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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한나 Jun 09. 2022

23, 가진 거라곤 젊음뿐인 이 작가가 살아남는 법 2

2부 본격적으로 출판 자금 모으기

1부: 독립출판, 무모하게 홍보하기


'책을 팔기 위해' '책으로 돈을 번다'는 건 어쩌면 조금은 건방진 생각이었을 지도 모른다. 펀딩 기간이 약 2주 정도 남은 날, 나는 펀딩으로 자금을 확충하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내려놓고 말았다.

증가 추이도 점점 완만해지고 있고, 그럴듯한 유료 광고도 하지 못하는 나의 실정으로, 더 애써 봤자 겨우 한 두 명 늘어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한 두명도 굉장히 소중하고 감사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조금 방향을 틀어, 일단은 충분히 찍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자', 그리고 그 이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더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나아갔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자,  어떻게 보면 타협한 것이다. (이번만큼은 특히나 더) 타협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 당연한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렇게 10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나는 홍보에 몰입하던 시간과 돈을 '아르바이트'로 집중하게 되었다.


2부에서는 내가 어떻게 돈을 모으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겠다. 1부 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내용들이다. 그 전에 최후의 발악으로 아래 펀딩링크를 공유하겠다. 6/13일 종료로 약 4일 정도 남았으니 더 늦기전에 꼭 한 번 확인해주길 바란다.


0. 벌어야 하는 돈


출판을 위해 필요한 돈

펀딩 수수료: 약 30만원 (펀딩금의 14%)

택배 비용: 약 50만원

인쇄 비용: 약 360만원 (대량 옵셋방식, 500권 기준)


총: - 440만원

내가 가진 돈 (5/24 기준)

펀딩 금액: 약 200만원

현금: 약 80만원

계좌: 약 50만원

 

총: +330만원


더 벌어야 하는 돈 : 최소 110만원

그러니까, 5/24~6/13까지, 약 3주 남은 기간 동안 최소 110만원을 벌어야 하는 실정이었다. 변변찮은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는 내게 110만원의 벽은 굉장히 높고 거대했다. 하지만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묘한 자신감이 생겨서, 오히려 홍보에 목 멜 때 보다 더욱 여유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 자신감의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상하차 아르바이트 일급이 18만원이고(알바몬에서 보이는 최대 급여 기준), 18만원으로 110만원을 모으려면 약 6~7번을 하면 된다. 21일 동안 상하차 6번! 해볼만 한 걸!?


1. 상하차 아르바이트


결론:

gg...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하차 만큼 단기적으로 확실하게 벌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이 들 때 바로 시작하기로 했다. 근데... 겁나 힘들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두.


1. 꼰대 사수를 만나면 정말 X같다.

40~50대 아저씨가 야!!! 이러면서 하루에 10번도 넘게 꽥꽥 소리지르신다. '형이 뭐 이런 것까지 다 설명해줘야겠어?' '형이 사회생활을 알려줄게~' '형이~' '형이~' 말마다 '형'이란 말을 붙인다. 그런 오글거리는 포인트는 넘어가더라도, 인상 팍 쓰면서 시도 때도 없이 소리치는 게 너무 불쾌했다.

아무리 그분이 경험자고, 나이가 많다하더라도 다 같이 땀 흘리며 열심히 하는 입장으로서 그런 하대를 받으니 기분이 너무 나빴다. 겉으로라도 웃어주며 반응하다가도, 점점 표정이 굳어갔다. 그러다가 조금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표정 굳히니까 조금 부드러운 말투로 변하시는 것 같긴 하더라.

그런 사수분과 함께 일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2. 피곤+허리 통증의 FUCKING 콜라보레이션

21시부터 8시까지 새벽 일정으로 진행되다 보니 너무 지치더라. 그래도 새벽 3~4시까진 버틸만했다. 근데 딱 4시가 넘어가는 지점부터 시간이 도저히 가지 않았다. 죽을 것 같았다. 핫식스 2개로 버텨내던 나의 피로도 어느 새 한계를 마주했다. 눈이 조금씩 감기기 시작했다.

