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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글쓰기

by 빛나는


설거지 중에도

감은 온다


고무장갑을 벗고

볼펜을 쥔다


적으려는 순간

세상이 잠시 고요해진다


'아, 뭐였더라.'


빈 종이만 남겨두고

다시 고무장갑을 낀다


벌써

감이 갔다





모니터 화면을 뚫어져라 봐도 도무지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으니 우선 자리에서 일어나 미뤄둔 집안일을 시작한다. 청소기를 돌릴 때라면 잠시 끄면 그만인데, 꼭 설거지를 할 때 영감이 나타난다.


싱크대 앞에 서서 거품이 잔뜩 묻은 그릇을 놔두고 침착하게 노트를 찾는다. 고무장갑을 급히 벗고 눈에 들어오는 볼펜을 잡아서 딱 쓰려고 하면 그새 사라져 버린다. 영감은 왜 기다려 주질 않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올 가을에 잘 익은 홍시라도 왕창 먹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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