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계획
내 수첩에는 평생에 이루고 싶은 소원 세 가지가 적혀있다. 첫째 소원은 가수 에릭 크랩톤 콘서트 장에 가보는 것이고 그 다음은 백악관 만찬에 초대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내가 태어났던 강원도 고성을 방문하는 일이다. 언뜻 보면 못 이룰 것도 없는 일들이다.
원래 나는 에릭 크랩톤보다는 비틀즈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의 공연장에 더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영원히 그의 공연장 티켓은 살 수 없다. 실은 나는 조지 해리슨이나 에릭 크랩톤보다는 그들의 부인이었던 패티 보이드가 더 궁금하다. 에릭 크랩톤의 Tears in Heaven을 듣다보면 아내를 친구에게 양도한 조지 해리슨이 생각난다. 관대한 사랑으로 얽혀있는 그들의 자유분방한 삶이 부러운지도.
백악관에 초대되는 일은 소원이라기보다는 망상에 더 가깝다. 내가 백악관 만찬에 초대될 기상천외한 기회가 내게도 주어질 수가 있을까? 상상만 해도 너무 허황되어 실 웃음이 나온다. 백악관에 초대되기 전에 청와대에 먼저 초대되는 것이 우선순위일지 모른다.
대체 청와대에서 주시하는 인물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일까. 아마도 내가 세계적인 인물이 된다면 당연히 그런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 그건 노력한다고 이룩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내 노력으로 성취될 수 없는 일, 그것을 나는 평생의 소원으로 달아놓기로 했다.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일이라면 소원이 아니라 계획이 될 테니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소원은 강원도 고성에 가는 일이다. 북한 땅이 저 너머로 보이는 고성은 간성이라고도 불린다. 아버지가 군 복무를 했던 20사단이 있던 곳이기도 하고 내가 태어난 곳이다. 아버지는 늘 입버릇처럼 고성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곳은 기차를 타든 고속버스를 타든 차표만 있으면 갈 수 있는 곳이다. 결국 아버지의 바람은 이루지 못하고 유언이 되고 말았다. 계획을 세우지 않더라도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을 왜 아버지는 말만 했던 것일까.
나는 아버지의 소원을 무관심하게 흘려버렸다. 따지고 보면 나에게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그곳을 떠나왔으니 고향이라고 하기엔 추억의 두께가 얇다. 그런데도 몇 장면은 영화를 보듯 선명하다.
엄마의 등에 업혀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바라보았던 넓고 푸른 바다. 어린 나를 데리고 동해바다에서 낚시를 하던 아버지. 군용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던 큰 길. 군복바지에 런닝 셔츠를 입고 바둑을 두던 아버지.
이제 나는 알 것 같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강원도 고성을 그리워했던 이유를. 짐작컨대 나이가 들어가던 아버지는 그 시절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군인이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 평생소원이라고는 수첩에 적어놨지만 나도 아버지처럼 입버릇처럼 말만 할지도 모른다. 가고 싶다고 하면서도 정작 찾아가지 않는 고향에는 푸른 바다만 넘실거릴 것을 잘 알기에. 정작 내가 그리워하는 건 고향이 아니고 아버지였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