가장 괴로운 건 허리였다. 허리가 태풍을 마주한 나무처럼 휘청휘청이다 뽑힐 것만 같았다... 정말 기적처럼 모든 일이 끝나고, 대구에 도착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자동으로 괴상한 모양으로 구부러졌다. 그리고 그 통증은 약 3일은 이어졌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피로가 완전히 풀렸다.

애증의 상하차 인증샷...
집에 돌아오니...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ㅋㅋㅋ 30분 기다려도 안 끝나길래 16층을 걸어올라갔다... 세상이 나를 몰카하는 건가 싶었다.

3. 네? 시급이... 최저보다 낮은데요...?

분명 알바몬에서는 일급이 18만원이라 했는데, 그건 '최대 일급'이었다. 입금된 금액은 14만원 조금 덜 되는 금액... 11시간 쉼없이 죽도록 일했는데 14만원이라니... 대구에서 작업장까지 이동시간 왕복 6~8시간을 고려했을 때 18시간 당 14만원, 즉 최저 시급도 안나오는 꼴인 것이다. 그 계산이 서자마자 엄~청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적으로 매우 고되어 매일 할 수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힘들며, 페이까지 적다니!

이건 더 이상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판단이 들자마자 바로 다음 일자리를 생각해보았다.


정리: 110 - 14(상하차) = 잔여 금액 : 96

2. 성인 영어 과외


더 좋은 길이 있는데, 자신의 몸을 해치면서까지 그 길을 고수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특히 나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바로 미련없이 관두고 다음 일자리를 찾았다. 그렇게 찾은 다음 일자리는 바로 영어 과외다.

1. 과외, 어떻게 구했나?

나는 길이라면 어떻게든 만들고야 마는 사람이다. 그런 무모한 시도는 이미 많이 해봤기에 이젠 더이상 어렵지지 않다.

상하차가 끝난 당일 저녁부터 인터넷을 싹 다 뒤졌다. 당근 마켓부터 인터넷 카페, 밴드 등등... 각종 커뮤니티에 글도 수없이 썼다. 입시 과외는 이미 레드오션으로 경쟁자들이 많다. 그래서 일찌감치 내려놓았다. 그럼 POOL이 크고, 블루 오션이며, '1:1 과외'의 특성이 꼭 필요한 타겟이 누구일까- 고민했다. 바로, 성인 왕초보-들이었다.

왕초보라 함은 알파벳도 모르는 분들을 일컫는다. 생각보다 그런 분들이 엄청 많다. 그분들은 학원의 정규 수업조차 따라오기 어렵기에, 1:1로 학생 진도에 맞춰 맞춤형으로 진행되는 과외가 필수적이다. 또한 성인이므로, 과외비를 지불하는 것도 크게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이미 입시 과외는 물론, 성인 과외까지 지도해 본 유경험자이므로 학생을 구하는 데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다. 월 30만원의 비교적 저렴한 과외료 역시 큰 메리트였다.


2. 과외 후기

현재 기존에 하고 있던 중학생 과외를 제외하고, 2명의 성인 과외생을 추가로 받게 되었다. 주급으로 8만원씩, 그러니까 16만원씩 버는 셈이다.

두 분 다 알파벳을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는 영어 쌩초짜시지만 온 마음으로 소통하며, 온 정성으로 대하다 보니 조금씩 열정이 기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첫 주에 비해서 실력도 조금씩 늘고 있다! 보람도 있고, 성과도 좋은 일이라니...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상하차 알바처럼 무모할 때도 있지만, 이번처름 조금 더 현명할 필요도 있단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렇게 주 16 만원씩 받게 되면, 3주 뒤엔 48만원이 모이게 된다!


정리: 110 - 14(상하차)  - 48(과외)= 잔여 금액 : 48만원

3. 투표 사무원
방역복을 입고 피곤에 찌들어 있는 나의 모습

1. 투표 사무원, 어떻게 되었나?

6월 1일은 제 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아주 운좋게 투표 사무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투표 사무원 지원율이 낮기도 했거니와, 어머니의 지인분이 관련 직무에 있는 덕이었다.


