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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희 Oct 08. 2019

‘위안부’, 외면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다큐멘터리 '주전장'을 보고

다큐멘터리 ‘주전장’을 봤다. 그 영화는 위안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진실도 왜곡시킬 수 있는 권력의 모습이었으며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전쟁의 상흔에 관한 기록이었다. 


필름이 돌아가는 2시간 동안 내가 관여할 수 없다고 여겼던 이 세계가, 그 무관심 때문에 진실이 파묻혀가고 있다는 데에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일본계 미국인인 미키 데자키 감독의 시선과 용기는 가치 그 이상이었다.

영화 시작 전에 감독과 사진을 찍었으나 영화가 끝나고는 아는 체를 못했다.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영화는 일본회의가 어떤 식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지, 자신들이 자행한 전범의 기록을 없애기 위해 쏟아 붓는 예산과 국제사회에 행해지는 방해공작의 실체를 알게 해주었다.


영화가 다 끝나고 감독과 대화 시간이 이어졌다. 간담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누군가 “우익단체와 인터뷰를 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느냐?”고 묻자 감독은


 “일본의 극우들은 대중 앞에 자신들의 소리를 내는 걸 좋아해서 인터뷰 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데 오히려 진실을 알고 있는 양심 있는 일본인들과의 인터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미 영화에 등장하는 극우인사 5명에게 고소를 당했다는 그는 영화로 인해 우파와 좌파에게 모두 공격을 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우파는 우파대로 다큐멘터리에 드러난 자신들의 민낯이 불편했을 것이고 좌파는 좌파대로 진실을 왜곡하려는 우파로부터 받을 앞으로의 험난한 공격이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담담하게 영화 제작과정을 말하는 미키 데자키 감독

 나는 감독의 안위가 걱정됐다. 그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일본극우단체의 방해가 더하면 더하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줄에 앉아있던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모인 사람들은 고작 50-60명 정도였다. 아시안과 소수의 백인, 그 중 한국인들은 절반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정작 전쟁의 피해자인 우리의 관심은 초라할 정도로 저조했다. 물론 그 영화를 보고 안보고가 관심의 척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은 수의 사람들이 보고 끝내기엔 영화의 메시지는 울림이 컸다.


윌셔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상영된 '주전장'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의 범죄를 어떻게 해서든 미화하려는 일본인들이다. 그들은 기록이 없기 때문에 위안부들의 증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디 일본인뿐이랴. 일본군과 사랑에 빠진 위안부들도 있다는 설을 들고 나온 박유하라는 인물에 비한다면 위안부들이 살아남기 위해 생존의 수단으로 일본군과의 사랑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미키 데자키의 목소리가 그녀보다 객관적으로 전쟁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박유하가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경우에는 일본군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그 어떤 군인은 병든 조선여자를 돌봐준 경우도 있다고 말하는 게 역사의 진실이 아니다. 조선인 처녀가 일본군과 사랑을 나눴으니 꽃다운 여자들을 성 노예로 삼은 일본군은 잘못이 없다는 말인가?


전쟁이라는 가장 험한 장소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왔어도 할머니들은 자신의 상처를 꽁꽁 처매고 살아야 했던 할머니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잔인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젊음이 망가지고 병든 노구의 몸을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할머니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환대나 따스함이 아니라 냉대와 멸시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어떤 남자는 위안부 얘기를 하면 ‘쪽팔리니까 말하지 말라’고 하는 남자도 있다.


 위안부 문제는 한 개인이 전쟁으로 인해 성적으로 학대당했다는 인권을 넘어서 더 넓은 의미로 전범국가인 일본에게 명백하게 그 죄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쪽팔리다고 ‘위안부’ 할머니를 외면하는 사람도 있는데 미키 데자키는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여성이라는 것, 사람이 죽는 것이 전쟁의 본질이라고
 영화 ‘주전장’에서 말하고 있었다.


 ‘주전장’은 꽃다운 청춘을 일본군에 의해 짓밟히고도 숨죽이며 살았던 할머니들의 상처를 돌아보지 못했던 무관심에 돌을 던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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