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짱으로 문을 열지 않으면 희망은 현실이 되지 않는다
워너 스프링스 랜치(Warner Springs Ranch)로 여행을 떠났다.
캘리포니아 산맥은 한국의 산세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그곳의 산 모양은 어릴 적에 내가 살았던 불광동 뒷산을 닮았다. 나지막한 산봉우리가 그렇고 군데군데 박혀있는 바윗돌은 영락없는 우리 집 뒷산이다. 동네 뒷산과 흡사한 산등성이를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산에 바윗덩이가 많아‘독박골’이라고 불렸다. 돌밭골로 시작한 이름은 점차로 독박골로 바뀌었지만 변한 것은 명칭 뿐 동네 어른들은 변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척박한 돌멩이를 닮아갔고 동네 아이들은 희망 없는 어른들을 닮아갔다.
독박골에서의 오늘은 어제와 똑같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동네에서‘내일’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가난으로 연결됐다. 나는 그 가난의 뫼비우스 띠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스물다섯 살에 대학입시 준비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는 여자 나이 스물다섯이면 받아줄 직장도 없었다. 대입시험에 떨어지게 되면 한 해, 두 해 집에서 놀다가 시집이나 가는 게 그 다음 순서였다. 별 볼일 없는 처자와 결혼하는 남자도 능력 없기는 마찬가지일 테니 가난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은 맡아놓은 당상이다. 게다가 주위사람들은 탐탁지 않은 듯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 나이에 대학은 들어가서 뭐하니?’
그 충고는 독박골의 가난보다 더 슬픈 일이었다. 굳어진 통념과 맞서고 편견에 지레 겁먹었던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 늦깎이로 공부하는 것보다 더 힘겨웠다.
가난은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등록금 때문에 26세 입학한 대학을 38세가 되어서야 졸업을 하게 되었다. 더구나 38살에 얻은 대학졸업장은 정말로 쓸모가 없었다. 신입사원으로 지원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았고 경력사원으로 지원하기엔 턱없이 실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나는 무슨 문이라도 열 수 있는 만능열쇠를 갖게 되었다. 그 열쇠는 좌절이라는 문을 열게 만들었고 절망의 문을 열게 만들었다. 용기는 그 문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었다. 배짱으로 문을 열지 않으면 희망은 현실이 되지 않음을 알게 해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해야 했다. 경리, 전화 교환원, 우유판촉, 미싱사, 미술 강사 등 수많은 직업을 거치면서 나는 독박골에 널려있는 돌멩이처럼 단단해져갔다.
게다가 고난은 내게 입체 안경을 선물했다. 힘이 들고 어려울 때마다 난 그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 사람대신 높은 하늘을 보았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미래의 내 모습을 보며 인내했다.
나는 내가 택한 선택이 완벽했다거나 옳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또한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다는 것도 중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가난을 벗어나려했던 무모한 저항의식에는 박수를 치고 싶다.
지금도 나는 만능열쇠를 쥐고 고난이라는 입체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내일의 내 모습이 들어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