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절박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법이다.
시월이다. 10월보다는 시월이 더 가을을 닮은 것 같다. 가을이 되면 라이너마리아 릴케가 생각나고 그의 시 ‘가을날’이 떠오른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에 바람을 풀어놓아주세요. 마지막 과일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소서….’
달력을 세심하게 보지 않는다면 LA의 가을은 어느 틈에 생략이 되고 만다. 사라질 줄 모르는 뜨거움. 지난여름도 변함없이 건조한 사막바람은 지루한 줄도 모르고 맴돌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가을을 맞이하듯 촉촉한 비가 내렸다. 갑작스런 날씨변화는 뒤를 돌아보게 했다. 벌써 시월이라니. 괜히 시니컬해진다.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라고 릴케가 읊은 대로 공연히 마음은 허둥대고 빈손이 허전해진다.
이미 아홉 장의 달력이 찢겨나갔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두 장의 달력을 뒤적거려본다.
‘이 해도 다 지나갔네.’
이 해가 끝나려면 아직 두 달이나 남았는데도 난 결산을 떠올린다. 억울하기도 하고, 해명을 하고 싶어진다. 첫 달은 얼마나 여유와 패기가 있었던가. 하지만 달력을 넘길수록 어떤 의욕은 열에 녹아내린 구리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또 어떤 꿈은 시작도 못한 채 접어야만 했다. 불황과 맞물린 탓이라고 변명해보지만 실직으로 이어진 불황의 그늘은 너무 짙고 깊었다.
노동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그 틈에 나도 섞여있었다. 내일 당장 해결해야 할 고지서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그 근심 속에 나도 껴있었다. 자존심을 잃어버린 걸음걸이는 뜨거운 여름 한 철을 지나는 동안 속절없이 무너진 지 오래다.
겨울이 채 되기도 전에 호흡은 얼어붙고, 눈에 흰 막이 덮이고 말았다. 잠을 이룰 수가 없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더디 오는 아침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뒤척이다가 조급증에 걸린 사람마냥 밖으로 뛰쳐나갔다. 새벽은 절박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법이다.
깜깜한 하늘엔 별도 보이지 않았다. 유독 한 개의 별만이 새벽하늘을 지키고 있었다. 만약에 그 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오랫동안 이어질 고독의 시간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신의 그림자를 해시계에 얹어달라던 릴케의 기도가 나에게도 절실해졌다. 나는 가장 낮은 자세로 몸을 낮추고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남은 과일을 익게 하고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다고 실토했다.
새벽은 내 어깨를 쓰다듬고 위안을 베풀었다. 안 그랬으면 나는 다른 무리들과 함께 해가 지는 서쪽을 향해 걸었을 것이다.
‘지금 집이 없는 자들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던 릴케 고백대로 무엇을 시도하기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쌓아두기만 했던 책을 꺼내 읽고 오랜만에 편지를 쓸 참이다.
그러기위해서는 나도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허락해달라고 간절히 읊조려야 할 것이다. 이 시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