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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Apr 09. 2021

작가 소개

본명 박만성


    대기만성법이 통과되자 아내는 울었다. 


    ― 대기만성(大器晩成)은 노자의 도덕경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글자를 잘못 기입하여 생겨난 말이다. 원래는 대기면성(大器免成)으로 써야 하며 '진정한 큰 그릇은 완성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기만성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말이며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 또한 근거가 없는 낭설이라 할 수 있다.   


    세계 노자 기구(WLO)의 발표가 있었다. 다음 날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내가 그러하다'는 근거 없는 낭설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부당한 이득을 취한 '만성(晩成)'들을 처벌해 달라.


    사흘 만에 40만 명 이상이 이 청원에 참여했다. 그리고 '만성(晩成)'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을 사기죄로 처벌한다는 대기만성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아내는 "그래도 언젠간 되겠지 하고 데리고 살았는데 이제 희망이 없다." 하며 울었다. 억울함보다는 억울함이 풀린 데서 오는 회한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박만성은 기분 탓이겠지 했다.


    전국의 '만성'들이 분연히 일어났다. 대기만성단이 조직되었다. 곧바로 성명을 냈다. 


    ― 역사상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법이다. 당장 철회하고 사과하라. 일주일 뒤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사상 초유의 무지하고 수치스러운 결정에 대해 강력히 규탄할 것이다.  


    이에 정부는 일주일 내 개명하는 자는 면죄한다고 발표했다. 휘발유를 들이부은 것이다. 전국의 대기만성단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순신 장군의 말씀까지 인용되었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만성들은 필사즉생의 의지를 다졌다.


    집회 당일 12명이 모였다. 최후의 만성들이었다. 우리에겐 아직 12명의 만성이 있는 것이다! 계획을 바꿔 명동성당으로 들어갔다. 이동 중 3명이 체포되어 9명이 남았다. 명동성당에도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정부는 시시각각 포위망을 좁혀 들어왔고, 만성 스님이 종일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는 바람에 신도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탈출을 감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성당을 둘러싼 포위망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이때 박만성이 나섰다. 자신이 미끼가 되겠다고 했다. 그 틈으로 나머지가 탈출하는 것이다. 가능한 유일한 대안이었다. 이틀 뒤 새벽에 결행하기로 했다. 만성들은 부둥켜안고 피눈물을 흘렸다. 만성 스님은 더욱 거세게 염불을 했다. 


    고요했다. 어젯밤 차벽이 철수했고 포위망도 허술했다. 박만성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만성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다! 박만성이 뛰쳐나갔다. 일순 바깥이 소란해졌다. 모든 소리와 불빛이 박만성을 쫓았다. 나머지 만성들은 반대편으로, 고요와 암흑 속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박만성을 생각하며 달렸다. 피맛이 났다.


    만성들은 모두 잡혔다. 채 명동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대기만성법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적용되었다. 이번 사태 해결에 가장 큰 공을 올린 박만성, 아니 박삼성에게 국무총리 표창이 수여되었다. 박삼성은 특채로 삼성전자 미래절약실에 입사했다(몇 달 만에 퇴사했다. 사직서에는 개인 사유로 기록되었지만, 역량 부족, 근무 태만으로 해고되었다는 것이 정설).


    대기만성법은 이듬해 조용히 사라졌다. 관련 자료도 모두 폐기되어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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