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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골 Mar 21. 2023

배후 세계를 신봉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니체 읽기 AZ 3


“자신의 고뇌를 외면함으로써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고뇌하고 있는 자에게는 도취적 즐거움이다. 도취적 즐거움과 자기 상실, 세계는 한때 그렇게 생각되었다.”

 이 땅에 서있는 ‘나’에서 벗어나 저 어딘가에 있는 모순 없고 완전한 ‘나’를 상상하는 행위에서 사람들은 도취적 즐거움을 느낀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도 한때 그러한 망상을 품었었다고 고백한다.


“아, 형제들이여, 내가 지어낸 이 신은 신이 모두 그리하듯이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이자 광기였다!”

 그러나 지금의 차라투스트라는 그것이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이었음을 인식한다. 고유하게 존재하는 신을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만의 신을 창조하기에, 그런 신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 또한 지적한다.


“배후 세계라는 것을 꾸며낸 것은 고뇌와 무능력, 그리고 더없이 극심하게 고뇌하는 자만이 경험하는 행복에 대한 저 덧없는 망상이었다.”
“단 한 번의 도약, 죽음의 도약으로 끝을 내려는 피로감,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바라지 못하는 저 가련하고 무지한 피로감. 그와 같은 것이 온갖 신과 배후 세계라는 것을 꾸며낸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진단하기에 사람들이 배후 세계를 꾸며내는 이유는 아주 쉬운 방법으로 한 줌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이다. 도약을 바라는 사람들이 삶에서는 도무지 그것을 찾을 수 없어 죽음을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아니 잘 모르기에 오히려 더 쉽게 그것이 하나의 도약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다가 망상에 이르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걸어온 이 길을 의욕할 것을, 이 길을 반길 것을, 그리하여 병든 자와 죽어가는 자처럼 더 이상 이 길에서 벗어나 몰래 달아나지 말 것을!”

 차라투스트라는 망상을 품은 사람들을 ‘병든 자’에 비유한다. 그러나 이것이 저주 섞인 비난인 것은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병든 자들에게 너그럽다. 진정, 그는 저들 나름의 위로와 배은망덕을 두고 노여워하지 않는다. 다만 저들이 병으로부터 건강을 되찾는 자, 자신을 극복하는 자가 되어 보다 높은 신체를 창조하기를 바랄 뿐이다!”

 왜냐하면 병든 몸은 건강한 몸으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제들이여, 차라리 건강한 신체에서 울려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라. 보다 정직하며 보다 순결한 음성은 그것이니.”

 차라투스트라는 몸에 직접적으로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자기 자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신체가 건강한 신체다. 망상 속 구원자가 내려주는 도약의 동아줄을 가만 앉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두 다리로 매일 계단을 오르는 훈련된 신체가 건강한 신체다. 가끔 감기에 걸리더라도 며칠 후에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아침에 명랑하게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신체가 건강한 신체다.




 김준산 씨가 보기에 니체 철학에서 ‘신성’ 자체 나쁜 것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극진히 존경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성 추구를 통해 상승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제대로 존경한다는 것은 가르침이 주는 도취적 즐거움을 넘어 그처럼 살아가기를 기꺼이 의욕하는 것까지 나아가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다. 피로를 부추기는 사회에서는 그것을 위한 에너지를 남겨두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한 신체를 먼저 회복하라는 조언은 지금도 여전히 타당하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00.

원제: Also sprach Zarathustra (1885)


방송

김준산 외, 〈니체 강독 2편〉, 《두 남자의 철학 수다》.

https://www.podbbang.com/channels/1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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