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했던 지도는 일본에서 제작된 지도였다
1937년생인 안도 사다꼬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 해 8월에 광복을 맞이했다. 해방을 맞이하자 일본이름도 원래 이름인 김정자로 불려졌다. 안도 사다꼬는 모친의 일본식 이름이다.
“센세이, 벤조니 잇데끼마스” (선생님, 변소에 다녀오겠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린 소녀가 제일 먼저 익힌 문장이다. 입학을 앞두고 외할아버지에게 배운 문장이라며 지금도 노모는 웃음 섞인 소리로 흉내를 낸다. 어린 마음에도 생리적인 욕구를 제때 해결하지 못할까봐 제일 걱정이 됐을 것이다. 실수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던 생존의 문장은 여든 넘은 모친의 기억 속에서 아직도 생생하다.
겐세이라는 단어를 불쑥 내뱉었던 이은재 국회의원의 발언에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지만 쓰레빠를 신고 물을 길러 바께쓰를 들고 다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소파 밑의 먼지처럼 아직도 일상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건 언어로 익힌 정서는 진공청소기처럼 단 시간에 없앨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을 갔더니 나더러 “구찌라도 사오지 않았냐”며 타박하던 어른의 말에 나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구찌 백 가격이 얼마인데?’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말한 구찌는 가방이 아니라 립스틱을 말하는 구찌베니였다. 립스틱이라는 말만 아는 내가 생전 들어보지 못한 구찌베니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시대의 아픔이 서려있는 오해였다.
어느 날 장진호전투를 검색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장진’이라고 자판을 치면 자꾸 ‘chosin’이라는 단어와 연결이 되는 게 아닌가. 장진호 전투는 북한 개마고원근처 장진 저수지 근처에서 일어났던 미국 3대 최악의 전투 중의 하나로 꼽히는 전투다. 철수한 미군들이 흥남부두에서 피난민을 싣고 거제도로 향하던 역사적 사실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오류가 함께 있다니. 지금은 한국으로 귀국한 한 관료에게 그 사실을 말했더니 그분은 원론적인 말만 했다.
“그건 미군들이 당시에 사용하던 지도의 일본지명을 그대로 사용한 겁니다.”
그러니까, 미군들이 사용했던 거니 틀려도 그냥 어쩔 도리가 없다는 말인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한국전쟁 발발했던 당시 일본에 주둔해있던 미군이 한국전에 참전하게 됐는데 그때 사용됐던 지도가 일본에서 제작됐던 지도였다. 지금까지 미군들이 공식적으로 장진호 전투를 ‘Battle of Chosin Reservoir’라는 일본식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다. 내가 읽었던 ‘장진호의 동쪽’의 원제는 ‘East of Chosin’이다.
미군들은 우리가 일본 강점기에 한국어를 강제로 쓰지 못했다는 아픔이 있다는 걸 모를 수도 있다. 한국인들은 야지니 겐세이니 하는 발언에 머릿속에 두드러기를 일으키며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겠는가.
지도조차 없어 미군에게서 얻은 지도로 북한군을 막아야 했던 한국전쟁,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Chosin이 아니라 Chang Jin으로 고쳐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