그래도 진동이 느껴진다고 했다. TV 소리가 시끄럽다고(진호네는 TV가 없다), 쇠구슬 소리가 들린다고(진호네가 자고 있던 새벽이었다), 손님 왔냐고(방금 벨 누르고 신발을 채 벗기 전이었다), 샤워는 아홉 시 전에 해 달라고, 너무 많이 걷지 말라고(무릎 걱정해 주시는 건가), 이사라도 가면 안 되냐고...... 집에 있기가 불안하고 무서울 정도였지만 참고 참고 또 참았다. 오랫동안 계획하고 조금 무리해서까지 이곳으로 이사를 왔었다.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는데, 아이가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눈치를 볼 때, 아이가 뒤꿈치를 들고 가서 침대에 오를 때, 부부는 마음을 정했다. 손해가 컸지만 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이 팔리지 않았다. 결국 부동산에 이야기해서 집을 다시 거두었다. 그날 아내는 조금 울었다.       




    영상통화다.

    "아빠, 어디야?"

    "으응, 아빠 여기 고깃집이야. 삼겹살 먹어."

    "응? 뭐라고? 잘 안 들려?"

    나와서 받아아! 화면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아내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아들 생일에 회식이라니, 화가 날만 하다. 아, 하필 왜 가운데 앉았을까. 나가려면 어느 쪽으로든 서너명은 일어나야 한다. 오른쪽은 부장님, 왼쪽은 최 과장인데, 최 과장 옆에 대표님. 오른쪽으로 가는 편이 낫겠다.

    "제수씨, 안녀엉!"

    반쯤 일어났을 때 부장이 진호의 스마트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내는 아예 화면 밖으로 나갔고, 정우만 꿈뻑꿈뻑.

    "정우야, 김 부장님이야. 전에 예식장에서, 기억 안 나? 용돈도 주셨잖아."

    "정호야아아, 아저씨가 만 오천 원 줬었지이? 지갑에 그거밖에 없어 가지고. 촤하하하하! 담엔 더 많이 줄게에. 아이구우 그놈 자알 생겼네."

    정우가 엄마 뒤로 숨었다. 엄마는 화면 밖에 있다. 화면에는 (아내가 직접 고른) 짙은 초록색 벽지와 하얀 천장만이 절반씩 보였다. 초록색 벽지가 말했다.

    "아빠, 탱탱볼은?"

    '탱탱볼... 풍선...' 진호는 허리를 완전히 펴고 일어섰다. 성큼 성큼 큰 걸음으로 벽과 어깨들을 짚고 테이블 끝까지 나왔다. 백팩을 메고 비슷비슷한 수십 켤레의 기능성 남성화 중 제것을 골라 신고 가게를 나왔다. 그 일련의 과정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모두가 바라만 볼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박 차장... 뭐냐아? 뭐라고 하고 간 거야?"

    "탱탱한 풍선이 어쩌고 하신 거 같은데요?"

    뛴다. 꿀렁꿀렁, 소화 덜 된 돼지고기가 어쩌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겠다 싶게 뛰고 있다. 9시 48분.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야 한다. 진호는 뛰고 또 뛰었다.




    "정우야아아! 아빠야아아아!"

    '이 시간에 비밀번호 안 누르고 뭐하는 짓이야.' 아내는 기가 찼다. 누가(특히 아래층) 들을라 얼른 현관문을 열었다. 세상에......

    "우와아아."

    정우는 매우 정확하게 '우와아아' 하고 소리내며 입을 벌렸고, 아내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다만 둘 다 입을 똑같이 벌린 채였다.

    "새앵일 추우카 합니다아."

    진호는 현관 앞에 서서 노래를 시작했다. 헬륨 풍선 서른 개쯤을 오른손에 들고, 탱탱볼이 스무 개도 넘게 든 자루 같은 걸 어깨에 메고 그 입구를 왼손으로 말아쥐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아!"

    아내의 손을 진호는 취권을 하듯 부드럽고 유연하게 뿌리치며 노래를 이어갔다.

    "새앵일 추우카 합니다아. 사랑하아느은 우리이 정우우,"

    그 순간 벌컥! 문을 열고 아래층 여자가 나왔다. 미간에 주름을 깊이 파고, 단전에 잔뜩 힘을 모은 채였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일 추우카아 합니이, 다아아!"

    604호(진호네 앞집) 대학생 삼촌, 703호(진호네 윗집) 초등학교 5학년 형아와 엄마, 704호 눈사람 할아버지와 할머니, 504호 캠핑카 아저씨까지. 모두 현관 앞에 나와 정우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를 칠 때 아래층 여자는 쾅! 문을 닫고 들어갔다. 진호는 두 팔을 높이 들어 인사를 했다. 그 바람에 탱탱볼이 쏟아졌다. 그걸 잡으려다 풍선이 날아갔다.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탱탱볼과 풍선을 잡으려 이리저리 뛰었다.  

    탱 탱 탱 탱 우 와 아 하 하 호 호 하 




    탱―

    눈을 떴다. 아침이다. 라기보다는 오전이다. 조용하다. 조용하니 불안하다.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쪽지 같은 건 붙어 있지 않았다. 진호는 코로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몇 발 더 나가 계단 쪽으로 갔다. 위를 보니 미처 수습하지 못한 풍선이 한 개 비스듬한 천장 제일 높은 구석에 걸려 있었다. 아래를 보니 지하로 통하는 계단에 탱탱볼이 두 개 있었다. 보라색 풍선 한 개와 노란색, 자주색 탱탱볼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거실에 툭 던졌다. 탱탱볼은 투두탱팅 하며 거실 바닥을 가득 채운 탱탱볼들 틈으로 가 자리를 잡았고, 풍선은 천장에서 유일하게 풍선이 없는 틈을 마침내 매웠다.

    "정우야아, 여보오!"

    아, 친구 태현이네 놀러간다고 했었지. 진호는 냉동밥 하나를 전자렌지에 돌렸다. 비비고 육계장을 뜯어 냄비에 붓고 불을 켰다. 그리고 라디오를 틀었다. 자주 들었지만 제목은 모르는데 후렴은 정확히 알고 있는 팝송이 나왔다. 버스(verse) 부분을 조용히 흥얼거리다 후렴을 힘차게 따라 불렀다. 기침을 세 번 하고 물을 따라 마셨다. 그 사이 육계장이 끓었다. 밥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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