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덕에 대한 설로 젊은이들의 환심을 산 현자를 찾아간다.
현자는 이렇게 말한다.
“잠에 대한 경의와 겸허! 이것이 으뜸가는 일이다! 그러니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사람 모두를 멀리하라!”
현자는 '깊은 잠'을 위한 조언을 한다. 그것을 위해 하루 동안 열 번 자신을 극복하고, 열 번 자신과 화해하고, 열 개의 진리를 찾아내야 하고, 열 번 웃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잠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은 온갖 덕을 다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잡다한 덕을 믿고 미리 갖추어 놓아야 한다. 그것들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은 단잠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알고 있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이들 덕으로 하여금 제때에 잠자리에 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어떠한 덕이라도 깊게 추구하다 보면 다른 덕을 괴롭힐 수 있으니 적당히 하는 게 좋다.
현자는 또 이웃과 화평하고 관리들에게 복종할 것, 좋은 평판과 얼마간의 재물과 얼마간의 인정에 행복할 수 있게 가난한 마음을 가질 것을 권한다. 현자의 이론은 하루를 어찌저찌 보내고 쉽게 잠에 빠져드는 데 유용하다. 눈길을 끄는 짧은 영상 넘쳐나는 현대는 현자의 가르침을 따르기 아주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마흔 개나 되는 사상을 갖고 있는 이 현자는 바보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루에 정력을 쏟을 데가 40 군데라면 한 군데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얼마나 조촐하겠는가? 과업이 뚫린 자리에서 쏟아지는 공허를 막기 위해선 조약돌이 많이도 필요하다.
“그가 가르치고 있는 지혜는 이것이니,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깨어있는 동안 에너지를 모두 소비해야 한다는 것에 차라투스트라는 동의한다. 다만 ‘깊은 잠’을 위해 ‘양귀비꽃과 같은 덕’을 취하는 것은 낙타의 기술이다. 단잠은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회복을 위한 것이다. 충전을 위한 중간 정거장일 뿐이다
“여기 잠이 쏟아지고 있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곧 꾸벅꾸벅 졸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졸린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책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00.
원제: Also sprach Zarathustra (1885)
방송
김준산 외, 〈니체 강독 2편〉, 《두 남자의 철학 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