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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eek Sep 13. 2021

MY 라오지, Aged Chicken 3부

끝없는 시작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라오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라오지는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 친구의 고민은 작품 준비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항상 함께였다. 처음으로 했던 고민은 두 개의 큰 줄기 사이에서 갈등이었는데, 그동안 계속해왔던 작품 <이사>를 계속할지, 아니면 새로운 작품을 준비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사>라는 작품은 그때까지도 현재 진행형이었던 작품이기에 끝나지 않았었고, 우리의 전공인 유화와 결이 다른 종합예술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마 라오지의 가장 큰 걱정은 유화 전공 교수님들이 평면미술이 아닌 완전히 다른 작품을 하게 되면 반대를 하지 않을 가였을 것이다. 반면,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싶었던 이유는 라오지는 저번 학기부터 계속 평면미술이 아닌 종합예술을 시도하고 행해왔기에, 졸업작품에서 만큼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초반에는 작은 종이에다 도안을 그리기 시작했고, 어떤 크기의 캔버스 천에 그릴지, 어떻게 전시할지 등의 구체적인 계획을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첫 번째로 주제 발표했던 날, 라오지는 작품 <이사> 바탕으로 논문을 쓸 예정이며, 작품은 초반에 그렸던 도안들 기반으로 그리고, 그동안 찍었던 동영상도 같이 전시하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아, 그때 또 <이사>라는 작품을 하는 동안 메고 다녔던 집도 어떤 식으로 배치할 것인지도 발표했었다. 몇몇 교수님들은 평면미술과 나머지 매체들의 관계를 어떻게 잘 배치할 것인지, 혹은 두 개의 매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꼭 필요한 요소인지 다시 잘 생각해 보라는 말씀만 하셨고 별다른 문제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라오지는 또다시 고민하는 문제들을 나에게 얘기했다. 며칠 동안 그림을 그렸지만 자기가 아닌 것 같다고.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그림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고, 부족한 것을 느꼈으며, 그림을 그리다 보면 길을 더 잃는 거 같다고 했다. 이때 아마 우리는 두세 시간 동안 계속 얘기를 나누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했었다. 또한 그는 <이사>라는 작품은 끝나지 않았던 탐구였기에 정체된 상태로 전시하고 싶지 않았고, 실체로 남겨지지 않았으면 했다. 왜냐면 자기의 내면 안의 생각을 타인이 알게 된다면 벌게 벗은 거 같아 싫다고 했다. 나는 그의 작고 커다란 복잡한 문제들을 듣고 고민한 후, 그에게 차리리 집을 멘 채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게 어떻겠냐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과정 중인 작품과 함께 아무런 흔적도 없이 전시장 안이라는 공간에서 탐구를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날, 라오지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중간 발표날, 라오지는 전에 했던 구체적인 계획을 다 갈아엎은 새로운 전시계획을 발표했다. 전시 날까지 대략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남은 상태였고, 논문도 아직 제출하지 않은 상태였다. 발표가 끝난 후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이때부터 초반에 라오지가 고려했던 평면미술이 아닌 다른 매체를 이용했을 때의 교수님들의 반대 의견들이 나왔으며, 왜 이렇게 큰 변화가 생겼나라는 질문도 있었다. 한마디로 그날 라오지 발표 끝난 뒤의 분위기는 소란스러웠다.


모든 동기들의 발표가 끝나고 우리의 지도 교수님과 라오지 사이에도 언성이 높아지는 상황도 생겼다. 교수님은 네가 하고자 하는 행위는 장소와 그 장소에 오는 사람들, 그리고 학교의 입장도 다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행위는 흔적이 남지 않기에 후에 더 길을 잃을 수 있다고 염려하셨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 지금 나의 관점으로 이해한 바로는 우리가 그 순간 남겼던 흔적 안에는 습관, 생각, 감정 등 많은 정보들이 담겨있다. 이런 흔적들이 쌓이고 쌓여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금 나의 존재 이유와 그 바탕으로 나를 더 되돌아보고 알아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러기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면 과연 지금의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을까? 


교수님은 라오지에게 네가 지금 하고자 하는 작품이 아직 과정이기에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과정 중인 것을 시각적인 요소로 표현하는 것도 또한 과정이며, 이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지 않냐고. 이번 졸업전시가 끝이 아닌, 계속된 탐구의 바탕으로 점점 변화하고 성장되는 너의 공간을 표현하고 전시하면 되는 게 아니겠냐고, 우리의 지도 교수님이 말했다. 하,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우리 교수님. 이 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따로 얘기할 거다.


우리는 끝없는 과정을 계속 겪으며 나아가고 있다. 그 과정 안의 수많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성장하는지, 그 과정들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그날 교수님이 자리를 떠나신 후, 우리 둘은 크게 감탄을 하며 더 열정에 불타올랐고, 어느 날 라오지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철사를 사 오더니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MY 라오지




2021.05.04
2021.05.04


중국의 노동절은 보통 3일 정도 쉴 수 있는데, 이때 라오지는 자기 집에 할 일이랑 가져와야 할 물건들이 있다며 떠났다. 알다시피 중국은 국토가 어마하기에, 라오지의 집은 북경에 비행기 타고 가면 3시간 반은 가야 하는 거리였다. 그리고 돌아온 라오지의 가방에는 집에서 들고 온 물건들이 한가득이었다. 자기가 직접 수집하고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익숙한 물건들 말이다. 그러고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집 안에 한두 개씩 붙이고, 걸어 놓고, 여기저기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둘은 다른 학년 교실에 몰래 들어가 안 쓸 거 같은 의자 몇 개를 조용히 들고 빠져나와 배치하기도 했다. 얼마나 짜릿하던지.




2021.05.16




2021.05.16


2021.05.16


2021.05.16
2021.05.16


우리는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서로 도와주었다. 특히 나는 위 사진에 보았던 하얀 점토 사람들을 만들 때와 철사 위에 휴지를 부착하는 일에 재미를 느꼈다. 같이 만들어 가면서 대화를 나누고,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손만 움직였을 때 생각 정리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같이 준비하면서 나는 라오지라는 사람을 더 알고 이해하고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저 시간들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라오지와 그의 작품

라오지의 졸업작품 이름은 <Trivia>, 이 단어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숨겨진 이야기나 여러 방면에 걸친 사소한 지식 따위를 뜻한다. 작품 제목을 정할 때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던지. 갑자기 밤 12시쯤에 연락 와서는 제목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어느 날 작업실에서 마주친 순간 작품 이름을 정했다고 얘기하며 뿌듯했다더라. 그의 논문도 만만치 않은 과정을 겪었다. 몇 번을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다가 다 썼다고 했다. 논문 제출일은 졸업전시 설치가 끝난 3일 뒤였는데, 아니 글쎄 이 라오지가 논문 제출일 이틀 전에 또 전부 갈아엎었다. 그때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황당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라오지는 아는 게 많기에, 그만큼 민감하고, 보고 느낀 것들이 많은 게 아닐까 싶다. 




<Trivia>


2021.06.21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가졌던 이번 학기의 라오지를 보면서 느낀 것은 끊임없이 시작을 반복하는 친구이다. 아는 게 많은 만큼 느낀 것도 많고, 또 그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발견하는 눈을 가진 사람. 더군다나 포기하지 않고 발견한 것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 참 빛이 나는 사람인 걸 느낀다. 그는 아마 계속해서 끝없는 시작을 해 나갈 것이고, 나는 항상 그 옆에서 응원하고 지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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