2. 투표 사무원 후기

새벽 5시까지 출근이라 4시 반에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하고 근무지로 이동했다. 전날 1시쯤에 겨우 잠들 수 있었는데 겨우 3시간 남짓 잔 것이다.(분명 11시 반쯤 누웠는데 불면증이 가끔씩 도진다.) 5시에 가서 이것저것 준비를 마친 뒤, 명단 대조 임무를 부여받고 사람들이 오기를 대기했다.

사실 업무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신원확인과 명단을 대조하고, 사인을 받고, 간단히 안내를 해주는 일, 그것도 앉아서 했다. 하지만 5시부터 아침도 못 먹고 가만히 있다보니 너무 피곤하고 배고팠다. 4시간 주기로 찾아오는 점심시간이 너무 반가웠다. 새벽 5시부터 오후 8시까지... 약 15시간 동안 너무 지겹고 졸리고 허리가 아파왔으며, 옆에 앉은 다른 사무원과도 그리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서 힘들었다.

나는 내가 사회생활을 못하는 건가,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하는 생각들이 들 정도였다.


3. 추가로 드는 걱정들

나는 단 하루만 이들과 붙어있지만, 아버지와 같은 직장인들은 매일 9시간(9 to 6) 넘게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붙어지낸다. 그런 직장 생활이 얼마나 힘들까, 전날 봤던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겹쳐 떠올랐다. 그런 힘든 일상을 언젠가 내가 겪게 될 텐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내가 창업을 하려고 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런 생활에서 도피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자기비판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4. 생각보다 훨씬 많았던 일급

다음 날 계좌로 일급이 들어왔다. 10만원 남짓 예상했는데 웬걸... 계좌를 확인하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려 31만원! 그날은 정말 너무 행복해서 아무 죄책감 없이 1리터짜리 아메리카노 (무려 2,500원)를 사먹었다.


-식비 21,000원 (7,000원 씩 3끼)
-근무 100,000원
-사전 교육 참여 급여 40,000원
-방역복 착용 급여 150,000원


아놔, 이 정도로 급여가 들어오면 몇 번이고 일할 수 있다. 그것도 모든 사람과 하하호호 웃으면서... 이게 직장인의 행복이 아닐까-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ㅋㅋㅋㅋ (우디르급 태세전환)


정리: 110 - 14(상하차)  - 48(과외) -31(투표 사무원) = 잔여 금액 : 17만원

4. 자투리 돈


여기까지 진행되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됐다!' 감격의 욕설도 절로 새어나왔다. 왜냐하면 남은 17만원은 정말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이었다! 상하차 1번 정도로 충분히 충분한 금액! (물론 다시는 안 할 거지만...)


머릿 속 회로를 FULL로 돌렸다. 매달 받는 용돈이 25만원이고, 매주 토요일, 어머니의 일을 도와줄 때 매주 받을 수 있는 돈이 2만 5천원(3주면 7만 5천원). 즉 앞으로 받을 돈이 32만 5천원이 있는 셈이다! 그 중 15만원을 쓴다고 해도 17만원 정도는 거뜬히 채울 수 있는 돈이었다! '설마'...했는데 이제는 '확신'이 되었다. 그 확신이 드는 순간 나는 드디어 해방된 느낌이었다. 없던 여유가 생겼다.


그 동안 술 한잔, 밥 한끼는 커녕, 커피 한 잔 사먹기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는데... 그 동안 고생한 나 자신이 너무 기특해서, 또 그동안 옆에서 걱정해주고 많이 도와주신 부모님과 친구들이 고마워서... 눈물 찔끔 흘렸다. 버스 타고 집가는 길에 너무 벅차올라서 드라마 여주인공 마냥 행복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나의 해방일지>  염미정(김지원 배우님)
정리: 110 - 14(상하차)  - 48(과외) -31(투표 사무원) -17(용돈) = 잔여 금액 : 0원!
총 440만원 달성!

5. 네? 이 많은 돈을요?...


그렇게 행복감에 젖어있을 때, 더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어느 날 통장에 50만원이 들어온 것이다. 어머니의 지인분(김이사님으로 통칭)께서 보내주신 것이었다.


