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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골 May 30. 2023

거짓 없는 소설

15


 오랜만에 밭에 . 내 가족이 꾸리는 이 밭은 정겨운 휴식의 장소다. 몇 가지 작물과 몇 가지 꽃을 보았다. 몇 가지 벌레도 보았고, 호기심이 동해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몇 가지 개도 보았다. 옆밭에는 조그만 닭장이 들어섰다. 토실한 닭이 열 마리 남짓 보인다. 까마귀가 가끔 알을 훔쳐간다던데, 지금 보이는 삼엄한 철장이 생기기 전인지 후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송아지 잡아먹듯 까마귀도 계란 잡아먹는 건 생각다. 닭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길래, 나도 한참이나 그 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새끼 개가 실금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비가 새기 시작하더니, 멀칭 해놓은 검은 비늘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내 머리 팔뚝으로 떨어지는 비를 맞아보았는데 기분 나쁠 듯 말듯한 보드라운 터치가 느껴졌다. 귀로 들리는 우렁한 소리랑은 다르게 아주 미약해서 조금만 다른 생각을 품으면 의식에서 사라질 것만 같은 그런 잔잔한 빗발이다. 내 감수성은 저 검은 비닐만도 못한 것 같다.


 침묵하고 있다. 염소 갈비를 전골 끓여 먹고 있는데 대각선 건너편에 앉은 어느 중년부부가 내내 침묵하고 있다. 내가 밖을 잘 돌아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밖에서 중년 부부를 만날 때면 종종 이런 모습을 본다. 얼마 전 경치 좋은 강변 카페에서도 비슷한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카페에서 커피도 대화도 아닌, 길고 긴 침묵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침묵에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대화의 묘리가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은 책으로도, 관찰로도 알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나는 책이나 관찰로 알 수 있는 것만 안다. 다만 상상할 수 있을 뿐인데 돌개바람처럼 생각이 헛헛하게 돌다 이내 흩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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