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 없이 껴안는 하루

내게 어둠은 지나온 세월을 묻는다.

by 권소희

꾸덕꾸덕 하루가 말라가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밤이 그립고 밤이 되면 지나온 하루가 아쉽다. 감격도 없고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은 하루가 그리피스 산 너머로 담담하게 저물어 가고 있다. 하루를 곱씹고 있는 내게 어둠은 지나온 세월을 묻는다. 의욕이라 이해했던 욕망과 도전이라고 여겼던 집착의 시간들을.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슬픈 거라는 푸쉬킨의 시가 한때는 위로가 됐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던 그가 겪었을 절망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나는 믿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게 될 거라고. 하지만 세상에는 하고 싶어서 하는 일보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았다. 그걸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을 헛돌아야 했다.

하루3.jpg 어느 하루는 노오란 프리지아 꽃다발처럼 아름다웠다

결핍이라 여기던 날들이 반복됐다. 비슷비슷했던 그 어느 하루는 노오란 프리지아 꽃다발처럼 아름다웠던 적도 있었다. 입학식이었나? 아마 졸업식이었을 것이다. 그날은 철없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였다. 신부가 되는 인생의 하루는 오히려 구슬 박힌 드레스가 더 아름다웠다. 걱정이 더 앞섰을 것이다. 연습 없이 부모가 되어야 하는 걸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예식장을 빠져나오기는 이미 늦었다. 실수였음을 알아차려도 되돌리는 결혼은 복잡하고 부모가 되기도 전에 부부로 살아가는 건 턱에 부쳤다. 화해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탓이다. 살아보니 슬퍼하거나 노하는 것보다 적당히 넘어가는 게 차라리 속은 편했다. 어차피 인생이란 게 정답은 없는 법이니까. 답을 택한 게 아니라 피해가는 요령만 터득한 셈이다.

하루2.jpg 결혼은 연습 없이 부모가 되어가는 일이다

사랑의 정답은 하나라고 굳게 믿고 있는 어느 수필에서 그 문인의 망가진 육체만큼 죽어가고 있는 문학이 답답하다. 사랑이 범죄가 되고 있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의 고백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없는 걸 슬퍼해야 한다. 늙어가고 있다면.



가끔은 강원도 속초에서 봤던 동해안이 떠오른다. 기억 속에 떠오르는 바다는 왜 그리 짙푸른지. 낚시를 하는 아버지를 따라 처음 보았던 그 바다빛깔은 그리움만큼 푸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두리번거린다. 아버지에게 끝내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하지만 나는 용기도 없다. 설사 말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은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착각에 불과하다. 착각은 비난 받을 수 있어도 사랑은 존재의 전부다. 남녀 간의 사랑일망정.


하루1.jpg 오늘, 사랑할 수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껴안아야........

타인에게 불량했던 하루가 저물고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세상을 힐끔거릴 게 아니라 불행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았어야 했다. 세상에 빚진 자가 가야할 곳은 천국이 아니라는 것도. 날이 저물면 덜컥 겁이 나는 이유다.


세상은 순응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라 저항하라고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행복은 내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어야 한다고. 오늘, 사랑할 수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껴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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