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여행 가세요?
손님 하나 없는 늦은 오후의 서점. 빈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들리는 물음으로 서점주인 C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서점에 오면 늘 여행서적 코너에서 한 두 시간 보내다 가는 그녀. 이름도 모르고, 뭘 하는지,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거의 반년을 인사하고 지내다 보니 왠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뿐. 딱히 책을 고르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한두 권 집어서 무심한 시선으로 훑어보다 갈 뿐인데 그녀가 서점 안으로 들어오면 C의 시선은 절로 그녀를 따라간다. 말 한 마디 못 붙이고 지내다가 처음 건넨 말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식상해서 살짝 얼굴이 붉어진다. 어찌되었든 그 물음 덕분에 그녀의 시선이 책에서 C의 얼굴로 옮겨온다.
아니요.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가. 다음 말을 궁리하는 사이 다행히 서점의 전화벨이 울린다. 다행이다 싶어 얼른 수화기를 들고, 감사합니다. 상상서가입니다, 라고 부러 큰 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책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꽤 오래 같은 책을 들고 있어서 더욱 궁금해진다. 무슨 책을 보고 있는 걸까.
한 시간 쯤 후 그녀가 서점을 나가자 C는 그녀가 서 있던 곳의 책들을 살펴본다. 이쯤이었지 싶은 곳에 낯선 책이 한 권 꽂혀 있다. 주문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책이다. <우리는 몰바니아로 간다> 산토 실로로 외 지음. 오래된 미래에서 나온 책이다. 지도에 없는 나라로 떠나는 여행 안내서라니. 책의 내용은 다른 여행서들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였으나 몰바니아라는 나라의 이름은 낯설었다. 정말로 세상에 없는 곳이라면, 아까 C의 물음은 그야말로 엉뚱하게 들렸을 것이다. 다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그녀는 왜 하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가는 여행서를 집어든 것일까. 그대로 선 채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책은 제법 진지한 여행서처럼 보인다. 읽으면 읽을수록 궁금해지는 것이 신기했다. 마치 미지의 그녀에게로 가는 여행인 것 같은 이상한 느낌. 그녀는 어쩌면 아까 이 자리에서 진짜 몰바니아행 여행 루트를 짜고 있던 것이 아닐까.
C가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녀, 미지의 그녀가 지금 몰바니아로 가고 있다. C 역시 지금 이 자리, 아까 그녀가 있던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몰바니아로 간다. 우리는 이렇게 몰바니아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