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도 나름의 소명이 있겠지만, 굳이 덤을 보태자면 그들은 비유로 쓰이려고 태어나는 게 아닌가 한다. 종이에 이런저런 잡념을 적는 내 모습은 온갖 분비물을 쏟아내는 벌레들과 닮았다. 다만 이것이 독인지 꿀인지, 아니면 아주 사소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종류의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내 글이 만약 실이라면’이라는 상상을 할 때도 있다. 여기 적힌 글들이 아담한 고치나 끈적한 거미집이 되는 것이다. 나는 탈태를 기다리는 벌레가 되기도 하고, 아니면 제집에 걸려 우스꽝스럽게 발버둥 치는 거미가 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곧장 흥미를 잃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