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기 Apr 09. 2021

프롤로그

모든 게 소설


    '모든 게 소설'이라니, 이보단 더한 선동이 있을까? 모든 게 허구, 즉 거짓이라는 주장을 돌려 말한 것이잖아! 당황한 표정이군. 어이 어이, 벌써 그렇게 들켜버리지 말라고, 재미없게.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예전에 '국문학 개론'을 들은 적이 있지. 국문학을 전공한 건 아니고, 그녀가 정말 예뻤거든. 국문과였는데, 수지였던가...... 20년도 넘었는데 어제 일처럼 생생하군. 암튼, 소설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허구성이지. 허구는 사실이 아닌 일을 꾸며낸 것, 즉 소설은 사실이 아닌 꾸며낸 이야기라는 거지. 그러므로 '모든 게 소설'이라는 말은 국가도 정부도 사회도 체제도, 다 부정하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란 말이다. 왜 그런 말을 했지? 누굴 비난하려 했지? 혁명이라도 일으키고 싶었나? 국가를 전복하고 권력을 잡고 싶었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게 가능할 리도 없고요. 저는 그저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러.니.까.모.든.게.소.설. 이라고 비난하고 선동한 것 아니냐고.

    말씀하신 대로 허구성은 소설의 중요한 특성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중요한 특성이 있습니다. '진실성'입니다. 소설은 허구, 즉 꾸며낸 이야기지만 그것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삶, 세상에 대한 진실입니다.

    이봐, 어디서 지금 가르치려 드는 거야? 허튼소리 말고 사실대로 말하시지.

    사실이 아니라고 진실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소설을 통해 진실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제야 불기 시작하는군. 그래 그 진실이라는 게 뭔데? 현실을 부정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거 아닌가? 이렇게 불온할 수가! 자네가 말하는 진실이 대체 뭐냐고? 


    아내와 넷플릭스 보기, 보다가 '라면을 끓여야 하지 않겠어?'라는 데 동의하는 눈동자와 마주하기,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잠든 아이의 동그란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 아이의 끝내기 홈런, VIBE가 끝내주는 음악을 추천해 주는 날, 그날 보았던 아기 고양이의 춤, 유난히 잘 맞았던 합주, 유난히 안 맞았던 합주 뒤의 소맥, 방금 막 완성된 기획서, 그리고......

    그리고?

    엄마. 

    아, 엄마...... 아니지, 아니야. 과연 듣던 대로 교활하군. 깜빡 속을 뻔했어. 그래서, 끝까지 써 보겠다는 건가?


    끝까지 써 보겠습니다.  





이전 01화 작가 소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