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들어가도 아깝지 않을 때 그 꿈이 현실이 되는 법이다.
꿈을 꾸는 건 제한이 없다. 어떤 이상을 꿈꾸든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그런데 꿈이 현실이 되지 못하고 꿈만 꾸다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꿈이 꿈으로 끝나는 이유는 그 꿈의 내용이 현실적이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다.
꿈은 대가를 요구한다. 열정과 시간은 기본이다. 노력과 성실은 필수다. 인내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꿈은 꿈으로 끝나고 만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이루기 힘들다.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돈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꿈은 망상으로 끝난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라고 부추긴다. 꿈만 꾸면 마치 그 꿈이 현실이 되는 것처럼 강조하는데 꿈의 이면을 모르면 평생 삽질로 인생을 망치게 된다.
머릿속으로 설계하는 꿈은 어떤 것이라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만 꿈이란 놈은 아주 냉정하다. 차가움이 얼음덩어리 그 자체다. 열정, 노력, 성실, 인내 따위가 바탕으로 깔려도 돈이 없으면 꿈도 이룰 수가 없다. 모순인 것 같지만 사실이다. 열정, 노력 따위를 쏟아 부은 후 마지막으로 필요한게 돈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지불해야 할 돈도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 때 그 꿈이 현실이 되는 법이다.
꿈의 정체를 바로 알아야 한다. 꿈은 미래에 대한 현실의 투자다. 열정을 대입해서 내게 돌아올 대가를 기대하는 것이다. 포부를 갖고 도전한다는 말은 노력을 투자해서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얻기 위해 땀을 흘린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꿈을 꾼다고 하지만 실은 머릿속으로는 자신에게 주어질 이익을 바란다는 뜻이다. 결국 이익이 생산되지 않는 꿈은 중간에 흐지부지 되고 만다.
나는 두 딸을 유치원에 보내놓고 재입학을 하려고 대학교를 찾아갔다. 그때 내 나이 35살이었다. 재입학은 복학하고는 다른 행정절차를 밟아야 한다. 복학은 등록금만 내면 등록이 되지만 나처럼 오랫동안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면 입학금까지 내야 한다. 나는 준비해간 입학금과 등록금을 내밀었다. 신입생도 아닌데 입학금을 또 내야 한다니 불합리한 제도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난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말렸다. 시집을 갈 것도 아니고, 졸업을 해도 나이가 걸려 취직도 안 될 텐데 무엇 때문에 비싼 등록금을 내가며 그 나이에 대학교를 다니려고 하냐고. 맞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내가 붙잡은 기회는 미래에 수익이 생긴다는 보장이 전혀 없는 마이너스 투자였다. 뻔히 손해 날 걸 알면서도 나는 결정을 했다.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계기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둘째 딸이 한 살이 되기도 전이었다. 목욕탕에 들어가 욕조에서 둘째 딸을 몸을 씻기고 있는데 바깥에서 뭔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가보니 남편이 소파 밑으로 떨어져서 사지를 떨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 길지 않은 찰나의 경련이었지만 그때의 놀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놀라고 무서웠던 나는 반사적으로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위급하면 눈앞에 캄캄해진다고 표현했던가. 정말로 눈앞에 보이는 게 없었다. 아주 잠깐 유리창 너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한 생각이 온 전신을 관통하며 빠르게 스쳤다.
‘나도 과부가 될 수 있구나!’
그 일로 남편은 각종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아마도 아토피가 심했던 남편이 복용했던 약의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남편은 괜찮아졌지만 나는 괜찮지가 않았다. 만약 남편이 내 곁에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생활을 꾸려나갈 것인가. 기술도 없고 돈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돈이 없어 중간에 포기했던 대학교를 마치기로 결정했다. 과부가 될 수 있는 나는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기술이든, 뭐든 내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때의 판단은 지금 생각해도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