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명에 헤매는 60세

꿈은 악착같이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

by 권소희

중간에 포기할 뻔 했던 웹툰 시도가 6화가 넘어가니 제법 손에 익어간다. 써놓았던 대본을 수정하며 한 두 컷은 추가로 삽입하기도 했다. 자신 없던 손놀림에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마우스를 움직이며 채색을 하자니 나도 모르게 힘에 부쳤던 지난날들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가슴을 졸이며 난관을 헤쳐 나갔던 과거의 경험이 없었으면 지금 웹툰을 그리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3번 주어진다는 인생의 기회 중 하나를 그때 붙잡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그때는 그게 기회인지도 몰랐다. 기회라고하기엔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강의를 듣는 중에도 유치원에서 돌아올 아이들이 걱정에 마음을 졸여야 했다.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작은 딸을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학교로 가야 했던 나의 비정함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평창동에 살았던 시댁이 일산으로 이사를 하는데 중간고사 일정이랑 겹쳐서 일손을 보태주지 않았던 나는 ‘못된 며느리’라는 명찰을 달게 됐다.

엄마이어야 하고 아내인데다가 며느리였던 내게 학생이라는 신분이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혼자 몸만 챙겨도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데 여러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나는 혼이 나간 상태였다. 체중도 줄어 결혼 전의 몸무게가 될 정도로 비쩍 말랐다. 몸이 고단해서 말랐던 게 아니다.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마저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기계문명.

컴퓨터.


손에 익지 않은 신기술에 대한 공포감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세상이 바뀌었다. 26살에 떠났던 35살에 학교로 돌아와 보니 필수과목에 컴퓨터 과목이 추가 되었다. 과거에는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리면 됐는데 이제는 디자인 프로그램인 일러스트레이터와 포토샵, 동영상 제작하는 것까지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익히지 않으면 과제를 제출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따로 컴퓨터 수업이 있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 사용법은 각자가 알아서 개인적으로 익혀야 했다. 여름방학 때 교수가 과제를 내줬는데 그 중 하나가 컴퓨터학원 등록수강증이었다. 알아서 배워오라는 것이다. 나도 하는 수 없이 한 달 동안 컴퓨터 학원에서 기본 과정을 익혀야 했다. 뿐만 아니라 교재 값도 만만치 않은데 컴퓨터까지 마련해야 했다. 그것도 맥킨토시로 말이다. 1995년도 만해도 일러스트레이터와 포토샵 소프트웨어는 애플사에서 나오던 맥킨토시에서만 사용할 수가 있었다. 당시 맥킨토시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매일 가시방석에 앉는 느낌이었다. 버티고 섰던 내 정신력도 그때는 휘청거렸다. 주변의 비난처럼 나도 흔들렸다. 이 나이에 대학은 나와서 뭐하나? 시집 갈 것도 아니고 취직도 안 될게 뻔한데.

우리 학과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나처럼 딸 둘이 있는 학생이 있었는데 나보다 나이는 어렸다. 애 엄마 동기가 있으니 무척 반가웠다. 살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닌다는 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서로의 처지를 털어놓으며 의지를 했다. 그런데 그 학생은 결국 포기를 하고 말았다. 아마도 학교를 다니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는 버텼다. 악착같이. 35살에 재입학해서 38살에 4학년을 마치기까지 받았던 무시와 돈 때문에 겪었던 서러움은 내 마음속에만 담아두기로 한다. 그 상처를 끄집어내어 내 감정을 난도질하기엔 할 일이 너무 많다. 등록금이 없어서 1학년만 마치고 중간에 포기했는데 공연히 과거의 감정을 불러내어 휘둘리고 싶지 않다. 15살 정도 차이나는 같은 과 학생들의 조롱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해야 했던 상처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써내려가기 보다는 앞날을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선택에 대한 결과는 내게 있는 것이다. 남들 때문에 선택을 하는 게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 잡았던 기회다. 그러니 그 과정에 따라 오는 욕도 내 차지고 비난도 내 것이다. 비난 때문에 중간에 포기했다고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기회가 오든지 기회에 따른 결과도 내가 끌어안아야 한다.


꿈은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꿈은 악착같이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 인생의 기회는 수도 없이 많이 다가온다. 그것이 열매를 맺으려면 그 꿈이 나의 전부와 맞바꿀 수 있는 가치가 있는지 따지는 게 우선순위다. 돈, 시간, 인내. 특히 그 꿈을 위해 지불할 돈이 마련되어야 한다. 꿈도 돈이 있어야 실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돈을 들이고 싶지 않은 꿈은 꿈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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