"나도 젊었을 때 삼계탕집 아르바이트하고 하면서... 참 힘들었는데 그 때 작은 아버지가 주신 돈이 그렇게 큰 힘이 되더라고요. 저도 승학군께 그런 힘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또 그렇게 열심히 해내고자 하는 모습들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


놀라기도 하고 너무 감사해서 드린 전화에 김이사님은 이런 말씀을 전하셨다. 머리가 띵-했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국에 계시는 이모, 막내 이모, 이사장님(어머니 지인분), 할머니, 큰 이모, 아버지 친구분들, 어머니 친구분들, 먼 친척들...께서 돈을 보내주셨다. 총합은 200만원을 웃도는... 모두 '응원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1. 포장하지 않겠다.

사실 이 돈들은 친척이라는 이유로, 지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주신 돈들일 테다. 내가 대단하고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다 '연'이 빚어낸 것이란 뜻이다. 조금 더 냉철하게 말하자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청춘의 가치'가 잘 전달되었고,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냈다기 보다도, 그저 '(이렇게까지 열심히 발버둥치는) 지인을 돕기 위한 마음'이란 것이다. 나도 그걸 잘 안다. 그래서 조금은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기도 하다.


2. 그러나 감사하겠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내가 오로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이제까지 해온 것도 오롯이 나만의 힘이 아니다. 다들 지인과 지인의 지인들이 도와주신 덕이다. 너무 큰 은혜들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약간의 아쉬움이 남긴 해도, 자존심이 상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감사한 마음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없이 감사드린다. 닿을 수 없는 수평선처럼  한없이.


3. 그리고 증명하겠다.

그 감사한 은혜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감사함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겠다. 그 무게와 빛을 끝까지 이고 가겠다. 그렇게 결국,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고야 말겠다. 제대로 해내고야 말겠다. 그 돈이 결코 아깝지 않았음을, 나는 정말 해낼 사람이었음을, 김승학이라는 사람을 떡잎부터 알아봤음을, 여러분들은 정말 그런 대단한 사람이었음을 꼭 증명해내고야 말겠다.


6-1. 열정과 열심이 프로필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한결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친구 만날 시간도 돈도 없었고, 만나도 책 펀딩 얘기를 꺼낼 생각을 항상 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베풀 수 있게 되었다. 참 좋은 여유였다.


드라마의 말을 빌리자면, '환대'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마음의 여유로 선생님들을 찾아갔다. 이 <뭐라도 되겠죠>라는 책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전에, 나라는 존재를 완성해준 것도 선생님들의 몫이 컸기에 감사와 안부 인사를 차례로 전하러 갔다.


먼저 비교적 일정이 자유로우신 학원 선생님들을 뵙기로 했다.

원영 수학, 곽** 선생님. 살이 많이 빠진 모습, 나이가 들어서 여윈 모습이 아니라 더 건강해진 모습이셨다.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다. 우리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응원과 위로와 영감을 주고 받았다.


"내가 처음 학원을 시작할 때, 옛날 사람들은 여자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아무 지원을 해주지 않잖아. 그래서 직접 손글씨로 전단지를 써서, 집집마다 떡이랑 같이 돌렸어...


뭐든 해. 뭐든 해봐. 될 때까지 해.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해야 하는 거야. 이상하게 생각할까, 오글거린다고 생각할까, 그런 거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못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아니면 뭐든 해봐야지. 그리고 그 정도로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지마. 그 정도는 당당하게 해도 되는 거야. 그런 베짱은 있어야지."


무작정 전단지를 돌리고, 각종 커뮤니티와 댓글에 내 책을 홍보하던 시절과 겹쳐졌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너는 틀리지 않았어-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해낸다는 게, 잡아줄 사람도, 안아줄 사람도,  잘했어- 이런 말 해줄 사람 하나 없다는 게 외로워지는 순간이 가끔 있는데, 또 하나의 든든한 동반자가 생긴 느낌이었다. 선생님들은 항상 내게 이런 존재가 되어주었다.


어느 날 문득 듣다가 울어보린 노래,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네 프로필은 열정과 열심이야. 그걸 꼭 기억해."


