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으로 주저앉은 인간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숲의 이야기.
산불이 나면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불꽃은 인간을 비웃듯 능선을 따라 무서운 기세로 번져나간다. 산불이 작은 불씨에서 시작됐다면 더더군다나 허탈할 일이다.
아주 어릴 적이었다. 아버지는 신문을 읽고 있었고 나는 아랫목에 누워 유엔 성냥갑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성냥 한 개를 꺼내 쓰윽 불을 켰다. 성냥개비는 휘리릭 타오르다 재가 되어 절을 하듯 고개를 떨구었다.
몇 번을 긋고 또 긋고. 매캐한 화약 냄새도 좋았다.
아무 생각없이 불장난을 하다가 불씨가 남아있는 줄 도 모르고 성냥개비를 성냥갑 안에 촘촘이 박혀있는 성냥개비 윗부분에 대고 눌렀다. 그 순간.
확. 천장까지 불꽃이 솟았다.
기둥처럼 치솟은 불꽃과 불붙은 성냥갑을 맨손으로 잡아 바깥으로 집어던지는 아버지.
두 동작이 거의 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아버지의 순발력이 없었다면 우리 집은 홀랑 탈 뻔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원래 ‘불’은 신의 것이었다. 그 신들의 불을 프로메테우스가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었다. 불은 인간에게는 선물이었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대가로 벌을 받아야 했다. 그는 카우카소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고 또 다음 날이면 되살아나 또 파 먹히고, 프로메테우스는 신이기에 죽지도 못했다. 그러게 가혹한 벌을 내릴 만큼 불은 신만이 다룰 수 있는 위험한 물질이었는지 모른다.
불을 얻은 인간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불을 갖게 된 인간은 더 이상 두려운 게 없었다. 야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다른 종족도 공격하게 되었다. 게다가 지능적으로 불을 다루어 각종 무기를 생산하게 되었다. 무기의 본질은 불이다.
불은 에너지를 발산하며 사람을 흥분시킨다. 양의 기운이 절정인 붉은 색은 자극적이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이 화(化)의 기운이 많아야 성공한다.
하지만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불의 내면은 정 반대의 기운을 품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불은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고 꺼지면 남는 것은 재뿐이다. 불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역설적인 말이겠지만 미지의 숲속은 인간에겐 공포감을 주는 불이 때론 필요하다. 나무가 울창한 숲은 인간 모르게 스스로 자신을 지켜나간다. 건조한 나뭇잎과 바람은 적당하게 비벼대며 마찰해서 불을 일으키기도 한다. 왜냐하면 어떤 나무의 씨앗은 불에 그슬리지 않으면 발아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식물은 주기적으로 화염에 휩싸여 콩 볶듯이 튀겨져야만 종족반식이 가능해진다.
다음 세대를 위해 싹을 틔우는 데 중요한 산불, 그건 숲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는 거뭇거뭇하다. 화염에 그슬린 자리에 생명의 기미라곤 엿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머잖아 그 죽음의 땅을 뚫고 파란 새싹이 돋아나올 것이다. 그것은 잿더미 위에 앉아 있는 인간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숲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