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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골 Feb 05. 2023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니체 읽기 AZ 1


 차라투스트라는 ‘얼룩소’라고 불리는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흑과 백, 선과 악 이분 이데올로기가 점령한 도시다. 모든 가치가 분류되고 정립되어 새로운 가치 창조가 없는 도시다.


 차라투스트라는 세 변화에 대하여 말한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아이로 상승하는지.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닌 억센 정신, 짐을 무던히도 지는 정신에게는 무거운 짐이 허다하다. 정신의 강인함은 무거운 짐을, 더없이 무거운 짐을 요구한다.”

 낙타에게는 도덕과 공포가 있다. 낙타에게는 해야 할 것 같은 일이 있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일이 있다.

 다만 낙타에겐 억센 정신이 있어서 그는 성실할 수 있다.


 이것이 정신의 첫 번째 단계다.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이 단계에조차 올라오지 않는 존재를 차라투스트라는 취급하지 않는다.


 낙타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낙타가 감수해야 하는 짐에는 (1) 자신의 잠재력을 봉인하는 일, (2) 성취해 낸 것을 빼앗기는 일, (3) 좋은 평가를 받으려 눈치 보는 일, (4) 자기 학대, (5) 자신의 가치를 못 알아보는 사람들과 사귀는 일, (6) 하찮은 진리에 목매는 일, (7) 파멸을 그저 기다리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낙타는 사자로 나아간다.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 그것을 사자의 힘은 해낸다.”

 사자는 주어진 의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내린 명령을 따른다. 자유를 얻어 주인이 된 것이다. 사자는 자기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사자는 무거운 짐을 지는 것과 새로운 창조를 하는 것 사이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사자는 이제 ‘거대한 용’과 맞서야 한다.

“용은 “모든 사물의 가치는 내게서 찬란하게 빛난다”고 거들먹거린다.”
“가치는 이미 모두 창조되어 있다. 창조된 일체의 가치, 내가 바로 그것이다.”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가 그 거대한 용의 이름이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은 “나는 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용은 은연중 우리에게 주입된 도덕 관념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더 이상의 가치 창조를 막는 훼방꾼이다.


 용을 도륙한 사자는 아이로 나아간다.

“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아이는 목적 없는 놀이를 긍정하고, 패배와 승리의 기억을 잊을 수 있는 능력을 잃지 않은 존재다. 패배의 쓰라림에 도망가거나 과거의 승리에 취해 나자빠지지 않는다. 제 힘으로 새로운 놀이를 시작하고 순수하게 몰입한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된다.”

 정신은 이제 남의 가치를 쫓지 않는다.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자신의 힘을 추구하고, 이로써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간다.




 우리에게 더 친숙한 예로 바꾸자면 낙타는 소, 사자는 범쯤 되겠다. 사람에 더 가깝게 말하자면, 하인과 주인이 되겠고. 하인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상승의 첫 단계요, 강인한 정신이다. 우리는 먼저 하인의 근성을 배워야 한다. 그것 보다 못한 것은 인간 이하의 것, 천것이다. 천박한 사람이 아니라 천한 '것'이다.


 정신이 사자가 되는 것은 분명 하나의 승리다. 그러나 거대한 용과 싸우지 않는다면 낙타를 사냥하는 데 제 에너지를 낭비하는 망나니가 될지도 모른다.


 아이는 초인을 상징한다.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의 운동을 지속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미끄러질 수 있는데, 낙타와 사자와 아이는 단계의 구분이지 영구적인 계급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의 위상은 인간 정신이 계단을 밟고 올라가 잠시 점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미끄러운 계단을.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00.

원제: Also sprach Zarathustra (1885)


방송

김준산 외, 〈니체 강독 2편〉, 《두 남자의 철학 수다》.

https://www.podbbang.com/channels/1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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