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이

봄비가 스며든 틈, 그 사이 우리는?

by 두부

5화.


주말 아침, 포근한 봄비가 마당을 적셨다.

대청마루 끝에 앉아, 그저 멍하니 빗줄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바깥에서 어슬렁거리는 인기척에 이어

누군가가 헛기침을 했다.

이 시간에 누가…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세요?”


몸을 일으켜 마당으로 나가자,

대문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오야, 일어나 있었어?”


이현이었다.

문을 열자, 그는 품에 항아리 하나를 안고 서 있었다.


“이게 다 뭐야?”

“너, 우리 집 식혜 좋아하잖아.”

“이걸 다 들고 온 거야?

어머니 아버지 아시면 어쩌려고?”

“또 있으니까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 말과 함께 번진 미소에

가슴이 ‘쿡’ 하고 울렸다.


우리는 마루에 나란히 앉아

그가 가져온 식혜를 나눠 마셨다.


“이거 주려고, 비 오는데 온 거야?”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저 입을 다문 채,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단오야.”


이현이 나지막이 불렀다.

그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쓰였다.

그 뒤에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생각이 뒤섞이고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요즘... 힘들지?”


무슨 뜻인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침부터 비를 뚫고 갑작스레 찾아온 이현.

그 진지한 얼굴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몰라

‘흡’— 숨을 들이마셨다.


“넌, 그 학교 갈 생각도 없었잖아.

친구들 다 두고, 나 따라서 멀리 있는 학교에 다니게 하고…

정말 미안해.”


이현의 사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날아왔다.


“그래서 네가 나한테 말도 안 하고 툴툴댔던 거, 다 알아.

그거, 내 탓이지.”


이현은 전혀 잘못 짚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혼자서 얼마나 끙끙 앓았을까.

그 아이의 성격을 아는 나는,

그 모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몸을 이현에게 기울여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성이현, 아니야. 그런 거.”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건 내가 선택한 거야.

너랑 같은 학교 가고 싶어서,

내가 그렇게 정한 거라고.”


그 말에,

이현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안도한 듯한 얼굴.

그러나 그 안에는—

스치듯 지나가는 서운함의 기색도 담겨 있었다.


길 잃은 강아지처럼,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

지금껏 본 적 없어 낯설었다.


마치—

‘그럼 왜 그동안 날 그렇게 밀어냈어?’

하고 묻는 것 같았다.


가슴 안쪽을 누군가 쥐어짠 듯해서

입술을 꾹 눌렀다.


이현이 내게 저런 눈빛을 보이다니…

그게, 아팠다.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

요즘, 좀 날카롭게 굴었지?

새로운 환경이라, 나도 모르게 예민해졌나 봐.”


내가 웃어 보이자,

그제야 이현도 따라 웃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오랜만에 서로 마주 보며

어린 시절처럼, 오래도록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대화 사이사이에도

내 가슴은 계속 답답하게 조여왔다.


‘우리는… 무슨 사이지?’


입가에만 맴돌던 그 말을

끝내 내뱉지 못했다.



다음 날 등교 시간,

문을 나서기 전

할머니가 떡집에서 사 온 꿀떡 하나를 챙겼다.


대문 앞에 서 있던 이현이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나는 그 떡을 말없이

그의 입에 쑥 넣어줬다.


“달달하니, 맛있지?”


이현은 오물오물거리며

환하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의 긴 대화 덕분인지,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묘한 틈이

조금은 메워진 듯했다.


이현의 걸음도, 표정도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너네 반도 미술 프로젝트 하지?”

“응, 그 대형 과제?”

“누구랑 하기로 했어?”


대답이, 바로 안 나왔다.
이름만 말하면 되는 거였는데,

왜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뺨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런 나의 머리 위에

이현이 손을 가볍게 얹었다.


“괜히 신경 쓰이네…

같은 반이었으면 나랑 했을 텐데.”


그 말에,

내가 왜 숨기고 있는지

나조차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 윤기라는 애야.”

“윤기?”


이현이 눈썹을 살짝 치켜들며 나를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손사래를 쳤다.


“걔가 먼저 같이 하자고 해서…

그냥, 거절하기가 좀 그랬어.”


“알았어.”


이현은 얼굴을 풀고,

내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왜 그렇게 긴장해?

어려운 거 있음 말해. 내가 도와줄게.”

“응, 알았어.”


… 우린 어떤 사이야?


그 물음이 다시 한번,

입안에 맴돌았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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