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기대 없이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 물건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저자 요한 하리는 24시간 로그 온 되어 있는 일상에서 내가 느꼈던 피로함을 거의 비슷하게 느꼈다. 그는 긴급전화만 가능한 구형 핸드폰을 들고 프로빈스타운으로 향했다. 인터넷 세상과 물리적으로 거리를 둔 채 3개월을 보낸 그는 우리의 집중력이 짧아지는 문제의 근원이 개인에게 있지 않다고 직감한다. 그는 자료를 뒤지고 관련된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한다. 책에서 그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우리의 집중력은 거대 기술기업이 추구하는 사업모델과 우리를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하는 현실에 맞닿아 있다. 각종 SNS는 사람들이 더 오래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고 더 긴 시간 그들의 SNS상에 머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은 그들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촘촘하게 설계된 테크놀로지에 우리의 집중력은 더욱더 짧아진다. 또한 건강하지 못한 식단, 각종 스트레스 상황이 우리의 집중력을 앗아가고 있다.
언젠가 나는 내 신경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실과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어느 순간 팽하고 끊어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요한 하리는 그 긴장감을 나뿐만 아닌 수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한다. 우리는 더 적게 일해야 한다. 더 많이 자고 시간을 들여 즐거운 일을 해야 한다. 주4일제의 도입과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보장은 그 구체적 실현 방안이다. 책에서 소개된 사례에 따르면 일하는 시간을 주5일에서 주4일로 줄였는데도 생산성이 저하되지 않았다. 직원들이 소셜미디어에 접속하는 등 딴짓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스트레스 지수는 낮아졌으며 일에서의 참여도는 오히려 증가했다. 모든 기업의 오너가 어느 날 깨달음을 얻고 주4일제를 도입하면 좋겠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적게 일해도 해고되지 않는다는 사회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 때 심리적, 경제적 안정감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주의력은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휴일은 5일이었다. 나는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독을 풀 수 있을 만큼 푹 쉬었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실컷 읽었다. 이런 시간이 간절했다. 5~6일 근무하고 겨우 하루 쉰 후 다시 근무에 들어가면서 나는 지쳐갔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24시간을 돌리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있었을까.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나는 건강하지 못한 질의 냄새를 맡는다. 방광염을 달고 산다. 산부인과에 갔을 때 의사는 내게 항생제가 일시적으로 질염과 방광염을 낫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고 말했다. 야간 근무를 하고 불규칙적으로 생활하다 보면 언제든 재발할 것이라고 했다. 조종사의 은퇴 후 돌연사 비율이 높다고 한다. 평생 끊임없는 시차와 긴장감 속에 놓여있었던 탓일 테다. 나는 오랫동안 건강하고 싶다. 회사가 나의 신체뿐만 아닌 정신마저도 갉아 먹고 있다니, 빨리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좀먹고 있는 이 업계를 떠나야겠다.
생각해보면 내 병을 진지하게 마주한 적이 별로 없었다. 의사가 처방하는 약을 그만 먹고 싶다는 생각과 나는 정상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내 병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으면서 어쩌면 내 병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불안하다고 느낄 때 나는 공포를 느낀다. 무언가가 나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내 선천적인 기질일 수도 있고 내가 자라온 환경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내게 안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함부로 일을 그만둘 순 없다. 아주 탄탄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회사에서 나와야 한다. 책은 “삶은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는 닐 도널드 월시의 말을 인용한다. 나도 <프렌즈>에서 모니카가 아빠 카드를 자른 레이첼을 다독이며 한 말을 떠올려 본다. Welcome to the real world. It sucks, you’re gonna love it.