이 말을 끝으로 학원 문을 나섰다. 또 한 번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발걸음도 가벼워졌고, 하늘도 유난히 푸른 리듬으로 꿈틀댔다.


그리고 그날 저녁 곽 선생님과 학원의 지인들이 총합 10만원 정도 되는 돈을 펀딩해주셨다.


6-2. 네? 새로운 일자리요?

이어서 간 곳은 영어 학원이었다.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영어 선생님, 조 선생님을 찾아간 것이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에 들어가, 군대까지 다녀 온, 즉 3년 만에 찾아간 곳이었다. 조 선생님 역시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셨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역시 그대로였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창업을 했고, 책을 냈다는 근황과, 요즘 돈 버느라 많이 바빴다는 등 근황들을 말씀드렸다.

"어? 그래? 너 돈 필요해?"


그렇게 새로운 일자리가 시작되었다...ㅋㅋㅋㅋㅋㅋ...


화요일 과외와 토요일에 어머니 일 도와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일정이 없었다. 돈은 더 필요하지 않았지만 할 수 있을 때 미리 벌어두면 좋겠다는 생각과,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게 많겠다는 생각, 또 내가 이곳에 있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조*희 선생님 사랑의 총알 뿅뿅

1. 무슨 일을 하는가?

나의 업무는 수업자료를 편집하는 일이었다. 정말 많은 학교의 학생들이 있기에 그 양도 어마어마했다. 또 이 선생님의 장점이 자료가 엄청 많다는 것이라 특히 더 많았다. 나는 하루에 200페이지가 넘는 자료들을 편집하게 되었다.

근데 내가 누군가? 그 440쪽 넘는 원고를 직접 편집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브런치와 블로그를 하고 있고, 중고등학생 때 PPT로 학교를 씹어먹었으며(과장 같지만 어느 정도 맞다ㅎㅎㅎ), 영어 잡지 동아리의 전체장이자 편집장이던 사람이다. 그 정도 문서 편집이야 나는 평생을 해왔다. 단 몇 분만에 업무에 적응하고 뚝딱뚝딱 자료들을 만들어냈다. 나를 보는 조선생님의 눈빛이 그렇게 초롱초롱할 수 없었다.ㅋㅋㅋㅋㅋ


2. 최고의 업무 환경

업무 환경도 나와 매우 잘 맞았다. 환기가 잘 되는 쾌적한 사무실, 친근한 분위기+각자 열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유동적인 자유 출/퇴근! 책 출판, 과외 등등 일정이 꽤 많은 내게 유동적인 스케줄은 필수 사항이었다. 페이도 '시급 1만원 + 보너스'까지... 정말 최고의 업무 환경이었다.

업무량이 많은 것, 그래서 밥 먹을 시간도 잘 안 나는 정도의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정도야ㅎㅎㅎ(버텨야지...)


3. 어쩌면 나 이런 직장 생활이 잘 맞을지도...

최고의 업무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하루 종일 학원에 틀어박혀 작업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재밌다. 내가 익숙하고 잘하는 업무를 해서일까, 이곳에서 나름 인정받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웃고 관계를 형성해가는 일이 매우 재밌다. 누군가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자리. 그런 곳이라면 직장 생활도 그리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들었다. 내가 나 자신으로서 의미를 발현할 수 있는 곳, 그곳이라면 어느 환경에서든 충분히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든다고 창업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창업은 단순히 도피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창업을 통해 '나만의 것', '나만의 가치를 담은 것'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다.


이렇게 흔들려가며 결국 더욱 단단해지는 내가 너무 사랑스럽다.


7. 이제는 : 재정비


근 2~3주 내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대부분 돈과 관련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돈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새로운 영감과 자극, 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의 여유도 거대한 기적 중 하나다. 물론 돈이 가장 거대하고 근본적이긴 하다.


