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
기회는 기회라는 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생에 있어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지만 기회는 완결된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기회는 10번도 올 수 있고 설사 20번도 넘게 찾아온다고 해도 횟수는 중요한 게 아니다. 수없이 기회가 와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건 기회는 완결된 상태가 아니고 완성의 상태로 들어가기 위한 진입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회는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
25살에 대학을 가겠다고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대책도 없는 도전장이었다. 합격이 된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직장을 다니면서는 입시준비를 할 수가 없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에 학원을 다녀도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내 능력으로서는 실행할 수 없는 불가능한 설계였다. 일단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이왕 도전하는 거 내가 좋아하는 걸로 학과를 정하자. 까짓것.
서대문 사거리 부근에 있는 화실과 입시학원에 등록했다. 5만원을 내고 취미생이라고 하고 열심히 화실에 들어앉아 연필 뎃생을 익혔다. 당시만 해도 미대입시생의 한 달 화실비는 30-40만원을 넘었다. 돈이라고 해봐야 시집가려고 모아두었던 적금 4백만 원이 고작인데 고액을 주고 화실을 다닐 수는 없었다. 취미생이라고 하고 다녔지만 얼마 못가 내 잔머리는 들통이 나고 말았다. 학원을 오가던 화실 아이들에게 대입준비를 한다는 것을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마음 착한 원장은 화실비를 더 내라고는 하지 않았다. 홍대 서양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원장은 강원도에서 같이 올라온 고향친구들과 학원에서 먹고 자며 서양화와 연필 뎃생을 지도했었다. 가끔 한밤중에 서대문 시장에 가서 야식을 먹었던 그때의 추억이 어른거린다. 너무 오래 돼서 그들의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데 지금이라도 만나면 화실비를 감해줬던 원장에게 꼭 은혜를 갚고 싶다.
체력장시험을 위해 모교를 찾아가는 일은 정말로 창피했다. 25살이나 먹은 나이에 뒤늦게 대학을 가겠다고 무거운 몸을 털럭거리며 100m달리기를 하는 제자의 모습을 한심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가르쳤던 체육선생님이 ‘시집 갈 나이에 시험 본다’고 놀려댔다. 그런 수모는 어차피 하루 쪽팔리고 말일이다.
마음을 굳게 다잡았지만 교과서를 손에서 뗀지가 오래 전인데 공부가 될 리가 만무다. 교과서에 적힌 모든 낱말들이 낯설었다. 이해를 하지 않고 무조건 암기만 하려니 효과도 없었다. 영어와 수학은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대입준비를 포기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런 걸 두고 운명이라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전혀 공부에 진전이 보이지 않으면 한두 달 해보다가 집어치웠을 텐데 나는 화실과 학원을 오가며 영혼 털린 미이라처럼 다녔다. 나는 낮에는 학원엘 가고 저녁이 되면 화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푹푹 찌는 여름날 의자에 앉아있는 건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다. 초점 잃은 눈빛으로 외워지지 않는 교재에 색색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또 덧댔다. 불합격이라는 불안을 상상할 여유도 없었다. 그날그날 하루 참는 일도 벅찼다. 그렇게 습기 찬 여름을 보내고 단풍이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가을이 지나갔다. 뼛속을 스미는 겨울에 학력고사를 치르고 실기시험을 봤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대로 합격을 하게 됐다. 26살에 대학1년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잡았던 기회는 그제야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막상 기회라는 문을 열었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던 관문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기회는 잡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경제적인 문제가 떡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회라는 녀석은 팔짱을 끼고 비웃으며 나를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어때, 해볼 수 있겠어? 그냥 포기하시지?’
결국 나는 등록금이 없어 2학년으로 등록을 하지 못했다. 결혼을 했다. 그리고 두 딸을 낳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일상생활에 묻혀가는 듯 보였다. 돈이 없어 대학교를 중간에 포기했던 미련이 언뜻언뜻 떠올릴 때면 몹시 괴로웠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라며 스스로 위로하며 지냈다. 남편이 쓰러지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나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 만족하며 살았을 것이다. 나 혼자 자식을 키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말이다.
35살이 되던 해에 나는 다시 학교 문을 두드렸다. 또 다시 한 번 기회를 잡게 됐다. 그런데 문을 여니 또 통과해야 할 문이 지난번보다 더 많아졌다. 이번에는 돈뿐만 아니라 컴퓨터가 내 발목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