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뒷모습은 서늘했다. 큰 키에 마른 몸은 늘 조용히 움직였다. 발걸음 소리도 거의 내지 않고 최소한의 땅만을 딛겠다는 듯이. 걷는다기보다는 바닥을 점처럼 찍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마지막 직장에서 뛰쳐나온 때가 10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그는 세상에서 물러난 사람처럼 홀로 지냈다.
이웃들 말로는 학벌도 좋고 일머리도 있는 사람인데 조직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 직장에서 1년을 버티지 못했다. 직장을 그만둘 때마다 그가 하는 말은 똑같았다.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서점주인 C는 한 번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가요?”
“없어요.”
“......”
“그저...견딜 수가 없는 거죠, 이 세상이라는 게,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10년 동안 직장도 없이 그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서점 2층에 사는 그를 서점 입구에서, 가끔은 서점 안에서, 몇 번 마주쳤을 뿐 눈도 마주치지 않는 그와 친구가 되기는 어려웠다. 그런 그에게 변화가 생긴 건 지난 가을이었다. 걸음이 평소보다 빨라졌고, 어딘가 목적지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거의 매일 외출을 했고 밤늦게야 돌아왔다. 어깨에는 커다란 가방을 매고 허적허적 집을 나서는 그의 행선지가 궁금해서 하루는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요즘 어디 다니시나 봐요?”
“공부를 좀 해보려고요.”
무슨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무슨 강의를 듣기에 하루도 빠짐없이 나가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의 외출은 유독 추웠던 겨울까지 이어졌다. 새해가 왔고 입춘 날, 서점 문에 입춘방을 붙이고 있는데 그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가방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 그는 가방 없이 서점 앞을 지나갔다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서점주인 C는 햇빛을 즐기느라 문 앞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그와 마주쳤다. 얼굴 표정이 굳어 있었다.
“요즘은 공부하러 안 가시나 봐요?”
“때려치웠어요. 다 쓸데없는 짓 같아서.”
목소리는 다시 예전처럼 느릿느릿 낮고 힘이 없었다. 이번에는 동네 산책을 시작한 것 같았다. 한 달 쯤 지나고 나서는 그마저도 끊겼다. 그리고 한동안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서점 2층으로는 전기요금, 가스요금 고지서를 우편함에 꽂아놓고 오는 우체부 말고는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택배도, 찾아오는 지인도 없었다.
어느 월요일 밤 서점주인 C는 문을 닫고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 마침 손에 잡은 책을 놓을 수가 없어서 마저 읽고 갈 참이었다. 건너편 술집 <달의 궁전>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공기가 습한 것이 비가 올 것 같았다. 냉장고에서 맥주 캔 하나를 꺼냈다. 장 주네가 쓴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는 벌써 여러 번 읽는 책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속이 헛헛할 때면 이 책을 집게 된다. 책을 읽다 문득 자코메티의 개를 떠올리고 있는데 서점 앞으로 누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림자처럼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아마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만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길을 건너 편의점으로 가는 그의 뒷모습이 더 야위어 보였다. 그의 뒷모습에서 순간 자코메티의 조각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는 가을마다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가 겨울을 보내면서 치워버리고 봄에는 다시 비워진 상태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를 거듭하는 동안 그라는 존재의 덩어리는 조금씩 사라져 마침내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처럼 앙상하게 되어가는 것일까.
후드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나오는 그의 손에는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그는 뛰지 않았다. 천천히 땅에 점을 찍으며 그는 길을 건넜고, 서점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 비는 새벽까지 주룩주룩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