1. 돈에 대하여

돈이란 녀석이 없다가 갑자기 생겨 보니 여유가 생기고, 단순히 여유 이상으로 마음이 들뜨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커피도 죄책감 없이 먹고, 술자리도 몇 번씩 나가게 되었다. 일주일에 1만원도 쓸까말까 하던 내가, 이제는 10만원 정도 쓰게 된 것이다. 정말 밥 몇 끼, 술 자리 몇 번 나가니까 10만원은 금방 쓰게 되더라. 물론 이 조차도 큰 씀씀이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미 없이,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돈까지 쓰게 되는 것은 문제일 테다. 그리고 술을 마시게 되면서 찌는 살과 생활의 피로 역시 문제일 테다. 그래서 나는 돈과 생활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그렇게 세운 위클리 투두 리스트

2. 돈 관리 대책

<개인적인 소비>

1) 먼저, 내가 꼭 필요한 것들을 사기로 했다.
요번에 산 USB포트가 그 예시다. 그 외 일회용 렌즈, 비금속 목걸이(전부터 꼭 사고 싶었다. 쇠독이 있어서 그냥 목걸이는 못 쓴다...) 등을 추가로 살 예정이다.

2) 추가로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샀다.
크게 비싼 건 아니고 루테인 영양제 4달치와 작은 용돈 정도다. 그동안 아들과 함께 고민해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재투자>

3) 책 출판에 사용할 비용을 늘렸다.
원래 계획했던 500부에서 700부로 늘린 것이다. 그래봤자 20만원 정도 차이밖에 안 난다. 700권은 펀딩 이후, 교보문고와 알라딘 등등 서점에 입고할 재고로, 재발행 시 필요한 여유분을 추가 확보한 것이다.

4)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으로 두었다.
이후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그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으로 50~100만원 정도 남겨두고자 한다.
<그 외>

생활비로 주 한도 10만원 정도를 소비할 계획이며,
프로젝트 홍보, 준비 등을 위한 비용으로 재투자하려고 한다.

3. 생활 관리 대책

<미라클 모닝 개선>

미라클 모닝을 위한 기상 시간을 6시에서 5시로 앞당기기로 했다. 그리고 아침부터 생활을 확실히 잡기 위해 맨몸 운동을 1시간~1시간 30분 정도 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로 일정이 바빠지면 헬스 갈 시간이 없을 수도 있으니 그 경우를 대비한 것이기도 하다. 그 뒤 샤워를 한다면, 확실히 뽀송한 기분으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체중 감량>

바디 프로필을 꼭 찍어야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며칠 방심한 사이 늘어나는 몸무게를 이대로 둘 수 없기도 했다. 87kg까지 감량했었는데(약 9~10kg), 최근 2주 새 88~89kg까지 늘기 시작했다. 돈도 아낄 겸, 살을 빼야겠다. 목표는 9월까지 83kg. 83kg가 내 인바디 적정 체중이니 적절한 목표일 테다.

이를 위해 술 마시는 횟수도 주 최대 2회로 정하고, 식사량과 횟수도 일 2회, 탄단지 골고루로 조절하기로 다짐했다. (탄단지 조절은 감으로ㅎㅎ... 대충 감으로 해도 어느 정도 맞더라!)

8. 마무리


이렇게 나는 출판을 준비하며 수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기대처럼 되지 않는 일도, 기대 이상으로 되는 일도 참 많았다. 뜻하지 않은 행운과 불운을 번갈아 맞아가며, 그럼에도 꾸준히 정진해가며, 목적지를 향해 부단히 달려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나 혼자 힘으로 해보려고 했지만, 곁에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들은 오롯이 나의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덕이 오히려 더 컸다. 삶동안 몇 번이고 오만했던 나를 반성해본다.

그들의 존재나 마음이 언제나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안다. 당연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렇기에 겸허히 받아들이고, 무한히 감사드릴 줄도 안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도 조금은 다잡게 되었다.


오래 전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냥 살아요. 뭔 의미를 쫓고 그래요. 그런 사람들 보면 짜증이 나."


그 사람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디쯤 와 있을까.

나는 나아가는 만큼 뒤도 돌아보면서 더 확신에 찬 걸음을 힘차게 내딛을 테다. 이 재밌는 하늘을 아득히 바라보며, 양팔 벌려 바람과 시간을 세로질러 나아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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