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훔치는 사람들

실패라고 불리는 상실을 통해서 사람은 성숙해진다

by 권소희

‘시간’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계절이 왔다. 이 시기가 되면 사람들은 서두르듯 지난 시간을 헤아리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에게 24시간은 너무 짧았을 수도 또 어떤 이는 빈둥거리며 24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마하엘 엔데가 지은「모모」에는 게으른 사람을 가리켜‘하나님의 시간을 훔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남의 시간을 훔쳤기 때문에 시간이 널널하게 많은 거라고. 찔끔. 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나야말로 하나님의 시간을 엄청나게 훔친 사람이 아닌가.

watch5.jpg 성공자에 대한 존경보다는 질투심에 휘말리고 만다.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고 오늘날의 성공을 이루었다는 성공신화를 듣게 되면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끼고 조급해진다. 게다가 자학까지 밀려들어 마음이 몹시 불편해진다. 목표를 이루려면 30분 간격으로 시간표를 짜야한다는 성공자의 조언은 흉내 낼 자신도 없다. 그쯤 되면 나는 속 좁게도 그 사람에 대한 존경보다는 질투심에 휘말리고 만다.


‘저 사람은 저렇게 성공할 동안 나는 대체 뭘 한 거야?’


솔직히 내가 게으른지는 모르겠는데 시간을 낭비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넋 놓고 멍하니 있기, 괜히 인터넷 사이트를 구글링하기, 이 책 저 책 뒤적이기, 불현듯 쇼핑하기 등등.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건커녕 허투루 흘려보낸 시간만이라도 다 모았다면 나도 아마 대단한 사업가나 훌륭한 학자가 되었을 거라는 건 인정한다. 그렇지만 내게 있어 어떤 시간은 의미 없이 흘러갔을지 모르지만 그 삶이 절대로 헛된 것이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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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 푸지에게 시간을 빼앗아가는 시간저축은행 영업사원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을 아끼세요. 잡담도 금지하고 쓸데없는 앵무새는 갖다 버리고 15분간 명상하는 시간도 없애고 책을 읽거나 친구를 만나는 시간을 버리세요.”


푸지가 가장 곤혹스러워했던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다리아 양에게 꽃을 사들고 매일 30분간 방문하는 것도 시간낭비였다는 영업사원의 설명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일마저 손실이라는 계산법에 나는 그만 시간의 효율성이 끔찍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을 잘 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간을 타고 흐르는 삶의 모습은 자로 잰 듯 일률적이거나 틀에 박힐 수는 없는 법이다.

삶은 시간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라고 불리는 상실을 통해서 성숙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존재를 더듬게 만든다.


한때 내게도 어긋났거나 좌절을 경험했던 반항의 시절들이 있었다. 어른들은 그런 내 모습을 가리켜 불량학생이라는 표현을 썼겠지만. 어른들의 바람대로 내가 착실한 학생이었다면 의사나 변호사는 되었을 수는 있었어도 소설은 쓰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 나의 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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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면 산책하는 시간을 줄이지 않을 것이고 생각에 잠기는 공상시간도 줄이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꽃 한 송이를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결코 저버릴 생각은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과감하게 사랑도 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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