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카토는 탄산이 들어있는 달달한 와인이다. 알코올 향이 강하지 않아 ‘와알못’들이 와인의 세계에 입문하기 딱 좋은 술이다. 며칠 전 회사 와인숍에서 모스카토 한 병을 사 왔다. 와인숍 직원은 내게 그 술이 꿀물에 가까운 맛이라고 했다. 과연 그랬다. 꿀물처럼 달콤하지만 상큼하게 톡 쏘는 맛이 매력적이었다. 모스카토 한 병을 뜯어 그 자리에서 다 비웠다. 며칠 동안 모스카토의 달달하면서도 톡 쏘는 그 맛이 아른거렸다.
요즘 비평 수업을 듣는다. 수요일마다 신촌에 간다. 저번 주 수요일이었다. 센터로 가는 길에 와인과 위스키를 파는 주류매장이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매장 한 켠에는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와인이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부르고뉴 어쩌고저쩌고 하는 와인병의 이름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이름이나 원산지로는 찾기를 포기하고 누리끼리한 색으로 된 술 몇 개를 지나다 보니 ‘모스카토’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4만 원짜리가 2만 원으로 할인하고 있었다. 나는 맨 앞에 진열된 병 하나를 냉큼 집어 들었다. 이번엔 안주도 겸하고 싶었다. 집에 오는 길에 집 앞 세븐일레븐에 들렀다. 큐브로 된 치즈와 네 가지 맛 치즈 불닭볶음면을 샀다. 맛을 알아서 그렇게 산 건 아니었다. 요새 ‘와친놈’이라 불리는 어떤 연예인에게 빙의해 ‘그 사람이라면 이렇게 먹지 않을까?’ 생각하고 산 것이었다. 잘 어울리는 조합일 것 같았다.
집에 와서 불닭볶음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치즈를 뜯었다. 와인잔이 있긴 하지만 귀찮아서 커다란 머그컵에 술을 콸콸 따랐다. ‘사랑해’라고 적힌 병에 담긴 모스카토 맛은 훌륭했다. 처음에 먹었던 것보다 덜 달아서 좋았다. 치즈와 함께 먹으니 단짠단짠했다. 그렇게 또 술 한 병을 비웠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을 처음 배운 건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였다. 내가 살던 중국에서는 미성년자에게도 술을 팔았다. 담임선생님은 “너희 어차피 술 마시는 거 다 알고 있으니 마시려면 제대로 배워 마셔라.”라며 학교 체육관에 반 애들을 모아놓고 맥주를 따라 주었다. 내 목소리가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을 때까지 맥주를 들이켜고 노래방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수학여행에 가서도 술판을 벌이곤 했는데 정작 대학생이 되자 술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필름이 끊기거나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셔본 기억이 없다. 특히 싫어하는 건 소주다. “술이 달다”라고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진한 알코올 향에 마실 때부터 머리가 아프다. 회사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술 못 마시는 사람’이라는 콘셉트를 밀고 나갔다. 이젠 아무도 내게 술을 권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마시는 술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나는 사람이 아주 많은 자리보단 네다섯 명 되는 작은 술자리를 좋아한다.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놓다 보면 더욱더 친밀해진 느낌이 든다. 물론 전제는 내가 좋아하는 소수의 인원과의 술자리여야겠다. 나는 “술보단 자리가 좋아서.”라고 말하곤 한다. 사실 술보다 좋아하는 건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이다.
“요즘 모스카토에 빠져 있어요.”라고 입방정을 떨었다. 그 말을 들은 선배는 “나도 모스카토로 시작했어.”라며 다음엔 ‘피노누아’라는 술을 사보라고 했다. “가볍게 마시기 좋더라. 목 넘김도 부드럽던데?”라며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피노누아 한 병을 사는 건 선배와의 대화에 물꼬를 트기 위해서일 테다. 다음 술은 피노누아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